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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현실을 통해 단절과 절망의 시대 성찰한 구철회의 ‘낯선 회화’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어둡고 초현실적인 회화를 선보여온 작가 구철회가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이번이 어느새 8회 개인전이다.

9일 개막돼 오는 14일까지 이어지는 구철회 개인전의 주제는 ‘Apocalypse & Melancholia(종말과 우울)’. 두 주제 중 Apocalypse는 시대의 우울을, Melancholia는 인간 내면의 우울을 가리킨다.

요즘 우리는 모든 게 흘러넘치도록 풍성하고, 화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 중에는 절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풍요의 시대가 역설적으론 상실의 시대인 셈이다. 소통 역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확대로 더할나위없이 편리하고 팽창됐지만 진정한 소통은 찾아보기 어렵다. 구철회는 이같은 절망과 단절의 현대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곤 이를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치열하게 표현해낸다. 

주제에서도 알 수 있듯 작품을 관통하는 정서는 어둠과 우울이다. 구철회의 낯설면서도 기이한 그림에는 쓸쓸함, 허무, 좌절 등 어두운 기운이 가득하다. 주로 밝고 아름다운 그림만 접해온 감상자들로선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불편한 그림이다.

구철회 ‘Apocalypse & Melancholia 13-1’. 2013

구철회는 일찌기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업에 매료됐었다.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기리코,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 그리고 스페인 작가 달리의 그림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그들의 작업이 뿜어내는 어둡고 기이하며, 낯선 세계가 좋았던 것이다.

동국대 미술학과를 나와 홍익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구철회는 10여년 넘게 초현실주의 회화를 제작 중이다. 이를테면 푸른 하늘 아래 앙상한 줄기만 남은 고사목 위로, 집채만한 콘크리이트 더미가 떠있는 식이다. 붉은 노을이 타들어가는 창공에는 거대한 기하학적 덩어리가 모든 걸 짓누를듯 자리잡고 있다.

공중을 부유하는 잿빛 콘크리이트 더미는 광기에 사로잡힌 거대권력을 은유한다. 사회적 약자를 헤아릴 생각없이 권력을 휘두르는 특권층은 푸른 산맥을 잿빛 콘크리이트로 만들고, 풍성한 아름드리 나무를 고사목으로 만든다. 인간행위 중 가장 극단적인 행위인 전쟁과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 아래선, 모든 게 피폐의 늪으로 빠져들기 마련이다. 잎파리가 다 떨어진 나무, 강변에 삐죽삐죽 깨진채 나귕구는 시멘트 조각.. 구철회의 그림에선 생명의 온기란 찾아보기 힘들다. 절망의 극단에 도달한 나머지 신경쇠약에 빠진 현대인의 내면을 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발전, 성장, 성공만 추구하는 시대의 팍팍한 질서를 작가는 을씨년스런 폐허를 통해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구철회 ‘Melancholia 13-4’. 2013

그의 그림에는 때때로 달빛 아래 촛불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촛불은 자기 몸을 태워 빛을 발하는, 말하자면 희생과 헌신을 상징한다. 그 촛불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것은 일종의 제의를 뜻한다. ‘자기 희생과 제례’라는 두가지 중의적 의미를 품은 촛불의 행렬은 절망과 단절의 시대를 치유하는 한줄기 해답이기도 하다. 또 최근작에선 연약한 꽃잎들이 난분분 흩날리기도 한다. 이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인간의 몸짓을 은유한다. 절망 속 한줄기 희망을 보는 듯하다. 

구철회 ‘Apocalypse & Melancholia 13-3’. 2013

‘미술’이라고 하면 의레 아름다움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구철회의 생각은 다르다. 예쁜 꽃이며 근사한 풍경도 얼마든지 그릴 수 있겠으나 그는 어둡고 음습한 풍경을 그린다. 아름답지 않은 것에서도 아름다움 이상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생명이 사라진 피폐한 자연, 잿빛 잔해가 어쩌면 오늘 우리의 진짜 모습 아니냐고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애써 덮어버리고 싶어하는 진실을 어둡고 낯선 그림을 통해 뚝심있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내겐 상처받지 않을 권리, 절망하지 않을 권리, 추락하지 않을 권리, 그리고 죽지 않을 권리가 없다. 어디 나 뿐이겠는가. 내 그림은 그런 이들에 대한 그림이다”라고. 02)736-1020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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