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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겸허함의 미학’ 보여주는 브라질 노이언슈원더,그는 왜 일상의 ‘숨은 의미’ 를 캘까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제 3세계 작가로는 드물게 글로벌 미술계로부터 열띤 러브콜을 받고 있는 브라질 작가 리바니 노이언슈원더(Rivane Neuenschwander, 46)가 한국을 찾았다.

브라질에서 나고 자라, 브라질에서 작업 중인 그는 ‘2013 양현미술상’ 시상식과 렉처에 참석하기위해 지구를 한바퀴 돌아 서울을 찾았다. 양현미술상은 고(故)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1954~2006)을 기리기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양현(이사장 최은영)이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 중인 미술가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올해로 6회째를 맞았다. 노이언슈원더는 ‘겸허함의 미덕’을 보여주는 작가이자, ‘놀라운 성찰의 작가’로 정평이 나있다. 또 ‘결과의 미술’이 아닌, ‘과정의 미술’을 보여준다는 점 또한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11일 열린 시상식과 특강에 참석한 그를 헤럴드경제가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2013 양현미술상을 수상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찾은 브라질 작가 리바니 노이언슈원더. [사진=이상섭기자]


-수상을 축하한다. 상금(1억)이 무척 많다. 또 세계 어느 곳에서라도 개인전을 열 수 있다. 수상소식 듣고 어땠나?

▶깜짝 놀랬다. ‘지구 정반대편에 위치한 한국에서 내게 이런 상을 주다니’하고.. 굉장히 의미있는 상이라 더 기뻤다. 양현미술상은 예측하기 어려운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받은 상이지 않은가? 상금은 새 작업을 위해 쓸 것이며, 개인전은 구상 중이다. 지금까지 개인전을 하지 않은 도시의 미술관(그는 뉴욕의 뉴 뮤지엄, 파리 팔레 드 도쿄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특히 2010년 뉴욕 뉴 뮤지엄에서 가진 ‘A Day Like Any Other’전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에서 하고 싶다.



-어째서 당신이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보는가?

▶글쎄. 남과 다른 점이 있어서가 아닐까? 또 늘 변화하는 작업이란 점도 주목을 받은 것같다.(리바니 노이언슈원더의 작업은 고정된 작업이라기 보다 작업 때마다, 또 설치 때마다 달라진다. 관객 참여에 기반하는 것도 특징이다. 심사를 맡은 후미오 난조 일본 모리미술관장, 필립 베른 미국 디아미술재단 디렉터는 그의 작업이 일상의 작은 행동과 숨은 의미들에 주목하면서 시적이면서도 정치적인 감성을 아우른 것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위로부터 내려오는 게 아니라,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것에 주목하고, 깨지고 상처받기 쉬운 감성을 열린 태도로 바라보는 시선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리바니 노이언슈원더에게 명성을 안겨준 리본 설치작업 ‘I Wish Your Wish’<세부>. [사진제공=양현재단]


-어디서 미술을 전공했나

▶브라질 벨로 호리젠찌에서 태어나 미나스 제라스 주립대를 나왔다. 그리곤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왕립예술학교를 다녔다. 런던에서의 유학이 내 작업의 폭을 좀더 넓혀주었다.



-당신 작업은 카테고리가 매우 다양하다. 한가지 작업으로 규정하기도 힘들다.

▶그런 말 많이 듣는다. 영상, 회화, 퍼퍼먼스, 조각, 설치 등 워낙 여러 장르를 오가는데다 주제도 매번 달라지니까. 그런데 그 기저에는 인간 삶에 내재한 현상과 보잘 것 없는 단편을 나름의 미적 언어로 탈바꿈시킨다는 게 깔려 있다. 여타 작가들이 별반 가치를 두지 않는 것, 임시적이고 주변적인 것들, 단순한 것으로 비하되는 것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예술로 직조해내는 게 내 작업이다.

 
리바니 노이언슈원더의 설치작업 ‘I Wish Your Wish’. [사진제공=양현재단]


-당신을 유명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작업을 꼽으라면..

▶화려한 리본을 길게 늘어뜨린 설치작업 ‘I wish Your wish’(2003년)일 것이다. 이 작업은 브라질 북부 바히아 주 살바로드의 한 교회의 의식에서 착안했다. 사람들의 소원을 예수님 팔길이의 리본에 적게 해, 이를 손목에 세번 묶고 기도하면(리본이 닳아서 끊어질 때쯤) 소원이 이뤄진다는 의식을 한 교회에서 펼쳤는데, 나는 이를 미술로 치환시켰다. ‘나만의 방이 있었으면..’ ‘그 사람이 내 사랑을 받아줬으면..’ 등등 평범한 사람들의 소원을 리본에 새겨, 벽에 길게 늘어뜨렸다. 저마다의 소원이 적힌 오색 리본들이 벽에서 찰랑찰랑 흔들리며 그 간절함을 뿜어내는 작업이다.



