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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퇴경기 앞둔 ‘원조 메이저퀸’ 박지은 “내 마지막 54홀은…”
“지금도 생각하면 울컥해요. 마지막 라운드 1번홀 티샷 후 갤러리들이 페어웨이 양쪽을 따라 함께 걸으며 ‘위 러브 유, 그레이스’(We love you, Grace!)를 외쳐줬거든요.”

당시를 떠올리던 그의 눈자위가 붉어졌다. ‘원조 메이저퀸’ 그레이스 박, 박지은(34)이 필드로 돌아온다. 지난해 6월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에서 전격 은퇴를 선언한 뒤 1년4개월 만이다. 18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장에서 개막되는 LPGA 투어 하나외환챔피언십에서 은퇴경기를 하기 위해서다. 선수로서 마지막이 될 54홀을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54개의 추억들이 스쳐갈 것이다. “이번만큼은 처음으로 54홀을 즐기면서 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아이고 내가 미쳤지. 이 힘든 걸 왜 한다고 했을까’ 할까요? 하하.” 


▶“선수 복귀 가능성?”=은퇴경기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휴대폰 메신저 창은 친구와 후배들의 응원 메시지로 넘쳐났다. 후배들은 “언니, 혹시 (선수로) 돌아오는 거예요?”라며 반겼고 ‘여자골프 르네상스’를 함께 이끈 절친 박세리(37)는 “뭐여~” 라는 짧고 굵은 한마디로 박지은의 소중한 은퇴경기를 축하했다.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1%라도 선수복귀 가능성은 없는지. 박지은은 “전혀요. 0.00001%도 없어요”라고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사실 은퇴경기는 계획에 없었다. 오랫동안 운동을 쉰 터라 성적은 당연히 안나올텐데, 섣불리 나섰다가 괜히 망신만 당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결혼한 남편 김학수 씨가 적극 권유했다. “나를 위해, 부모님을 위해, 팬들을 위해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작년 갑자기 은퇴하는 바람에 부모님이 마지막 경기를 못보셨거든요. 그래서 예전엔 죽기 살기로 준비했다면, 이번엔 부모님과 친구들 다 불러서 소풍가는 기분으로 하려고요.”


▶“골프는 아직도 어려워”=말로는 소풍이라고 하지만 LPGA 6승을 거둔 ‘골프퀸’의 자존심이라는 게 있다. 은퇴 경기가 확정된 뒤 남은 시간은 5주일. 드라이빙레인지로 달려가 맹연습에 들어갔다. 하지만 열흘 만에 채를 내려놨다.

“하다 보니 할 게 너무 많은 거죠. 스윙에도 문제점이 보이고 다시 이상한 버릇이 나오려고 하고. 그래서 바로 연습장을 떠났어요. 대신 라운드하면서 감각을 찾는 훈련만 하고 있어요. 그런데 스코어가 67~69타에서 73~75타로 점점 올라가요. 어쩌죠? 하하.”

클럽을 다시 잡으면서 골프의 재미와 어려움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한 달 간 정말 즐거웠어요. 골퍼가 직업일 때는 힘들고 따분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정말 재미있어요. 아, 이래서 일반 아마추어 골퍼들이 이 운동에 빠져드는구나 처음 느꼈죠. 그런 반면 선수 본능이 나오고 욕심이 생기니까 바로 미스샷이 나오더라고요. 드라이버샷도 2,3주 바짝 했더니 이제 겨우 250야드 날리고. 할수록 어려운 운동이예요.”

그는 현역시절 훗날 딸을 낳게 되면 절대로 골프만은 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년쯤 2세 계획을 갖고 있는 지금은 어떨까. “소질이 있다면 여자 골프선수로 사는 거, 나쁘지 않아요. 사실 전 어렸을 때 ‘골프선수’라는 타이틀이 콤플렉스였어요. 그냥 위축되고 싫더라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이에요.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말하고 싶어요. 외롭고 힘든 투어 생활을 ‘즐기라’는 건 말이 안되고요, ‘할 수 있을 때 잘 해라!’ 하고요.”(웃음)


▶“골프 스타일과 비슷한 내 인생, 다음 라운드는?”=박지은은 지난해 말 펴낸 자신의 에세이 ‘내 인생 최고의 경기는 지금부터’에서 자신의 골프 스타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티샷을 시원하게 한 뒤 그게 페어웨이건 러프건 아이언샷도 공격적으로 한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린에 올려놓는다. 드라이버 정확도가 떨어지다 보니 발군의 쇼트게임이 필요했다. 내 골프는 그랬다. 목표를 정하면 좌충우돌하면서도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것. 그게 그레이스 웨이(Grace way)였다.’

그의 인생도 골프 스타일을 닮았을까. “완전 비슷해요.(웃음) 드라이버샷으로 지르고 어거지로 그린에 올리고 퍼트로 잘 마무리하고. 제가 2003~2004년 퍼트 정확도 1위였다는 거 아세요? 제 골프인생을 봐도 최정상에 올랐다가 바닥을 찍고 기복이 많았잖아요. 그것도 참 매력있지 않나요? 이제 마지막도 잘 마무리해야죠.”

2년 전 국내 투어에서 뛰겠다며 귀국했을 때 그는 “16번홀 쯤 왔고 현재 스코어는 이븐파”라고 자신이 서 있는 지점을 골프로 표현했다. 지금은? “전 다시 1번홀에 왔어요. 선수로서 18홀을 다 마쳤고 마지막 퍼트도 어렵게 집어넣었어요. 다시 새로운 라운드 1번홀 들어가기 전 연습퍼팅 그린에 있죠. 어떤 라운드가 펼쳐질지는 몰라요. 이번엔 좌충우돌 말고 무난하게 가고 싶어요, 하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갖지 못했던 우승컵 딱 하나만 허락된다면 뭘 원하겠는가. 곰곰 생각하던 그가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이번 하나외환챔피언십 우승컵이요.” 이런, “소풍 가듯 은퇴경기를 하겠다”는 말은 애초부터 믿는 게 아니었다.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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