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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 ‘도시 게릴라 프로젝트’ …골목길·낡은 건물에 숨어 든 깜찍발랄 드로잉 예술적 감수성 자극
잔디보호용 울타리엔 스마일 마크
연두색 물고기가 그려진 음수대…

젊은 아티스트 60여명 작품 150여점
한강공원 등 서울 5개 지역 곳곳에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만나는 뜻밖의 미술
지루했던 도시풍경에 유쾌한 활력 부여


하오의 가을햇살이 긴 그림자를 드리운 서울 한강공원 반포지구. 얼마 전 강바람을 맞으며 이곳을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탔던 시민들은 바닥에 새겨진 ‘기린 드로잉’에 방긋 미소를 지었다. 길쭉한 가로등 그림자를 모티프로, 하염없이 긴 목의 기린을 그림자인양 연둣빛 테이프로 바닥에 드로잉한 이름모를 작가의 상상력이 싱그러웠기 때문이다.

어디 가로등뿐인가? 한강공원 잔디보효용 울타리에는 예쁜 스마일마크가, 시민들이 목을 축이는 음수대에는 연둣빛 물고기가 새겨졌다. 또 반포대교 난간에는 엘리베이터 속 다정한 연인의 모습이, 반포대교 교각에는 작은 쥐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쥐와, 그 쥐를 기다리는 고양이가 테이프로 드로잉됐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만나는 ‘뜻밖의 미술’이 아닐 수 없다. 아티스트 이준우 씨가 이끄는 ‘소심한 상상’팀은 그림자드로잉을 통해 지루했던 시민들의 삶에 소소하지만 상쾌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도시의 예술 게릴라들이 서울 곳곳을 ‘아트’로 물들이고 있다. 서울문화재단(대표 조선희)은 도시 곳곳을 예술로 바꾸는 ‘도시 게릴라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이에 발랄하고도 깜찍한 드로잉들이 다종다기한 방식으로 서울 거리와 낡은 건물, 담벼락에 숨어들었다. 작가들은 게릴라답게 쥐도 새도 모르게, 감쪽같이 스며들며 작업해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동화 ‘라푼젤’ 스토리를 가로등에 표현한 ‘소심한 상상’팀의 작업.
도시가스 계량기를 활용한 M조형의‘ 얼굴’작품.
잔디보호용 울타리엔 스마일 마크가 새겨졌다.

‘서울 밤길에 드로잉 조심!’이란 부제의 이번 프로젝트는 ‘미술’하면 으레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만나야 할 것으로 여겼던 일반의 고정관념을 보란듯 뒤흔들었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일상 공간에, 예기치 않았던 곳에, 미술이 친근하고도 낮은 목소리로 내려와 즐겁게 소통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남다른 상상력으로 무장한 젊은 아티스트들은 지난달 중순 서울 5개 지역에서 제각기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총 60여명의 작가그룹은 150여점의 드로잉 작품을 도심 곳곳에 선보였다. 이들은 무심코 지나쳤던 거리 구석구석에 기발한 예술작품을 그려 넣어 시민들로 하여금 ‘아하!’하고 무릎을 치게 했다. 거창하고 값비싼 것만 미술인 줄 알았더니 미술이 이토록 소소한 것도 있었네라는 감탄도 나왔다.

다섯개 권역 중 1권역인 서소문, 광화문 일대를 맡은 작가그룹 ‘M조형’은 도심 골목길 옹벽과 맨홀뚜껑, 벽 틈새, 골목에 식물을 활용해 트릭아트(눈속임 예술)를 시도했다. 또 드로잉 및 설치작업도 선보였다. 이를 테면 잿빛 도시가스 계량기에 코와 입을 붙여 사람의 얼굴을 만들었는가 하면, 가느다란 전돌을 촘촘히 박아 넣은 한옥 담벼락을 수영장 레일로 설정하고, 수영하는 사람을 살짝 붙여넣는 식이다.

벽에 흘러내린 전선에 뛰어오르는 미꾸라지를 덧붙여 그려 넣은 작업과 낡은 축대에 입맞춤하는 남녀를 그려 넣은 작업은 ‘발견의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다.

서울시청 일대는 프로젝트그룹 ‘대뱃살’팀이 맡았다. 이 팀은 시청역 주변에 이동식 자전거를 설치했다. 그런데 그 자전거에는 8개의 잠망경을 부착해 시민들이 평소 발견하지 못했던 서울시청 주변의 감춰진 풍경을 음미하도록 했다.

무늬만 커뮤니티팀은 강변북로 원효대교 및 용산역 일대에서 작업을 펼쳤다. 이들은 강변북로 방음벽의 먼지를 닦아내 글자를 새겨 넣는 방식으로 출퇴근길의 시민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또 스텐실 기법으로 색다른 공공미술도 시도했다.

남녀의 입맞춤이 도드라진 북촌의 낡은 축대.
가로등 그림자 자리엔 ‘기린 드로잉’이 자리 잡았다.
한옥 담벼락에 가부좌를튼 강아지.
음수대에선 녹색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

마지막 5권역은 보광동의 길종상가 주변과 버스정류장 일대로, 이 지역에서 작업해온 ‘길종상가’팀이 맡았다. 이 팀은 오래된 동네시설물과 식물에 조명과 패브릭을 더해 새로운 예술적 오브제로 변모시켰다. 

조선희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서울이란 도시는 굉장히 빡빡하고 여유 없는 곳이다. 재단은 이 도시에, 그리고 거리에 어떤 즐거움의 요소와 의외의 예술적인 부분을 가미해 거리를 활기차게 만들고 싶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에 발칙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아트게릴라들은 갑갑한 일상에 지친 시민들에게 소소하나 재기 넘치는 예술작품을 통해 시민들의 숨겨졌던 감수성을 자극하고 있다. 

기존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대형벽화나 그래피티, 타일작업 등 대규모 프로젝트였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아티스트들이 평소 거주하거나 오가면서 주의깊게 관찰했던 생활공간을 자발적 제안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대비된다. 참여한 작가그룹은 서울시립 청년일자리허브와 연계한 20~40대의 청년 및 중년작가들로, 각 그룹의 개성을 살려 비밀리에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보름 서울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은 “시민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다. 작가들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오래 된 골목길을 생기있게 살아나게 하고, 골목골목 소소하면서 위트 있는 작품이 숨어 있어 즐거웠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 실제로 프로젝트 후 ‘우리 동네 숨은그림찾기’ 등 시민참여 SNS 이벤트는 호응이 높았다. ‘내가 발견한 드로잉’이란 타이틀 아래 시민이 직접 집 앞 골목길에 그림을 그리거나, 서울 골목에서 발견한 다양한 거리작품을 찾아 공유하는 이벤트(11월 11일까지) 또한 높은 관심 속에 진행되고 있다. 예술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음을 실감케 하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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