-소원을 보내오는 이들이 많은가?

▶처음엔 내 주위 40명에게 소원을 받아 전시했는데 이제는 전세계에서 박스째 소원을 적은 리본들이 날라온다. 놀랄 정도다. 소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소원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소원팔찌를 팔에 낀 후 소원이 이뤄졌다며 편지를 보내오는 이들도 있다.

구멍 뚫린 양동이를 천정에 매단 후 아랫쪽 양동이에 차게 한 리바니 노이언슈원더의 설치작업 ‘Rain, Rain’. [사진제공=양현재단]


 -몽타주 작업인 ‘First Love’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사람들로 하여금 첫 사랑의 얼굴을 이야기하게 한다음, 이를 범죄자의 몽타주를 그리는 경찰로 하여금 그리게 한 작업이다. 첫 사랑이라는 달콤한 대상을, 용의자 몽타주를 그리는 경찰이 그린다는 설정이 흥미롭지 않은가. 추억 속 인물이 몽타주처럼 전환되는 과정도 무척 흥미로왔다. 결과물로는 ‘First Love’라는 인물화만 남지만, 첫 사랑을 회상하며 그 생김 생김을 설명하는 과정과 이를 듣고 몽타주로 그려내는 과정 전체가 작업인 셈이다.



-어린이 놀이용 공에 세계 각국의 국기를 새겨넣은 작업도 했다.

▶만국기를 보고, 크고 작은 공에 이를 새겨넣었다. 강대국에서부터 약소국까지 다양하다. 공의 크기도 제각각이다. 그 공들을 넓은 전시장 바닥에 무작위로 늘어놓아 사람들이 그 사이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도록 했다. 옮겨다닐 때마다 공들이 따라 움직이는데 때론 적대국끼리 밀착되기도 한다.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강대국의 정치적 파워라는 게 내 작업에선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음을, 또 대단히 유동적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국기를 공에 새겨넣어 바닥에 설치한 리바니 노이언슈원더의 작업 ‘Globes’. 2003 [사진제공=양현재단]


-세계지도 작업도 많이 했다. 꿀 작업이 흥미로왔는데.

▶남미에 살고 있는 제3세계 작가로서, 지도를 자주 보며 세계를 늘 공상하곤 한다. 흰 종이에 꿀로 세계지도를 그린 후, 개미를 풀어놓은 작업이다. 사나흘 후 개미가 꿀을 다 먹어치워, 대륙은 소멸되고 만다. 이 또한 그 과정이 중요한 프로젝트다. 얇게 포를 뜬 훈제 쇠고기(카라파치오)를 접시에 올려넣고 역시 개미를 투입해, 오대양 육대주가 이동하는 모습을 다룬 작업도 시도했다. 이 카라파치오 작업은 ‘수백만년 후 오대양 육대주가 다시 한덩어리로 합쳐진다’는 설정에 기반하고 있다.



-당신은 이처럼 결과가 딱 정해진 작업보다 과정을 중시한다(그는 조각, 회화처럼 완성된 작품 보다는 과정의 예술을 집중적으로 선보여왔다. 공중에 매단 양동이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그 물이 전시장 바닥의 양동이에 차게 하고, 다시 아래 양동이를 위에 매달아 ’물의 순환‘과 함께 사운드 아트도 들려주는 프로젝트 ‘Rain, Rain’, 미술관 천정에 아크릴판을 달고 스티로폼 알갱이들을 설치한 후 거대한 팬으로 움직이게 한 ’Continent Cloud‘등 대부분의 작업이 그렇다)

▶나는 고여있는 물 보다는 흐르는 물이 되길 원한다. 결정론적인 작업 보다는 변화하는 작업에 끌린다. 마르셀 뒤샹이 제안했듯 예술작품이 아닌, 예술을 하고 싶다. 사람들의 인식의 불완전함 때문에 하찮은 존재로 비하되는 것들에 더욱 주목하고 싶다. 이같은 관점은 아마도 어렸을 때로부터 기인했을 것이다. 말이 유난히 적었던 나는 많은 걸 말이나 글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길 즐겼다. 나의 지금 작업들은 그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요즘 나는 힘있는 사람들이 놓치는 것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것들에서 예술이 싹틀 수 있다고 믿으며 작업한다. 때문에 내 작업은 늘 진행형이다.

yrlee@heraldcorp.com

리바니 노이언슈원더의 비눗방울 영상작업 ‘The Tenant’. 2010. [사진제공=양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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