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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등’은 못했지만… ‘1호’를 달고사는 사람
‘벤처기업 1호’ ‘SW기업 1호’ ‘의료정보기업 1호’등 100여개의 1호 타이틀을 가진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그의 창조적 인생은

30년전 호텔 스위트룸에 회사 차리고, 2년 반동안 공휴일도 없이 하루 20시간씩 구슬땀

SW분야는 부족한 실력으로 열심히 일하면 회사·국가 둘 다 망하게 해…1990년 비트스쿨 만들어 혹독한 교육으로 8600여명의 전문인력 배출

전쟁도 신약 후보물질도 대형빌딩 짓는데도 SW기술 필수…미래 부가가치는 SW에 달려, 공공부문 저가입찰부터 없애야

좋은 인물 추천하고 이공계 정책 제안 차원서 2011년 말 새누리당 비대위로 활동…전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정치권에 발 들여놓을 생각은 전혀 없어


1983년 8월 15일 광복절. 서울 청량리역 맘모스호텔(현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의 한 객실에서 26살의 청년이 회사를 차렸다.

국내 1호 벤처기업, 1호 소프트웨어(SW)회사 비트컴퓨터의 시작이다. 차고나 헛간 일색이던 미국의 벤처기업들과는 출발부터 조금 달랐다.

당시로서는 SW는 물론 컴퓨터라든지 벤처기업이라는 단어도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48킬로바이트 용량의 애플PC 한 대와 자본금 450만원, 2명의 직원이 전부였다.

SW업종에 대한 사업자분류코드도 없고(1988년 신설), 벤처캐피털법도 없고(1986년 제정), 요즘은 흔한 정부의 창업지원제도도 전무할 만큼 척박한 환경에서 ‘SW 독립’을 향해 비트컴퓨터는 첫걸음을 뗐다.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조현정(56) 대표의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조 대표는 독학으로 익힌 소프트웨어 기술로 국내 최초의 상용 소프트웨어인 ‘의료보험 청구 프로그램’을 개발, 의료기관 공급을 시작했다.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좋은 기업을 만들고 일자리를 늘리는 게 내 일이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이 지난 4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활동 종료 이후 처음으로 언론에 입을 열었다. 안철수 의원 대항마로 종종 거론되는 것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이다. 그는 위기에 빠진 이공계를 살리는 데 힘을 보태고 창업하기 좋은 생태계 조성에 도움이 되자는 차원에서, 보수 여당의 체질 개선을 위해 비대위에 참여한 것이었다고 재차 밝혔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비트컴퓨터는 의료정보 SW를 개발하는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연간 3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특히 업력 30년은 부침이 심한 IT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굴뚝기업의 기준으로 봐도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이는 비트컴퓨터가 급성장을 추구하기보다는 사회와 공존하는 ‘착한 기업’으로서,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전략에 힘입은 것으로 평가된다. 

-왜 하필 호텔에서 창업했나. 미국 벤처들과 비교해보면 ‘사치’ 아닌가.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델컴퓨터가 사업을 시작한 곳은 헛간, 차고, 대학기숙사 등이다. 사무실을 임대해서 쓸 비용이 없었거나 고정비용을 아끼자는 생각 때문이다. 내 생각은 달랐다. 호텔에서 창업하면 청소하는 시간 빼고 20시간가량 먹고 자며 일할 수 있다. 당시 사회경험도 없고 돈도 부족했지만 내게 유리한 것은 시간뿐이었다.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고 냉난방비도 따로 들지 않는 쾌적한 공간에서 개발에 몰두할 수 있어 호텔 스위트룸을 택했다. 당시에도 비용은 장래 얻을 가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호텔 총지배인을 찾아가 침대ㆍ소파 모두 필요 없으며, 조용히 근무할 테니 장기 투숙자로 인정해 빌려 달라고 설득했다. 국내의 오피스텔은 1986년에 처음 분양됐으니 오피스텔의 원조였던 셈이다. 이곳에서 일요일도 공휴일도 없이 2년 반 생활을 하다 1986년에 테헤란로로 옮겼다.

-한때 정치권에도 근접했는데(조 대표는 2011년 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외부위원 6명 중 1명으로 위촉돼 비대위가 해산될 때까지 4개월간 무보수로 일했다).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겠다는 생각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특히 한 신문에서는 안모 의원의 대항마로 거론하기도 했는데 터무니없는 소리다. 입당도 거절했다. 비대위 활동은 ▷정치권 구조조정 ▷이공계 살리기 및 과학기술인 육성 ▷창업하기 좋은 생태계 조성 ▷좋은 일자리 만들기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좋은 인물을 선정해 당에 추천하고 관련 정책을 제안하려는 차원에서 했다. 그래서 내 돈 써가며 무보수로 일했다. 조국에 봉사하려 한 것이지 새누리당에 봉사한 게 결코 아니다. 앞으로도 기업가로서 벤처, 창업생태계 조성에 도움이 된다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돕겠다는 생각이다.


