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야기가 있는 길을 찾아서…길을 통한 문화 창조 · 발전 프로젝트> 求道의 길에서 나의 길을 지우다
① 전북 ‘아름다운 순례길’
조그만 마을엔 천주교·기독교·불교·원불교가 한자리에…화합과 소망으로 한가득
후백제 역사가 담긴 금산사…벚나무 가로수 길이 순례길 시작을 반기고
마지막 목적지 수류성당선 어떤 깨달음을 얻을지…


“차디찬 눈은 얼음과 엉기어 붙었고/찬바람은 땅을 가르도록 매섭다/넓은 바다 얼어서 단을 이루고/강은 낭떠러지를 깎아만 간다.” 신라의 승려 혜초는 ‘왕오천축국전’에서 인도로 가는 순례의 여정을 이같이 묘사했다. 깨달음을 찾아가는 험난한 길은 그의 마음과도 같은 길이다.

옛 종교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순례자의 마음 역시 사뭇 비장하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그러할까. 깨달음을 찾는 순례자들이 가르침을 얻기 위해 거친 가시밭길도 마다하지 않는 정신으로, 누구든 한 걸음 딛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길, 그곳이 바로 순례길이다.

전라북도 ‘전주~완주~김제~익산’을 잇는 아름다운 순례길엔 여러 종교인의 고난과 화합의 역사, 민족 저항의 역사가 공존한다. 예루살렘, 산티아고를 향한 외국의 이름난 순례길보다 어느 한 종교에 편중되지 않은 종교적 다양성, 한국만의 역사가 존재하는 이곳이 한국인들에겐 문화사적으로, 종교사적으로 더 의미 있는 길이 아닐까 한다.

‘아름다운 순례길’코스

1코스: 한옥마을~송광사 26.1㎞
2코스: 송광사~천호 27.1㎞
3코스: 천호~나바위 24.1㎞
4코스: 나바위~미륵사지 23.6㎞
5코스: 미륵사지~초남이 25.5㎞
6코스: 초남이~금산사 25.9㎞
7코스: 금산사~수류 14.5㎞
8코스: 수류~모악산 21.2㎞
9코스: 모악산~한옥마을 27.5㎞
 
9개 구간 장장 240㎞에 이르는 순례길 중에서도 김제의 금산사에서 수류성당을 잇는 19.7㎞의 7번 코스는 길진 않지만 전북 지역의 다양한 종교를 보다 더 가깝게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후백제 멸망의 역사가 담겨 있는 곳, 금산사=여정의 첫 시작은 599년 창건된 금산사에서 시작된다. 후백제의 견훤이 스스로를 미륵불이라고 칭했지만 아들들에 의해 미륵불이 모셔져 있는 이곳 ‘금산사’에 유폐됐고, 후백제의 멸망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던 곳이다.

‘미륵전’(국보 제62호), ‘대장전’(보물 제82호), ‘석련대’(보물 제23호) 등을 둘러보고 나면 사찰 앞 전통찻집인 ‘산중다원’이 눈에 들어온다. 7코스의 시작 팻말은 이곳에 있다. 금산사 정문을 빠져나오기까지 아름드리 벚나무 가로수 길이 순례길의 시작을 반긴다. 걷다 보면 어느새 금산사 입구. 삼국시대 사찰을 뒤로하고 한적한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오래된 나무 종탑이 세월을 잊고 서 있는 금산교회(1905년 설립)를 지나 금평저수지 앞 삼거리에 이른다.

▶민족종교의 성지, 신종교의 뿌리는 이곳에서=금평저수지 삼거리에 위치한 대순진리회 건물을 따라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동곡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저수지 옆 잘 정비된 길을 걸으면 그 끝에 증산교의 성지인 ‘동곡약방’이 나타난다. 이곳은 증산교의 창시자 증산 강일순이 1908년 동곡마을에 살던 김준상의 방 한 칸을 빌려 사람들을 치료했던 장소. 현재는 증산교의 종파인 대순진리회에서 동곡약방과 인근 부지를 매입해 관리하고 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원평마을’을 향해 가자. 도로 옆 오솔길을 걸으면 언제 왔느냐는 듯, 어느덧 눈앞에 강증산과 그의 부인의 유해가 안치된 증산법종교 본원이 있다. 증산법종교는 강증산의 딸과 사위가 창시한 증산교의 종파로, 한때 증산교의 종파는 100개가 넘었고 일제강점기 때는 신도 수도 100만명을 넘어 일제의 견제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240㎞ 9개 코스 순례길의 첫 시작이 되는 전주‘ 풍남문’


▶3개 신앙이 한곳에 자리한 원평마을, 이곳에 울려 퍼진 저항의 목소리=원평마을로 들어서는 길은 별다른 인도가 없어 간혹 지나가는 자동차 먼지를 마시며 걸어가야 할뿐더러 둘이서 나란히 걷기엔 조금 위험하기까지 하다. 10분가량을 걷다 흐르는 땀을 닦을 때쯤엔 이미 마을에 들어서 있다. 인구 500명 남짓 이 조그만 마을에 천주교ㆍ기독교ㆍ불교ㆍ원불교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면 그리 평범한 마을은 아니다. 이 마을에선 조계종 학교법인 ‘금산고등학교’, 원불교 ‘원평교당’, 천주교 ‘원평성당’, 기독교 ‘원평교회’를 차례로 둘러볼 수 있다.

