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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에 듣는 정재국 피리 “감정표현 자유자재, 우리 음악 맛 내는데 제격”
풀피리, 버들피리, 보리피리 등 흔히 피리는 봄의 악기다. 하지만 감, 밤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툭툭 떨어지고, 멀리 하늘이 더욱 더 높아지는 계절에도 피리는 제법 어울리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정기연주회 ‘시월에 듣는 피리’를 오는 18일 오후7시30분에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연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피리만을 주제로 한 기획 공연을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대취타 보유자인 명인 정재국과 함께 꾸미는 무대에서 기대를 더한다.

60년 가까이 ‘피리부는 사나이’ 정재국(71) 선생을 지난 4일 만났다. “사실 국악하면 가야금, 해금, 대금은 많이 아는데 피리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죠. 국악기 중에서도 비인기 종목이죠. 이번에 독주며, 협주까지 다 하는데 시립국악단이 피리에 대해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해주리라, 아주 기대가 큽니다.”

정재국의 피리 소리는 공연장을 명쾌하게 가르며 힘있고 우렁차다. 독주는 물론 관현악단과의 협연에서도 단연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정 명인은 “국악 중 마이크를 대지 않고 연주할 수 있는 유일한 악기가 피리다. 소리가 강하고, 크다. 피리가 빠지면 합주가 되지 않는다. 서양음악의 오케스트라의 제1바이올린에 비교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1972년에 명동예술극장에서 피리 독주를 하니까, 피리가 무슨 악기냐고 손가락질 했죠. 1973년에 독일 베를린에서 윤이상씨가 곡 해설을 하고, 최대한 느린 곡으로만 연주했는데 아주 대히트를 했죠. ‘동양식 현대음악이다. 하늘이 내린 음악이다’라고 찬사였어요.” 피리 명인 정재국의 발자취는 국악기 피리의 발전사와 나란히 한다.[사진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피리의 매력에 대해 그는 “우리 국악의 단점은 걍약이 적고 단조로운 반면 피리는 우람할 수도 있고, 미세할 수도 있다. 강약이 자유자재이며, 바이브레이션도 자유자재다. 한국인의 정감, 우리 음악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는 악기다”고 했다. 또 “일본 전통 악기에 피리의 리드를 꽂아 바이브레이션을 넣어 연주하니, 일본 연주자들이 놀래더라”며 국악기의 우수성을 발견한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향피리로 ‘자진한잎’을 관현악단과 협주한다. 1972년 명동예술극장에서 국내 처음으로 피리 독주회를 열었을 때 선보인 명곡이다. 프로그램은 한국 대표 관현악곡 ‘상령산’, 정 명인의 호인 가산을 붙여 고 백대웅 작곡가가 헌정한 ‘가산을 위한 피리 협주곡’, 관현악단의 ‘가을의 기억’, ‘메나리조(경상도ㆍ강원도 지방 민요에 쓰이는 음계) 주제에 의한 피리협주곡’ 등 피리를 중심으로 다채롭게 편곡한 곡들로 구성된다.

정 명인은 프로그램을 여는 첫 곡 ‘상령산’에 대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인데, 주로 혼자 하는 곡인데 이번에 듀오(김현주, 민성치)로 편곡해서 재미있을 것 같다. ‘메나리조’ 협주곡도 이강덕 작곡 선생이 피리 전공이어서 피리 작곡을 잘 한다. 이번에 민속악 스타일의 협주인데, 4명(김현주, 박경미, 민성치, 권혜림)이 연주하는 거도 특이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새로운 시도에 맞춰 시립국악관현악단 피리 단원들과 함께 공연 포스터 촬영을 할 때 난생 처음 흰색바지와 백구두에 나비 넥타이까지 갖춰 입었다. 그는 “맨날 전통 의상만 입고 찍다가, 깜짝 쇼 한번 했다”며 웃었다.


피리로는 유일한 인간문화재인 그는 지금도 꾸준히 이틀에 한번꼴로 몇시간씩 연습한다. 정전(停戰)이후 국악에 대한 일반 상식도 없던 시절, “국비 장학생 뽑아 거저 공부시켜준다는 말에 무조건 시험봐 들어간” 국악사양성소(현 국립국악고)에서 피리를 손에 잡은 뒤부터 60년 가까이 연습을 게을리 한 적이 없다.

“관악기는 평소에 연습하지 않으면 소리가 나오지 않아요. 나이가 있어서 더 연주하기 어렵죠. 제 나이에도 연주하는 건 역사상 처음이에요. 소리로서 인정받아야하기 때문에 연습을 많이 하는 거죠.” 건강관리도 철저하다. 하루 2시간씩 운동은 기본이고, 17세부터 피우던 담배도 지난 65세 되던 해에 끊었다고 했다. “사위를 얻을 약조를 했죠. 나도 끊을 테니 자네도 피지 마라. 사실 피리를 오래 불고 싶은 욕심에서였죠.”

서울시의 국악 홀대에 대한 섭섭함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시립국악관현악단은 국립국악원에 이어 역사가 두번째로 깊다. 국립이 정악 위주라면 서울시립은 창작을 이끌어 왔다. 60년대 초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단원이 60~70명이었는데, 지금 단원이 37명 뿐이라니…. 충북 영동도 40~50명, 경기도립이 80명인데, 서울시에서 너무 홀대한다. 시립의 규모를 키워서 서울의 전통음악을 포용하고 창작음악도 하도록 해야한다. 예산이 적어 대극장에 올릴 수도 없고 좋은 객원 연주자를 데려올 수도 없다”며 쓴소리를 했다. (02)399-1114.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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