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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북<BOOK> 소리, 이 가을을 울리는…
한시대를 반영하는 뜨거운 관심, 베스트셀러
불안한 현실선 치유를… 좌절속에선 지혜를…
자아성찰 필요한 이시대…인문학·고전 열풍

발행종수·부수 줄고 책읽기도 밀려나는 현실
지금도 책을 펴는 독자는 무얼 얻으려는 걸까
끝나지 않을 한줄속 나를 찾는 ‘위대한 동행’



1985년 10월 14일. 서울대 대학신문에 ‘사회화영향력 의식조사’라는 한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다. 당시 서울대 학부생과 대학원생 7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설문조사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대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학생들은 책을 압도적으로 꼽았다. 서적이 43.5%로 거의 절반에 가까웠으며, 동료 26.8%, 부모 10.3%, 기타 5.2%, 교수 2.6%, 매스미디어 2.2% 순으로 나타났다. 책은 오랫동안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지식을 배우며 시대의 마음을 나누는 통로였다. 

2013년 9월, 거리엔 책 대신 스마트폰이 넘쳐난다. 행인의 손에, 꽉 찬 지하철 안에서도 책은 보이지 않는다. 모바일과 SNS에 밀려 점점 뒷방으로 밀려나는 신세다. 책의 초라한 모습은 책 발행종수의 감소로 나타난다. 2012년 신간 발행종수는 3만9767종(만화 포함), 발행부수는 약 8690만부로 전년 대비 발행종수는 9.7%, 발행부수는 20.7%나 줄었다. 올해 1/4분기만 놓고 봤을 때 발행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3.2% 줄어 더욱 나빠지는 추세다. 국민 10명 중 4명꼴로 1년 내내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게 우리 사회 책의 현주소다.

되돌아보면 책을 읽자는 목소리는 늘 높았다. 국민독서율이 최고였던 때도 책읽기 독려는 계속됐다. 책이 줄 수 있는 게 그만큼 많고 영향력이 큰 까닭이다.

책의 위대함은 한줄 한줄 읽어나가면서 알지 못하는 사이 내면의 나와 동행한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이를 ‘자기점검’이라 부르고, 우리는 ‘나의 발견’이라 쓴다. [서울도서관=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그렇다면 독자는 책에서 무얼 얻으려는 걸까. 한 시대의 집단적 관심을 받아온 베스트셀러를 들여다보면 거꾸로 책이 독자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보인다.

1993년부터 2013년 상반기까지, 지난 20년 동안 베스트셀러 20위에 오른 책들을 들여다보면 관통하는 단어는 불안과 도전, 위로다. 90년대 IMF와 2000년대 금융 위기 전후 삶은 늘 불안하고 흔들렸다. 불안한 현실 위에서 한 발은 도전과 꿈을 향해, 다른 한 발은 위로와 삶의 지혜를 찾아 걸쳤다. 경기침체와 세계화의 팍팍한 삶에 내몰린 개인은 역사적 성찰을 통해, 또 성공한 개인을 모델로 세워 나아갔고 좌절과 정말 속에선 따뜻한 소설과 인생의 지혜를 들려주는 책에서 위로를 받았다. 자아의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에는 인문서를 지팡이 삼았다.

책은 시대와 나란히 간다. 최근의 인문학 열풍 역시 시대의 산물이다.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에 의해 촉발된 인문서에 대한 관심은 우리 사회 자아성찰과 관련이 깊다. 반복되는 불안과 불확실성 앞에서 독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스스로 해답찾기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인문에 대한 관심은 사실 미미했다. 개인의 욕망이 중시된 90년대, 베스트셀러에서 인문서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로마인 이야기’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등 다섯 손가락을 겨우 꼽을 정도였다. 이런 사정은 2000년대 더욱 나빠졌다. 2000년대 초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백범일지’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이후 2003년부터 내내 인문서는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찾아볼 수 없다. 지식과 창조산업의 토대라는 인문의 위기였다.

최근 인문으로의 회귀는 이런 반작용과 시대의 성찰을 반영하고 있다. 종래 인문서의 주종을 이룬 역사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피로사회’ ‘어떻게 살 것인가’ 등 철학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인간의 삶과 역사, 지식에 대한 관심은 고전의 유행으로 이어지게 마련. 쉽게 풀어쓴 고전, 대중을 위한 고전 기획 시리즈 등 독서시장은 검증되고 확실한 책에 닻을 내렸다.

지난 20년간 욕망을 추동한 경제ㆍ경영서와 자기계발서에도 변화가 생겼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중반까지 자기계발서는 따라 하기가 유행이었다. 성공 모델을 모방하면 쉽게 성공의 길로 갈 수 있다는 논리를 따르는 책이다. 95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비롯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한국의 부자들’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등과 우화형 자기계발서가 큰 인기를 끌었지만, 2008년 하반기 이후에는 인문학에 바탕한 자기계발서가 대세다. ‘설득의 심리학’ ‘넛지’ ‘몰입’ ‘자기혁명’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등 과학적 지식이 결합한 형태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독자들이 똑똑해지고 있는 걸까.

소설은 시대의 꽃이다. 지난 20년간 많은 소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편식이 심해졌다.

책의 위대함은 한줄 한줄 읽어나가면서 알지 못하는 사이 내면의 나와 동행한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이를 ‘자기점검’이라 부르고, 우리는 ‘나의 발견’이라 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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