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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일? 교육 비판? 그냥 한바탕 놀자
어지럽다. 무질서하고 혼돈 그 자체다. 친일 미화, 역사 왜곡 교과서 검정 논란에 국론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 저리 휩쓸리는 모양새다. 이런 작금의 현실을 무대에 고스란히 옮긴 듯한 연극 2편이 나란히 선보여 눈길을 끈다.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 지원작 ‘가모메’와 국립극단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3부작 ‘구름’이다.

▶‘가모메’,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 =‘가모메(カルメギ)’는 일본 말로 갈매기란 뜻이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홉의 명작 ‘갈매기’가 원작이다. 벌써 여러 버전으로 한국서 재해석된 ‘갈매기’를 재기발랄한 성기웅 작가가 시간과 장소를 1930년대 후반 일제강점기 황해도 연안으로 옮겼다. 우울한 청년 뜨레쁠례프는 류기혁으로, 그의 어머니인 여배우 아르까지나는 차능희로, 뜨레쁠례프가 짝사랑하는 니나는 손순임 식으로 등장인물 이름도 바꿨다. 아르까지나의 연인이자 니나가 짝사랑하는 뜨리고린은 일본인 소설가 쓰카구치 지로로 설정하고, 원작에는 없는 인물도 2명 추가했다. 연극은 일본 연출가 타다 준노스케(37)가 맡고, 성 작가가 이끄는 극단 제12언어스튜디오 소속 배우와 일본 배우가 출연한다.

‘가모메’는 과거와 현재가 섞이고, 한일 양국 언어와 문화가 뒤범벅된 ‘퓨전 요리’다. 출연 배우들은 각자의 모국어나 일본어, 스페인어 등 3개 언어를 구사한다. 한국어는 당시 개성 방언과 비슷하다. 축음기 등 옛 물건과 현대의 소품이 동시에 무대에 놓이고, 등장인물은 한복과 기모노, 현대 의상을 걸친다. 음악도 걸그룹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의 일본어 버전, J-팝(pop) 스타 퍼퓸의 ‘페이크 잇(Fake It)’, 일렉크로닉 클럽 음악으로 편곡된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등이 흐른다.


준노스케는 “현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 옛날을 연기하는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관점이 연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고 말했다.

원작에선 니나와 뜨레쁠레프가 뜨리고린을 동경하거나 질시하고, 결국 니나는 배신당하고 뜨레쁠레프는 자살함으로써 파국을 맞는다. 이런 뜨리고린을 일본 소설가로 설정한 것은, 일본 문화를 무의식적으로 동경하는 요즘 젊은 세대를 떠올리게 한다. 류기혁이 ‘내지(일본)에서야 가부키 같은 구파 연극이 있고(중략) 조선엔 당초 그른 극장 전통이 딱히 없었단 말입니다. 그래 나는 내지의 신파극이 돌연변이 한 하등한 조선 신파라고 부르죠’라고 열등감을 드러내는 대목, 쓰카구치가 ‘옛날 내지와 조선은 거의 같은 나라, 형제와도 같은 사이였다. 내가 아닌 우리, 우리의 확장’이라고 견해를 밝히는 대목 등에서 자칫 한국 관객은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어 뵌다.

준노스케는 “불편해 할 위험성이 다분한 작품이다. 만약 작품이 진짜 역사물이나 사극이라면 분명 많은 비판이 있을 것 같다”면서 “하지만 작품을 만들 때 나의 주장이나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자세로 임하지 않는다. 관객이 여러 다른 생각들을 가져줬으면 한다”며 열린 관극 자세를 당부했다. 그는 또 “과거로 인해 지금이 힘든 사람도 있을 것 같아, 과거와 현대를 어떻게 다룰까를 고심했다. 체홉과 (배경음악 곡인)차이코프스키는 동시대를 살았다. 원작의 배경, 1930년대, 현대를 어떻게 연결시킬까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공연은 다음달 1일부터 26일까지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열린다.


▶‘구름’, “참 교육이란 무엇인가” =2500년전 그리스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은 소크라테스의 화술을 비판한다. 원작을 남인우 연출은 ‘2013년 한국’ 배경으로 각색하면서 제우스, 디오니소스, 아레스 등 그리스 신화 속 신들과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파네스를 중간에 등장시켜 시공간이 불분명한 무대로 탈바꿈시켰다. 여기에 ‘구름신’은 IT 기술인 클라우드 이미지를 따 온 여신으로 희화화했고, 음악은 가야금과 드럼, 베이스 등 전통과 현대 음악을 혼합한 라이브 연주다.

청년실업, 부동산 부채 등 무거운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도, 열린 무대와 라이브 연주,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전체 공연을 장악해 가볍고 발랄함이 넘친다.


줄거리는 가계 빚에 허덕이는 아버지가 아들을 소크라테스 학교로 보내 궤변술을 배우게 하고, 빚쟁이들을 말로써 몰아 내는 데 성공하지만, 아들은 패륜아가 되어 아버지를 패고, 이에 화가 난 아버지가 학교에 불을 지른다는 내용이다. 엉터리 교육 현실을 꼬집고, 참 교육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게 원작의 주제다.

하지만 공연에선 이 주제가 명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윤창중 성희롱 사건, 이완용 손자 땅 반환소송 승소, 논문 표절 등 여러 현재 시사 문제가 말 장난처럼 어지럽게 펼쳐지며, 극 전개가 좀 산만하다. 원작에서의 논쟁 대목을 중간 중간 삽입해 아리스토파네스 시절을 잘 알지 못하는 관객은 혼란스러움을 느낄 듯 하다. 날 선 비판 보단 어지럽기만 한 현 세태를, 웃을 거리와 즐길 거리로 버무려서 보여주는 데 충실한 극이다.

공연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24일 올라 다음달 5일까지 이어진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사진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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