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발라드의 거장’에게서 ‘가왕’의 향기가 느껴졌다. 록을 뿌리 삼아 다양한 장르로 가지를 치되 트렌디한 감각을 잃지 않았던 조용필처럼 신승훈은 발라드라는 단단한 기둥 위에 실험적인 사운드라는 서까래를 올려 자신 만의 거대한 음악적 건축물을 건설하고 있었다. 자신의 음악을 한 곡 한 곡 들려주며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신승훈의 모습에선 지난 봄 조용필 19집 ‘헬로(Hello)’ 음악감상회 현장이 겹쳐졌다. 당시 조용필의 모습을 신승훈은 ‘등불’이라고 표현했다. 신승훈은 뒤 이어 또 다른 ‘등불’을 밝히려 하고 있었다.
지난 15일 서울 신사동 ‘월드팝스’에서 가수 신승훈의 새 미니앨범 ‘그레이트 웨이브(Great Wave)’ 감상회가 열렸다. 오는 23일에 발매될 예정인 이 앨범은 신승훈이 지난 2008년부터 음악적인 실험을 위해 6년 간 이어온 3연작 미니앨범 시리즈 ‘스리 웨이브스 오브 언익스펙티드 트위스트(3 Waves of Unexpected Twist)’의 마지막 작품이다. 신승훈은 2008년 첫 번째 앨범 ‘라디오 웨이브(Radio Wave)’를 통해 일렉트로닉과 모던록을, 2009년 두 번째 앨범 ‘러브 어 클락(Love o’clock)’을 통해 R&B 등을 시도했다.
신승훈은 “지금껏 100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렸으니 영화에 비유하자면 나는 흥행 영화감독”이라며 “그 감독이 실험적인 단편영화 세 편을 찍었다고 생각해 달라”고 소감을 밝혔다.
신승훈은 지난 1990년 데뷔 후 2년에 한 장 꼴로 쉼 없이 앨범을 발표해 왔다. 또한 그는 1집부터 7집까지 7연속 밀리언셀러에 올랐고, 누적 앨범 판매고 1500만 장을 기록했다. 신승훈의 흥행 기록 앞에 놓인 이름은 ‘가왕’뿐이다. 새 앨범 발매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그는 “2006년 10집 이후 11집에 대한 부담이 컸다. 23년간 꾸준히 음악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 세월 이상을 더 음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중간 점검이 필요했다”고 “세 장의 앨범을 통해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하며 앞으로 ‘할 수 있는 것ㆍ하지 말아야 할 것ㆍ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됐다”고 답했다.
앨범엔 타이틀곡 브리티시 록을 자신만의 색깔로 녹여낸 타이틀곡 ‘소리(Sorry)’를 비롯해 다이나믹 듀오가 랩을 피처링한 경쾌한 사운드의 재즈 힙합 ‘내가 많이 변했어’, 기존의 신승훈표 발라드를 잇는 ‘그대’, 버벌진트가 랩을 피처링한 펑키 디스코 ‘러브 위치’, 오케스트라 편곡이 돋보이는 장대한 스케일의 발라드 ‘마이 멜로디’ 등 신곡 5곡부터 ‘그랬으면 좋겠어’ ‘나비효과’ 등 리메이크곡 4곡까지 총 9곡이 수록돼 있다. 양적으로는 어지간한 정규 앨범에 맞먹는 부피를 가진 앨범이다. 신승훈은 곡 안에 의도한 변화와 의도를 세세하게 설명하며 이해를 도왔다.
신승훈은 “4번의 믹싱과 5번의 가사 수정을 거치는 공을 들인 ‘소리’는 브리티시 록에 없는 한국적인 애절함을 접목하는 시도를 했고, ‘러브 위치’는 댄스곡 같지만 밴드로 연주했을 때 흥을 더욱 강조한 곡”이라며 “그동안 삶에 위안을 주는 곡을 쓰는데 부족했다는 생각에 ‘마이 멜로디’엔 팬들을 향한 고마움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멜로디 중심으로 곡을 써온 터라 동년배 팬들이 따라 부르기 힘들었다”고 고백하며 “이번엔 40대들도 따라 부를 수 있도록 감정의 흐름에 따라 곡을 쓰는 데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신승훈은 수록곡 ‘그대’를 설명하며 자신 만의 발라드 구분론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록은 얼터너티브ㆍ스래시ㆍ모던록 등 명확한 하위 장르의 구분이 있지만 발라드는 그렇지 못하다”며 “발라드는 ‘처절함ㆍ애절함ㆍ애잔함ㆍ애틋함’이란 감정선으로 구분하면 명확해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그 후로 오랫동안’ 같은 처절한 곡이나 ‘보이지 않는 사랑’ 같은 애절한 곡에 강점을 보여 왔지만 애틋한 곡엔 약했다”며 “‘그대’는 애틋한 감정선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담은 곡”이라고 전했다.
신승훈은 오는 23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K-아트홀에서 쇼케이스를 개최한 뒤, 다음 달 9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2013 더 신승훈쇼-그레이트 웨이브’라는 타이틀로 콘서트를 연다.
신승훈은 “이번 공연은 그동안 자신의 공연 중 가장 블록버스터 급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작곡가이자 후배들을 양성하는 프로듀서로서도 활동할 생각이나 앞으로도 20년 이상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