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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짐승의 시간 훌훌 벗고…‘매미소리’에 매진”
영화‘ 매미소리’로 재기나선‘ 워낭소리’ 이충렬 감독
영화 ‘워낭소리’ 짧은환희 긴불행…
세상과 연락끊은지 어느새 5년

‘매미소리’도 생사·소멸 이야기
숙성된만큼 여운남기는 영화로



“몸과 마음이 겪은 ‘짐승의 시간’이었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전부를 바쳤던 작품이 영화화됐고 관객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으며 그렇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꿈같은 시간이 찾아왔지만, 잠깐뿐이었습니다. 제 어리석음이 모든 것을 불행의 씨앗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되돌리기 싫은 기억이지만 이제는 철없는 아이가 성숙하기 위해 겪은 성장통이라고 생각하렵니다. 좋은 일들만 반추하며,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제가 누를 끼쳤던 모든 이에게 빚을 갚아가겠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의 이충렬(47) 감독은 지난 5년간 몸과 마음속에 ‘바윗덩어리’를 지고 살았다고 했다. 영화 흥행처럼 잠깐의 환희와 긴 불행을 견뎌낸 시간이었다. 차기작 준비 중이었던 지난 2010년 뇌종양이 덮쳐 눈과 머리를 짓눌렀고, ‘워낭소리’의 주인공 할아버지, 할머니와 가족들이 세상의 ‘침입’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이런저런 불찰과 주위의 농간으로 흥행 수익은 ‘숫자’만 남기고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세금 정산과 수익 분배를 두고 제작자와의 긴 법적 분쟁도 감당해내야 했다. 그렇게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정작 자신은 사람들의 시야로부터 숨어야 했다. 병과 자괴감, 분노와 죄책감으로 세상과 연락을 끊고 스스로를 다스리던 시간이 어느새 이만큼 왔다. 


이 감독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정신 차려 보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됐습니다”라며 “마음의 원일랑 깊이 묻고, 평생 가난했던 PD의 초심으로 돌아가 다른 이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졌던 빚을 갚으며 살겠습니다. 그 길이 영화뿐임을 알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모든 생명이 숙성해가는 가을,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온 이 감독을 최근 서울 통인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2년여 전 헤럴드경제의 단독 보도 및 인터뷰<2011년 8월 12일자 참조> 이후 그가 언론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제가 병으로 쓰러지면서 차기작이 엎어졌죠. 그동안 제작자도 두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원래 함께 준비하던 스태프도 뿔뿔이 흩어졌지요. 모두에게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수년간 숙성한 만큼 깊고 단순하고 아름다운 여운이 남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차기작인 ‘매미소리’도 ‘워낭소리’처럼 소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내년에는 이 영화를 들고 부산을 찾아야죠.”

이 감독이 처음으로 도전하는 극영화인 ‘매미소리’는 서로 다른 죽음을 마주한 아버지와 딸을 통해 그리는 생과 사, 생성과 소멸에 관한 이야기다. 부모상을 당한 상주와 유족들의 슬픔을 덜어주고 위로하기 위해 벌이는 진도 지방의 민속놀이인 ‘다시래기’가 중심에 놓인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평생 외골수 다시래기 재비로 살아온 아버지가 오랫동안 불화해온 딸을 다시 만나 겪는 갈등과 화해의 드라마가 담긴다. 이 감독은 수술과 재활 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시나리오 집필에 매달렸다. 몸은 거의 회복됐고, 작품은 제작사를 새로 만났으며, 경기도 일산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시나리오를 마무리 중이다. 한 달여 전 세금 정산과 수익 분배를 둘러싼 제작자와의 법적 분쟁의 (1차) 결과도 나왔다. “결국 법에 의해 가려지게 돼 마음이 안 좋지만, 내 억울한 사정이 상당 부분 받아들여졌습니다”라는 것이 이 감독의 전언이다.

이 감독은 이달 초 ‘워낭소리’ 주인공이었던 최원균 할아버지의 빈소를 찾았다. 그는 애통한 목소리로 “할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죄스러움을 평생 지고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소 옆에 안장됐지만, 이 감독은 마음속에 묻었다. 누구보다 가장 극적인 몇 년을 보낸 이 감독의 ‘매미소리’는 다시 희망의 울림이 될 수 있을까. 모든 이가 그런 것처럼 이 감독이 지금 선 그 자리도 다시 출발선이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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