-제안이 받아들여진 게 있는가.

▶이공계가 위기다. 우선 이공계 기 살리기 차원서 IT·과학기술계 인사들을 공천후보로 적극 추천했다. 그 결과 여야 포함해 이공계 출신 의원이 18대 국회 13명(4.3%)에서 19대에는 23명(7.7%)으로 대폭 늘지 않았나. 이들이 미래창조과학부 관련 여러 가지 입법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점만 봐도 성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보수적이던 새누리당의 정강정책도 벤처기업, 창조기업, 산업생태계 등으로 관심이 확장하도록 유도했다. 이 밖에 정책상으로는 제3자 연대보증제도 폐지, SW진흥법상 공공기관 발주 시스템통합(SI)사업에 대기업 참여 배제, 정부3.0 공개정보 데이터베이스 사업 활용 등의 실질적인 결과도 이어졌다.

-그래도 비트컴퓨터는 이른바 ‘박근혜테마주’로 분류된다.

▶정치관련주란 구설에 자주 오르내려 부담스럽다. 그래서 한때 “비트컴퓨터 주식 사지 말라”는 공시까지 추진했다. 주가변동과 공시까진 규정상 나흘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정치관련주란 이유로 비트컴퓨터 주식을 사지 말라. 헬스케어 사업 성장성을 보고 투자하라”는 글(2013년 1월 2일)을 트위터에 올렸다.

-‘벤처기업 1호’ ‘SW기업 1호’ 등 1호 타이틀이 꽤 많다. 배경이 있나.

▶초등학교,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때까지 1등을 해본 적이 없었다(조 대표는 중학과정을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중퇴한 뒤 고입검정으로 마쳤다. 중퇴 뒤 서울로 올라와 충무로에서 2년 반 동안 가전제품 수리기술을 배웠으며, 무엇이든 고장난 것은 거뜬히 고쳐냈다). 공부도 그렇지만 1등은 자본력, 조직, 사회적 이력 등을 필요로 한다. 나는 그게 하나도 없었다. 현재 벤처 1호, SW업체 1호, 의료정보기업 1호, 테헤란밸리 입주 1호, SW업체 병역특례 1호 등 따지면 100개 정도 된다. 1호 타이틀은 가장 많을 것이다. 1등은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1호란 기록은 변하지 않는다. 1호는 곧 가장 창조적인 행위의 결과물이다.

-그래도 ‘부유한(?) 대학생’이었다던데.

▶1978년 인하대 1학년 1학기를 마친 후에 군에 갔다가 귀가 나빠(고막 파열) 귀가조치를 받고 나니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 학교를 찾아가 자주 시간이 틀리던 교탑시계를 고쳐보겠다고 제안해 아날로그 시계를 디지털 회로로 바꿔 고쳐놨다. 그다음에는 몇 년째 고장나 방치돼 있던 방사능측정기도 수리했다. 이런 사실이 학내에 소문이 나 교육기자재를 수리해주고 등록금 전액과 월급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나중에 대규모 강의실마다 고가 앰프를 직접 조립해서 설치하는 등의 일거리가 계속 늘어났다. 이 생활이 3학년 말 군에 다시 입대할 때까지 3년 반 동안 계속됐다. 한 학기 등록금이 40만∼50만원 할 때였는데, 연간 수입액은 450여만원이었다.

-IT사관학교라고 불리는 ‘비트스쿨’이 있다. 혹독한 교육으로 유명하다.

▶SW라는 지식중심의 기업 경영자로서 직원 평가방법과 인재 관리에 대한 표현을 나는 1990년부터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부족한 실력으로 열심히 일하면 회사와 국가를 망하게 한다”고. 제조업에서 능력이 떨어지는 직원이 잘 만드는 직원에 비해 생산량의 차이가 있다면 보수를 그만큼 적게 주면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생산수량에만 차이가 있을 뿐이므로 판매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SW개발회사의 경우 A 직원은 하루에 1000라인의 프로그램을 작성하는데, B 직원은 1만라인의 프로그램을 작성했다면 B 직원은 10배나 적게 일한 것이다. 하루에 끝나는 프로젝트는 없다. 최소한 서너 달이 지나면 10만라인이면 될 일을 100만라인으로 프로그램을 작성했다면 하드웨어 규모가 10배는 좋아야 한다. 결국은 이 프로그램은 판매될 수 없다. 판매하면 판매기업뿐만 아니라 사용자에게도 큰 피해를 주게 된다. B 직원은 회사와 고객에게 엄청난 시간낭비를 시켰으므로 국부를 깎아먹은 셈이다. 부족한 실력으로 사회에 진출하면 안 된다. 1990년 비트스쿨(옛 비트교육센터)를 만든 것도 그런 이유다(비트스쿨은 설립 이후 올해 6월까지 8600여명의 SW 전문인력을 배출해 유수의 기업에 공급했다. IT관련 대학 전공자를 뽑아 6개월간의 혹독한 교육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벤처 1호이면서도 투자를 창업한 지 14년 만에 받은 이유는.

