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머슴, 다소 과장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바로 ‘원전(原電)’이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 민간 워킹그룹이 원전비중을 2035년까지 20%대로 낮추겠다고 하면서 원전이 그런 입장에 처해진 것이다.
원전은 에너지의 희망이었다. 100년 대계(大計)였다. 지난 1970년대말 중화학 육성정책과 맞물려 원전 건설은 장려됐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면서도 값싸게 전기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발전(發電) 수단이라고 수십년간 칭송됐다. 우리 경제가 고도성장을 일군 바탕 중 하나는 그런 원전의 값싼 전기로 중화학은 물론 전자 반도체 철강 화학 조선 자동차 등이 경쟁력을 확보한채 성장할 수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에 역대 정부는 원전 건설에 몰두해왔고, 이명박정부에 이르러서는 41% 비중으로까지 올리겠다고 원전 ‘올인 정책‘을 편 것이다.
그런데 워킹그룹이 권고한 2035년 원전 비중(설비용량 기준)은 22~29%로, 41%와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현재 전체 발전원 가운데 원전비중은 26.4%(석탄 31%, LNG 28%)임을 보면 워킹그룹의 권고안과 그리 차이는 나 보이지 않지만, 문제는 향후 20년 뒤면 에너지 사용량이 현재보다 엄청 늘 것이라는 점에서 ‘원전 역할의 후퇴’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워킹그룹의 권고안이 시대 흐름을 완전히 거역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일본 원전 사고 이후 전세계에선 원전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고음이 발령한 상태다. 원전 강국 독일 등 원전 속도를 늦추고 있는 곳도 상당수다.
문제는 워킹그룹의 권고안은 원전 이후의 대체에너지에 대한 실효성이 빠져 있고, 전기 가격과 수요에 대한 해법이 결여돼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35년간 충직하게 일해온 머슴을 대신할 새 머슴을 구하지 못한채, 구박만 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 원전 사고로 거세게 불고 있는 반(反)원전 여론을 의식하다보니 일단 원전 비중 감축 방향을 정하고 보자는 심리가 짙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나명수 울산과학기술대학교 친환경에너지공학부 교수는 “‘원자력이 (향후 에너지시대의) 만능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에는 어느정도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진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석탄이나 LNG가 새시대 대체에너지가 되기 어렵고, 바이오메스ㆍ태양열ㆍ수력ㆍ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도 원전 이후의 주요 대안이 되기엔 현재로선 요원하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이러다보니 원전에 대한 ‘홀대’는 기회주의적이며 20년후의 한국경제를 고려치 못한 무책임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현재로선 원전 만한 값싼 에너지는 없다”며 “대체에너지가 마땅치 않은 지금, 원전 비중부터 줄이자는 것은 산업용 전기료는 물론 가정용에도 뒤따를 엄청난 부담 증가를 그냥 감수하자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원전을 대체할 석탄은 CO2 배출 문제가 있고, 그나마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액화천연가스(LNG)는 발전단가가 원전의 2.65배에 달한다. 현 계획대로라면 철강, 화학 등 값싼 원전 전기를 사용했던 기초소재 업종은 경쟁력이 약화될대로 될 것이고, 이는 자동차, 조선 등 가공업종 경쟁력 저하로 이어져 국가경제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35년간 충직하게 일해온 머슴과 그 못잖게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머슴, 이 둘의 조화를 일궈낼 ‘주인의 슬기’가 필요한 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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