원평교당은 소태산 대종사가 1925년 신설한 원불교 초기 교당이며, 원평성당은 1938년 세워진 이 지역 중심 성당이었다. 1930년 예배당을 이전하기 전 원평교회 인근은 동학농민군 최후의 전적지이기도 했다.

한편 동학혁명의 중심이 됐던 ‘원평장터’에선 기미만세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3월 20일 원평 장날을 기해 벌였던 일제에 대한 저항은 경찰의 강제 해산으로 무력화되고 말았다.

▶천주교 박해의 역사 간직한 수류성당=원평마을에서 코스의 마지막 목적지인 ‘수류성당’까지 가는 5㎞ 구간은 소실점이 한곳으로 모일 정도로 직선으로 길게 뻗은 길이다. 하천 옆 제방 길을 따라 농로와 임시 도로로 이어진 이 길 역시 걷기엔 조금 위험하고 또 지루한 듯 보이지만 무념무상, 순례자로서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길이다.

영화 ‘보리울의 여름’의 촬영지 화율초교를 지나면 언덕 위 아담한 첨탑이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이곳이 호남지역 3대 성당 중 하나인 목적지 수류성당이다.

원평리에 위치한 천주교‘ 원평성당’

1800년대 초 전라도 지역은 조선 전역에서 박해받던 천주교 신도의 피난처가 됐는데, 1880년대부터 1910년까지 교우촌이 형성되기도 했다. 박해를 피해 몸을 숨긴 이들은 산골에 성당을 만들었는데, 1889년 건립된 수류성당도 그중 하나였으며 갑오농민전쟁, 빨치산의 공격을 몸소 겪은 곳이기도 하다.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곳은 7구간의 하이라이트이자, 마지막 쉼터. 하루 순례자가 된 이들이 여러 종교를 한데 만나며 어떤 깨달음을 얻을지는 순례자 자신에게 달렸다. 순례길은 쉽지 않지만 어쨌든 이 조그만 마을들은 매일 순례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김제=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먹을 곳 & 잘 곳

순례자들이 힘겹게 딛는 한 걸음도 물 한 잔 먹고 나면 발걸음에 힘이 생긴다. 전라북도 김제를 가로지르는 ‘7번 순례길’은 호남평야를 지척에 두고 있어 맛있는 햅쌀을 맛볼 수 있는 구간이다. 일단 금산사 약수를 한 바가지 들이켜고 순례길을 시작하자. 그래도 허기가 진다면 금평저수지 삼거리에서 대순진리회를 지나 동곡약방으로 진입하는 길 한쪽에 시골 밥상을 맛볼 수 있는 25년 전통의 맛집 ‘조양월’(063-543-4700)이 있다. 행정구역상으론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491, 인근에서 직접 잡은 민물 생선을 비롯해 백숙ㆍ오리 등을 맛볼 수 있다. 송어ㆍ향어회도 있지만 메기ㆍ새우매운탕, 참붕어찜이 더 인기다. 마루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며 끓여 먹는 매운탕도 제맛이지만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며 먹는 누룽지와 숭늉 한 그릇도 맛깔나다. 순례길이 끝나는 수류성당 인근엔 갖춰진 숙박업소는 찾기 힘들다. 김제시까지 차를 타고 나와야 하며, 흥사동ㆍ순동ㆍ교동ㆍ옥산동 등에 숙박장소들이 모여 있는데 레드스카이모텔(063-546-2579), 스타펠리스모텔(063-547-1005) 등이 있다. 금산사 매표소 앞엔 모악산장모텔(063-548-4411), 모악산유스호스텔(063-548-4401), 금산사가족호텔도 위치해 있다. 금산사까지 가는 길은 김제고속버스터미널이나 김제역 앞에서 금산사로 가는 5번, 5-1번 버스를 타고 금산사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되며, 택시로 갈 경우엔 2만원 정도 든다. 수류성당에서 김제역으로 이동할 경우 상화 정류장까지 도보로 200m 정도 걸은 뒤 7번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된다. 택시비는 2만원 정도.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