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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병우 “국내선 소나무만 선호하지만 외국선 오름이 매력적이라며 좋아하죠“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사진작가 배병우(63). 그가 유명해진 건 소나무 사진 때문이다. 뽀얀 새벽안개 속에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하늘로 쭉 뻗은 그의 흑백사진을 영국의 팝가수 엘튼 존(66)이 지난 2005년 런던에서 열린 사진페스티벌 ‘런던 포토’에서 2820만원에 구입하면서부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은 눈 밝은 이들 사이에선 ‘한국 자연의 근원적 아름다움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글로벌무대에서도 통할 사진’으로 지목되곤 했다. 하지만 대중과 예술계 전반에선 그의 모노톤 사진이 별반 호응을 얻지 못할 때였다. 그러나 엘튼 존이 작품을 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살림살이는 그야말로 ‘확’ 피었다.

마치 붓으로 그린 동양의 수묵화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소나무 사진은 2002년 서울 소격동의 아트선재센터서 열린 작품전을 통해 본격적으로 소개된바 있다. 또 뉴욕, 마드리드, 브뤼셀, 런던 등에서도 소개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자연의 정수를 응집한 듯한 회화적 사진 때문에 배병우에겐 ‘포토 페인터’라는 닉네임도 따라붙었다. 

배병우 PLT1A-033H, 102x197cm, Gelatin silver print on fiberbased paper in artist_s frame,2002 [사진제공=가나아트]

2009년 한미정상회담 때 이명박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도 그의 소나무사진이 실린 사진집(‘청산에 살어리랏다’)이며, 이듬해 찰츠부르크페스티벌 포스터에도 그의 소나무사진 이미지가 실린바 있다. 배병우의 작품들은 해외에서 다양한 사진집으로 출판됐다. 독일의 예술서적 출판사 하체 칸츠는 ’Sacred Wood‘라는 타이틀로 배병우의 사진집을 펴냈다.

1983년 처음 소나무사진을 찍을 때 배병우는 전국을 1년에 10 만km이상씩 누볐다. 소나무들을 찾아 곳곳을 훑던 중 천년고도 경주의 소나무들이 ‘답’임을 깨닫고, 왕릉 앞에서 날밤 새워가며 촬영했다. 왕릉의 소나무는 사자(死者)의 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걸 도와주는 나무이기에 더욱 각별했다. 한마디로 ‘경배’의 대상이었던 것. 그렇게 그는 30년간 소나무 사진을 찍어왔다. 요즘도 국내에선 ‘배병우’하면 소나무 사진이 단연 인기다.

배병우 SEA1A-050H, 102x197cm, Gelatin silver print on fiberbased paper in artist_s frame, 1999 [사진제공=가나아트]

하지만 배병우는 소나무 보다 사실 바다를 먼저 찍었다. 전남 여수에서 나고 자란 그의 눈은 늘 바다로 향해 있었고, 카메라를 들고 다닌 뒤론 당연히 바다를 찍게 됐다.

대학시절부터 전국의 바다와 섬을 찾아다닌 그는 ‘제주 바다야말로 결정판’임을 알게 됐다. 이후로 지금까지 수십년째 제주도의 다양한 모습을 작품에 담고 있다. 그는 “나의 예술적 영감은 바다에서 왔습니다. 특히 작품 속 강렬하면서도, 한편으론 포근한 이미지는 바다의 물결치는 파도에서 비롯된 겁니다”라며 “정지된 시간의 영원한 움직임을 표현하는데도 바다만한 게 없지요"라고 했다.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제주 바다와 제주의 바람을 찍은 사진으로 작품전을 연다. 가나아트갤러리(대표 이옥경) 주최로 오는 10월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윈드 스케이프(Windscape)’라는 타이틀 아래 일련의 제주 시리즈를 선보인다. 

배병우 SEA1A-085H, 102x197cm, Gelatin silver print on fiberbased paper in artist_s frame, 2012 [사진제공=가나아트]

배병우의 제주 사진은 크게 세가지로 나눠진다. 한라산 주변의 기생화산이 만들어낸 부드러운 굴곡을 대단히 미니멀하게 표현한 ‘오름 시리즈’와 제주의 사면을 둘러싼 바다를 담은 ‘바다 시리즈’, 바람결에 흔들리는 풀을 포착한 ‘식물 시리즈’가 그 것. 세 시리즈의 공통점은 ‘바람’이다. 바람이 만들어내는 제주의 장엄하면서도 오묘한 풍경을 흑백의 톤으로 담은 것.

