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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앤드]대통령의 책읽기... 그속에 특별한게 있다
[헤럴드경제=한석희 기자]#2010년 여름 서점가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점령했다. 당시 ’공정한 사회‘를 국정화두로 던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여름휴가 독서목록에 이 책을 넣은 후 폭발적인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2005년 국무회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장관들에게 이창위 대전대 교수가 쓴 ’일본제국 흥망사'를 한 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이 책이 출간되자 마자 탐독했다고 해서 서점가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한국 정치지형에서 책은 곧잘 ‘메시지 도구’로 이용되곤 한다. 대통령이 읽고 있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책이 바로 대통령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메시지다. 그래서 대통령 독서목록은 으례 서점가를 뒤흔들기 마련이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만큼 그 어느 방법 보다 메시지효과가 크고 넓다. 매년 대통령의 여름 휴가를 앞두고 서점가의 시선이 온통 청와대로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의 책읽기가 때로는 고도의 정치기술인 셈이다.

▶책 ’흔들기‘ 이젠 옛말?=지난 8월 박근혜 대통령의 여름휴가 당시 서점가는 대통령의 후광을 입지 못했다고 한다. 여름 휴가를 앞두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이 10권 정도의 책 목록을 대통령에게 올렸지만 그 목록 자체가 철통 보안에 걸려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와관련 “독서목록이 알려지면 해당 출판사에만 관심이 쏠려 특혜시비를 낳을 수 있는데다 상대적으로 다른 출판사들이 소외 받을 수 있어 공개하지 않기로 했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책 흔들기’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서점가에선 대통령이 특정 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흔들기'라고 부른다. 국민이 검증한 최고의 리더가 골라 보여준 책이라는 뜻이다. 책 흔들기가 박 대통령 앞에선 통하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의 책 흔들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3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 참석,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김도환), ‘이방인 일러스트 판화집’(알베르 까뮈), ‘유럽의 교육’(로맹 가리), ‘철학과 마음의 치유’(김정현), ‘답성호원(答成浩原)’(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이 주고받은 서신을 모은 책) 등 총 5권의 인문서적을 구입했다.

박 대통령의 도서전참석은 1978년 영애 시절 전국 도서전시회에 참석한 데 이어 35년만이다. 대통령의 개막식 참석 후광 효과 때문인지 13만명이 행사장을 다녀갔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물론 대통령의 산 책들 역시 재고본이 모두 팔려 재판에 들어갔다고 한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많이 만든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꼽힌다. 실용 독서파로 알려진 이 전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 이후 바쁜 일상이 몸에 밴 ‘속독파'다. 2008년 초 17대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책읽는 모습이 공개되면서부터 MB의 책은 곧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이 읽고 있었던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의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은 추천사도 이 전 대통령이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약 베스트셀러가 됐다. 사나흘 마다 5000부씩 새로 찍어낼 정도로 이 책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지난 2009년엔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이 같이 쓴 ‘넛지’가 대통령의 책 목록에 올라 매출이 두 배로 뛰었다. 이 전 대통령은 넛지를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유독 책 소개를 많이 했다. 국무회의 등 공식석상에서 추천한 책만 50여권이 넘는다. 그가 추천한 책은 베스트셀러는 아니더라도 스테디셀러에 꾸준하게 이름을 올렸다. 2004년 탄핵 당시 읽은 김훈의 ’칼의 노래‘, 노 전 대통령 집무실에서 자주 카메라에 찍히곤 했던 전기정의 ’대한민국은 혁신 중‘, 서거 당시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유러피안 드림‘ 등이다.

▶대통령과 책=수필가이기도 한 박 대통령은 평소 “동서양의 고전들이 나를 지탱하게 해줬다”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지난 6월 중국 순방 당시 자신의 삶을 바꾼 대표적인 책으로 평유란의 ’중국철학사'를 꼽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앞서 국회의원 시절 트위터를 통해 ‘열국지'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같은 책을 추천하기도 했다.

앞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엔 개인 취향의 책은 물론 경제가정교사로 불린 이한구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 등이 추천한 경제학 서적도 탐독했다고 한다. 당시 독서목록엔 ‘불교자본주의’ ‘박애자본주의’ 같은 새로운 시장의 행태를 고민한 저작부터 비판적 지식인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이 올랐었다.

역대 대통령 중 독서광은 단연 김대중 전 대통령이 꼽힌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다면 감옥에라도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다. 분야도 철학, 경제, 역사, 문학 등을 아우렀으며 약 3만권에 달하는 책을 소유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책상 위에는 ‘제국의 미래’, ‘오바마2.0′, ‘조선왕조실록 4권’ 등 세 권의 책이 놓여 있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통령 별장이었던 청남대의 김 전 대통령 동상 역시 독서하는 모습이다.

노 전 대통령은 책을 국정운영의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공직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 국정운영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을 때 노 전 대통령은 종종 책을 권장해 ’독서정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체인지 몬스터' ‘변하의 기술' ’칼의 노래'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은 당시 정국운영에 나침반이 되곤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엔 주요 인물을 발탁할 때 독서 여부를 물었다고 한다. 책을 안 읽어서 인사에서 고배를 마신 사람이 있었다는 후일담도 전해지고 있을 정도로 독서 여부를 중요하게 따졌다. 전 전 대통령은 2년여간 백담사에서 머무를 당시 불경인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주로 읽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외에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사심리 서적을 탐독했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어린 시절부터 정치 관련 서적을 주로 읽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탐독 도서는 위인전이었다. 특히 어릴 때 읽은 나폴레옹 전기를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종종 읽었으며, 언론인과 교수 10여 명으로 구성된 독서토론모임 ‘근대화 연구회’를 운영하다 이후 특보제도로 제도화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또 종종 책을 큰 소리로 낭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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