▶벤처기업들은 창업 초기 개인이 확보한 자금으로 연구개발비를 충당하고 부족하면 주변의 지인들에게서 엔젤투자를 받는다. 초기 제품이 나오면 기관 투자를 받아서 본격적인 생산과 시장개척을 통해 회사다운 회사가 된다. 더 큰 규모의 성장과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서는 대출보다는 자금시장에서 직접 조달받기를 원한다. 코스닥이나 거래소 상장이 그 방법이다. 이때 벤처캐피털이라 불리는 기관투자가나 엔젤투자자는 적게는 몇 배에서 많게는 몇십 배의 차익을 얻게 된다. 미국에서는 벤처캐피털이 투자법으로 규정돼 있으나 우리나라는 1986년에 이 법을 만들면서 새로운 금융업이 탄생되는 것을 우려한 정부가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업에만 투자하도록 규정한 창업법으로 벤처캐피털을 설립하게 됐다. 최근에야 창업기업에만 투자하는 규정이 소멸됐으나 처음에는 창업 3년 이내로 투자 대상을 한정했다. 1983년에 창업한 비트는 초기부터 투자받을 의지도 없었지만, 몇 달 새 3년의 기한이 지나버리는 바람에 투자를 받지 못해 어려움이 있었다. 이후 투자기한을 5년, 7년으로 늘려줬으나 그때마다 기한을 놓쳤다. 벤처 1호였기에 관련법이 제정되기 전이어서 갖가지 어려움을 온몸으로 헤치고 나와야 했다. 벤처투자는 14년이 지난 1996년 말에야 4억5500만원을 받았다. 만약 창업을 한 해만 늦게 해 투자를 제때 받았더라면 지금보다 회사가 훨씬 커져 있을 것이다.

-갤럭시도 아이폰도 결국은 SW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가장 푸대접받는 분야인데.

▶30년 사업을 해왔지만 SW산업 환경은 척박하다. 다들 중요한 줄 알면서도 대접해주지 않는다. 업력 30년 비트컴퓨터의 매출이 아직 300억원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 때문에 창업도 어렵고 성공률도 낮다. 인력수급도 어렵다. 그런데 미국은 배출되는 IT인력의 95%가 SW 분야 인력이다. 우리는 23%에 불과하다. 이래 갖고 창조경제가 되겠는가. SW 없는 창조는 불가능하다. 초기 스마트폰사업에서 크게 당황했던 삼성전자도 SW 개발인력을 2만5000명에서 3만명으로 늘렸다. 현재 삼성전자 인력의 17%가 SW인력이다. 갤럭시 성공신화도 여기에서 나왔다.

-SW산업 생태계를 개선하려면.

▶우리는 지금까지 SW를 하나의 기능으로만 보고 무시했다. 어떻게 하면 싸게, 공짜 비슷하게 살까 궁리만 했다. 머슴에게 맡기면 되는 일쯤으로 여긴 것이다. 그래서 공공부문 저가입찰이 국고절약 풍조가 됐고, 이것이 민간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단적으로 힘들게 개발한 아래아한글, 처음부터 공짜인 줄 알고 베껴서 깔았다. SW산업 기반이 성장할 리가 없었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SW다. 전쟁도 이젠 SW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데도 SW 탐색기술, 대형빌딩 짓는 데도 모형설계 등 SW기술이 이용된다. 앞으로 부가가치는 SW에서 나온다. 저가입찰부터 없애야 한다.

-비트컴퓨터의 미래상은.

▶창업 이래 줄곧 국내 의료정보시장 1위의 탄탄한 입지를 바탕으로 현재는 태국, 미국, 카자흐스탄, 몽골 등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중이다. 특히 동남아 시장 수출은 이미 연착륙돼 마케팅에 탄력을 받고 있는 상태로, 태국 현지법인인 비트닉스(BITNIX)는 21개 종합병원 구축 실적을 갖고 있다. 또 향후 의료환경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u-헬스케어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시스템 개발을 마치고 관련법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원격진료 분야는 국내 시범사업과 해외 수출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왔다. 새로운 환경에 끊임없이 변화하며 적응하는 모습을 통해 최장수 벤처기업으로서 향후 30년 이상을 내다보는 회사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 비트컴퓨터는 강한 기업이기 때문에 장수하는 기업이 아니라, 생태계 기여를 통해 오래 살아남고 강한 기업이기를 원한다. 사막에 혼자 살아남은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라, 밀림 속의 한 그루 나무로 키우겠다.

글=조문술 기자/freiheit@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조현정은 누구…

▶1957년 경남 김해 출생

▶용문고(서울)ㆍ인하대(전자공학)ㆍ인하대 명예공학박사(2004년)

▶벤처기업협회 회장(2005~2006년)

▶한국소트프웨어산업협회장(2013년~)

▶벤처기업협회 고문

▶코스닥상장법인협의회 이사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조현정학술장학재단 이사장

▶이화여대 겸임교수, 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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