‘윈드 스케이프(Windscape)’라는 제목도 그래서 나왔다. ‘풍경’을 뜻하는 영어단어 ‘랜드스케이프(Landscape)’를 바람 풍(風)으로 시작되는 우리 단어처럼 바람을 뜻하는 ‘윈드(Wind)’로 살짝 바꿔넣어 만들어낸 조어다.

“제가 열이 좀 많은 편이라 그런지 어릴 때부터 바람을 좋아했어요. 전국토를 휩쓸었던 사라호 태풍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당시 집들이 송두리째 날아갈정도로 바람이 무시무시했는데 저 혼자 신이 나 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정지된 자연보다, 바람에 흔들리는 자연이 제겐 더 아름다와요, 바람 부는 한순간, 자연과 인간의 그 찬란한 한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제 작업이기도 하고요.”

배병우 OM1A-035V, 197x102cm, Gelatin silver print on fiberbased paper in artist_s frame, 2002 [사진제공=가나아트]

제주 풍광을 담은 그의 ‘윈드 스케이프’ 연작은 파리 취리히 베를린 등 유럽에서 먼저 소개돼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하체 칸츠에서 동명의 사진집도나왔다.

배병우는 ”해외서 먼저 선보였던 저의 제주 연작이 국내팬들로부턴 어떤 반응을 얻을까 궁금합니다. 벨기에 앤트워프의 한 미술관계자는 ‘소나무 사진 보다, 여성적인 제주 오름사진이 더 근사하다고 했거든요“라고 밝혔다.

마치 하얀 화선지에 먹이 번져가듯 백(白)에서부터 흑(黑)까지 수백, 수천의 단색톤이 섬세하게 표현돼 붓으로 심상(心像)을 표현한 것같은 그의 사진에선 안개가 만져질 듯하고, 바람소리가 들릴 듯하다.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비물질의 세계를, 가시적 세계로 현현케 한 작업인 것이다. 우리의 옛 선조들이 남긴 수묵화를 연상케하는 사진의 비결은 아날로그 필름을 고집해온 작업 방식에서 비롯된다. 사진 인화 또한 여전히 전통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배병우 OM1A-048V, 197x102cm, Gelatin silver print on fiberbased paper in artist_s frame, 1999 [사진제공=가나아트]

그는 말한다. “제가 소나무 사진을 한 뒤론 너도나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하는데 좀 안타깝습니다. 우리 전통에선 응용할 게 너무 많은데 말이죠. 고려불화만 해도 실로 대단하지 않던가요? 전통에서 찾아낼 게 참으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얼마나 끈질기게, 또 남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다는데 있겠지요".

배병우는 유난히 ‘주’자 들어가는 것과 가깝다. 경주며 제주를 내 집 들어가듯 자주 찾았는가 하면, 한동안에는 주자에 심취한 바 있다. 물론 술(酒)도 무척 좋아한다. 스스로 ‘주’자 들어가는 것은 뭐든지 다 좋다고 하는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연을 무한한 공허로 스며들게 하는 사진”(평론가 정희 리-칼리쉬)이라고 평한 글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고 했다. 

10월1일부터 ‘윈드스케이프’전을 갖는 사진가 배병우. [사진=이영란 기자]

디지털이 아닌 전통 아나로그 방식으로 작업하는 이유를 묻자 디지털 사진의 쨍한 느낌이 싫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머잖아 아나로그용 필름과 인화지가 사라질 것으로 보여 그는 막바지 피치를 올리며 세계를 부지런히 누비고 있다.

”11월이면 일본의 유명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아사바 가츠미와 협업한 사진집이 발간되고, 내년 여름부터는 프랑스 샹보르(Chambord) 성에서 1년간 작업할 예정입니다. 엄청난 무게의 파노라마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작업하니 제 작업은 ‘체력’이 관건이에요. 좋아하는 술을 안 마실 순 없고, 운동(탁구)을 더욱 가열차게 해서 해외 미술관에서 제대로 된 작품전을 열어야지요. 자연의 정수를 담은 작품들을 갖고 말이죠. 또 후배들에게 글로벌무대로 진입하는 브릿지(다리)를 놓아주는 게 제 소망입니다. 일본 사진가들은 이미 국제무대에 많은 이들이 이름을 올렸는데 우리는 좀 늦었잖아요. 실력은 우리가 결코 뒤지지 않는데 말이죠”.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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