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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도 흔한…명품의 조건
헤리티지 · 충성도 높은 고객·범접하기 어려운 비싼 가격이 특징…성의없는 AS · 인색한 사회공헌은 논란거리
명품 패션, 즉 럭셔리 패션은 이제 남녀노소는 물론 지나가는 강아지도 떨쳐입는 세상이 됐다.

구찌며, 버버리 의상을 보란 듯이 착용한 애완견이나 일금 100만원을 호가하는 루이비통 도그캐리어(이동용 개집)에 우아하게 들어앉아 있는 애완견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뿐인가. 지구촌에서 가장 폐쇄적 국가인 북한에서도 해외 명품 소비가 부쩍 늘어 통상 연간 3억달러였던 수입액이 작년에는 6억4586만달러로 증가했다는 소식이다.

명품은 자고로 ‘디자인과 품질이 뛰어나고, 희소성이 있는 상품’ 또는 ‘숙련된 장인이 공들여 만든 제품’을 가리키는 용어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일부 명품 브랜드는 지나친 물량 공세로 도심에서 3초 또는 5초마다 마주칠 정도로 흔해 ‘3초백, 5초백’<헤럴드경제 2007년 7월 20일자 참조>으로 불린 지 오래다. 1000만원을 호가해 ‘명품 위의 명품’으로 불리는 에르메스 핸드백이나 소형차 한 대 값의 샤넬 퀼팅백 또한 상류층 모임에선 너무나 흔해 이제는 ‘갈아타야 할 시점’에 처했다. 즉 희소성은 이미 사라졌다는 얘기다. 게다가 명품의 디자인과 품질도 예전만 못하다. 반백(半白)의 장인이 한땀 한땀 바느질해 만드는 아이템은 극히 일부다. 대신 중국이나 헝가리 포르투갈 등에서 만드는 명품이 꽤 많다.


그래도 여전히 대다수 소비자는 명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연인으로부터 가장 받고 싶은 선물도 명품 가방, 명품 지갑이 늘 1, 2위다. 해외여행을 떠나며 면세점을 찾지 않는 이가 거의 없고, 해외 명품 아웃렛에는 한국사람들이 득시글하다. 그렇다면 명품에 있는 세 가지는 무엇이며, 없는 세 가지는 무엇일까? 이를 해부해보자.


▶명품을 명품이게 하는 것은?=명품에 있는 세 가지는 무엇일까. 첫째로 ‘헤리티지(Heritageㆍ유산)’를 꼽을 수 있다. 수백년 또는 수십년간 이어져 온 클래식한 품격, 즉 전통이다. 그것은 ‘아우라’ 또는 ‘명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콧대 높은 정상급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의상이나 액세서리를 스스럼없이 ‘작품’이라 칭하며, 고유의 제목과 일련번호까지 부여한다. 아울러 제품 자체는 물론 매장의 문고리나 쇼핑백, 구둣주걱 하나하나까지 완벽한 품질, 즉 완성도를 추구하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그들에겐 ‘완벽에 가까운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반드시 완벽해야만 한다. 고객 중에는 “좋긴 한데, 2%가 부족해”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명품은 그 마지막 2%까지도 완벽해야 선택받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두 번째로 명품엔 ‘충성고객’이 있다. 샤넬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샤넬로 온통 치장한다. 샤넬의 고급스러움과 여성스러움이 좋기 때문이다. 반면에 에르메스를 추종하는 이들은 에르메스의 품격을, 프라다를 추종하는 이들은 프라다의 혁신성을 높이 산다. 충성고객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그 브랜드의 파워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최고급 소재와 절제된 디자인에 뿌리를 둔 명품은 고객에게 말로는 표현키 어려운 ‘심리적 포만감’을 선사한다. 


마지막으로 명품엔 ‘호되게 비싼 가격’이 있다. 즉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가격이 똬리를 틀고 있다. 에르메스의 경우 작은 명함지갑이 200만~300만원을 호가하고, 샤넬은 화장품을 넣는 파우치가 100만원에 육박한다. 주얼리 브랜드의 경우는 더하다. 별것 아닌 듯한데 1000만원을 넘는 아이템이 수두룩하다. 연봉이 끽해야 4000만~5000만원대인 샐러리맨은 주눅만 팍 든 채 ‘도대체 뭐하자는 가격이야?’ 하고 툴툴댈 수밖에 없다.

간호섭 홍익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나는 명품에 있는 세 가지로 자존심(전통)과 충성을 바치는 고객, 그리고 허영심을 꼽고 싶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허영심이다. ‘이렇게 대단하고, 특별한데 안 살래?’ 하고 고객의 마음을 유인하는 요소가 있기에 지갑을 열게 한다”고 분석했다.

▶명품에 등을 돌리게 하는 것은?=반대로 명품에 없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명품 광고에는 긴 광고문구가 없다. 오로지 멋진 사진과 그 브랜드의 로고만 있을 뿐이다. 구구한 광고카피는 오히려 명품의 아우라를 해칠 뿐이다. 근사한 사진 속 아이템을 보고 감탄하고, 짬을 내 부티크로 달려오라고 손짓하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명품은 애프터서비스가 없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비싼 값을 치르고 샀지만 고장이 나거나 제품에 하자가 있어 들고 가면 직원의 반응은 더없이 싸늘하다. 국내 브랜드들이 몇 년이 지나도 애프터서비스를 해주는 것과는 달리, 명품은 1년이 지나면 가차없이 수선비를 물린다. 실제로 국내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대다수 명품 브랜드가 소비자 권리 보호에는 무심한 것이 소비자원 조사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소비자 불만 신고는 급증했지만 구제를 받은 소비자는 10명 중 1명에도 못 미쳤다. 


마지막으로 명품 업체들은 사회공헌에도 나 몰라라 하는 예가 많다. 고급스러운 품격은 있을지 몰라도, 기부라든가 사회 어두운 곳을 살피는 활동에는 너무나 인색하다. 매출을 수천억원씩이나 올리는 1위 브랜드는 한국 사회에 매출의 약 0.001% 수준인 5000여만원을 기부해 언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이에 지난해부터 조금씩 사회공헌에 눈을 돌리긴 하지만 여전히 ‘새 발의 피’ 수준이다. 품격을 생명처럼 여기는 정상급 브랜드들이, 대학가 김밥집 할머니들보다 나을 게 없어 씁쓸함을 안긴다.

명품에 없는 것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희소성’을 들 수 있다. 서울 청담동 부티크나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서나 살 수 있던 명품이 이젠 지방 도시 백화점에서까지 쉽게 살 수 있게 됐다. 이에 초상류층 소비자들은 명품 로고가 드러난 아이템은 피하는 추세다. 선수끼리만 알아보는 감춰진 명품이 서서히 득세하고 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명품에 있는 것 세 가지

①헤리티지(명성ㆍ전통ㆍ완성도)

②충성고객(로열티)

③호되게 비싼 가격(범접하기 힘든 고가)



명품에 없는 것 세 가지

①긴 광고문구(오로지 브랜드 로고만 있을 뿐)

②애프터서비스(고객 보호 노력)

③사회공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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