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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인호 “환자로 죽지 않고 작가로 죽겠다”던 말 그대로...
“백미터 단거리 스프린터로 출발한 나는 일만미터 중거리주자를 거쳐 호흡이 긴 장편소설에 주력, 마라톤주자로서 달려왔다.”

등단 50년을 맞은 소설가 최인호의 삶은 한마디로 마라톤 인생이었다. 그는 반세기동안부지런히 썼고 빨랐다. 산업화 시대의 도시적 풍경을 빠르고 발랄하게 그려온 그의 소설은 대중적인 장악력으로 종종 밀리언셀러에 올랐다. 2008년 침샘암이 발병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지독한 고통속에서도 그는 펜의 힘을 빌어 줄곧 말을 해왔다. “환자로 죽지 않고 작가로 죽겠다”고 호언하던 그대로였다. 우리시대 ‘영원한 청년작가’ 소설가 최인호(68세)는 25일 그렇게 세상을 떴다.

서울고등학교 2학년때인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로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작가 타이틀을 딴 그는 1973년 28세의 젊은 나이에 ‘별들의 고향’을 신문연재하면서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다.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얻기도 한 이 작품은 70년대 도시감수성을 담아내며 소설의 새로운 이정표를 썼다. ‘바보들의 행진’‘고래사냥’병태와 영자‘ 등 그의 시나리오에 바탕한 영화 또한 모두 대성공을 거둘 정도로 그의 감각은 탁월했다. 그는 한마디로 통기타와 청바지로 상징되는 1960,70년대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었다.

소설가 최인호.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그는 산업화가 진행되는 한국사회의 균열을 예민하게 포착해냈다. ‘타인의 방’‘술꾼’‘죽은 사람’ 등을 통해 그는 타자와의 정서적 단절과 무관심,병리적 강박을 일찍이 보여줬다.

80년대,90년대에도 그의 소설은 날았다. ‘적도의 꽃’‘고래 사냥‘’물 위의 사막‘’겨울 나그네’‘잃어버린 왕국’‘불새’‘왕도의 비밀’‘길 없는 길’등 지칠 줄 모르는 필력을 과시했다. 2001년 ‘상도’가 시대의 혁신분위기속에서 또 다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그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이후 그는 역사소설로 나아간다. 그의 쉼없는 질주는 2008년 침샘암 발병으로 막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에겐 암도 장벽이 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본래의 문학의 자리로 돌아왔다. 2011년 투병 중 집필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1기 문학을 대표하는 ‘타인의 방’과 종종 비견된다. 현대인의 고독과 욕망의 변주를 그는 집요하게 추적했다.

등단 50주년을 맞은 올해 그는 더욱 바빴다. 산문집 ‘최인호의 인생’을 펴내고 천주교와 관련된 작품을 쓰기 위해 자료수집에 나섰다. 다소 호전되는 듯 보이던 병이 악화된 건 한달전. 목은 방사선 치료로 나무껍질처럼 딱딱해졌고 침이 나오지 않아 더 이상 말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 중 압권은 1975년부터 월간 샘터에 연재한 소설 ‘가족’이다. 그의 신앙과 일상사를 담아낸 ‘가족’은 2010년 2월 투병으로 연재를 중단하기까지 34년 6개월간 연재한, 한 편 한 편이 짧은 연작소설이지만 그의 인생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그려나갔고 스스로 작품이 됐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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