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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얼리버드’ CEO는 독서중…성공 · 실패 넘어 ‘감성 충전의 장’
잡스가 일으킨 ‘독서경영’ 바람 여전
바쁜 CEO들 조찬 독서모임 참여 활발
식사·독서·토론·인맥확장 1석4조 효과




“애플의 창의적인 제품은 애플이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소크라테스와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면 전 재산을 바치겠다”.

생전 ‘세상을 바꾼 천재’이자 ‘인문학 예찬론자’로 불렸던 스티브 잡스가 남긴 이 말은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독서경영’ 바람이다. 마치 성공의 비밀을 전수해준다는 책 ‘시크릿(Secret)’의 한 구절처럼 잡스가 불쑥 내민 독서라는 혁신의 비법은 곧 세상의 모든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급변하는 세상과 시장 속에서 우리 기업만의 가치를 찾고 성공할 수 있는가’라는 경영자들의 절박한 질문에 잡스가 방향을 제시한 것.

그리고 수년이 흘러 잡스는 세상을 떠났지만 CEO들의 독서 열풍은 여전하다. 그들은 베스트셀러 목록으로 세간의 유행을 살피기도 하고, 역사서와 고전을 통해 리더십을 배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의 ‘저자와의 마음산책’ 조찬 독서모임에서 CEO들이 강연자의 말에 경청하고 있다.

기업의 대소사를 신경 쓰느라 하루가 짧은 CEO들은 독서를 위해 주로 아침시간을 활용한다. ‘조찬 독서모임’이 바로 그것이다.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식사와 독서, 토론, 인맥 확장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으니 ‘일석사조’”라는 게 조찬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CEO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IMI)은 2011년 1월부터 ‘저자와의 마음산책’이라는 이름의 조찬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기수마다 30여명 내외의 CEO들이 참여하는 이 과정을 수료한 CEO는 250여명. ‘사기(史記) 성공학’ 같은 역사해설서부터 미술서, EBS 교육방송이 펴낸 ‘지식e’ 시리즈까지 다양한 책의 저자가 직접 나서 CEO들에게 책의 의미와 내용을 강연한다.

지난 5월 9일~7월 18일에 진행된 제7기 저자와의 마음산책은 ‘명사, 스캔들’이라는 주제로 박지향 서울대 교수( ‘클래식 영국사’ 저자), 소설가 김홍신( ‘인생사용설명서 두 번째 이야기’ 저자), 정목 스님(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저자), 이미도 외화번역가( ‘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 저자) 등이 나서 본인의 책을 설명했다.

해당 조찬 독서모임에는 신정훈 해태제과식품 대표이사와 유종석 농심 부사장, 박병주 아이마켓코리아 사장, 김호영 메리메이드코리아 대표이사 등의 CEO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IMI가 운영하는 또 다른 조찬 독서 과정인 ‘역사 최고위 과정’은 아예 ‘역사’에만 초점을 맞췄다. 역사 최고위 과정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떨게 한 직후인 지난 2009년 10월 처음 시작됐다.

IMI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힐링에 대한 욕구가 커졌고, 동시에 당시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 두 흐름이 겹쳐 CEO들의 독서활동이 크게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CEO들이 역사 속 이야기에서 리더십과 경영 전략 등을 배우는 역사최고위 과정 강연자들의 면면 역시 저자와의 마음산책 못지않게 대단하다.

지난 9월 5일 시작돼 11월 21일까지 진행되는 제9기 역사최고위 과정에는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유명한 소설가 김진명 씨가 강연자로 나서 본인의 신간 ‘고구려’를 강연했다. 이 강의에서 김 씨는 ‘고구려를 통해 본 중ㆍ일의 역사 왜곡과 대처’라는 제목으로 혼동과 신질서 태동의 시기였던 고구려 초기의 사회상에서 승패법칙을 읽는 법을 CEO들에게 전했다. 현재 9기 과정이 진행 중인 역사최고위 과정의 수료자는 300여명. 이 중에는 이진순 지에스지엠 회장과 이창재 에쓰오일 부사장, 민용기 씨앤앰 회장, 박영구 금호전기 회장 등이 포함돼 있다.

산업정책연구원(IPS)과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경영자독서모임(MBS) 과정도 국내 CEO 사이에서 유명한 조찬 독서모임. 매주 월요일 7시부터 시작되는 이 독서모임은 국내에 본격적으로 인문학 붐이 일어나기 이전인 1995년부터 시작됐다. 일찌감치 독서경영의 중요성을 인식한 CEO들이 적극적으로 독서모임에 나선 것이다.

지난 36기까지 19년 동안 이어져 온 경영자독서모임에 참여한 CEO는 이제 2800여명이 넘는다. 주요 참가 CEO는 김승유 미소금융재단 이사장,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손경식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어진 안국약품 대표이사, 엄정헌 한일철강 대표이사,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이다.

어진 안국약품 대표이사는 경영자독서모임 추천사에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상의 나태함을 탈피하고 창조와 개혁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다양한 주제의 독서와 토론은 미래에 대한 예측과 과정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며 “특히 독서를 통해 직원들에게는 보다 희망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십을 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정 기관이나 협회가 주관하는 독서모임이 아니라 독서를 좋아하는 CEO가 스스로 가까운 지인들을 모아 독서모임을 조직하는 경우도 있다.

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은 주변에도 소문난 독서광이다. 그는 혼자서 책을 읽는 것에서 나아가 가까운 중견기업 CEO 30여명을 모아, 지난 2010년 ‘계영회’라는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계영회는 매달 2번씩 꾸준히 독서모임과 토론회를 하며 인문학과 기업 경영 관련 서적을 탐독한다.

윤 회장은 또 사내에 온라인 독서커뮤니티를 운영하거나 독서왕을 선발,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등 독서에 대한 열정을 회사 전체로 확산시키기도 했다. 독서모임에 참여한 여러 CEO는 “책을 통해 기업의 미래를 열고, 보다 좋은 리더로 거듭나려는 CEO들의 열망은 이제 더는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입을 모았다.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은 “단지 기업의 성공이나 돈을 벌기 위해 CEO들이 독서에 열광하는 것만은 아니다”며 “독서는 다양한 역사 속 교훈이나 철학적인 한 마디 등을 통해 스스로 어떤 리더가 돼야만 하는가, 어떤 기업가가 돼 어떤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가를 고민할 좋은 기회이기에 CEO들의 독서 열풍은 더욱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슬기 기자/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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