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에서 배운 사람관계의 원리
[북데일리] 새롭고 신선한 예능프로들이 순식간에 ‘떴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예능 작가의 삶은 어떨까? <날 것 그대로>(네시간. 2013)는 예능 작가 윤성희가 방송 현장에서 사람들과 만나며 터득한 관계에 대한 책이다. 그녀는 ‘진실게임’, ‘일요일 일요일 밤에’, ‘놀러와’ 등 다양한 프로를 담당했다. 그 덕분에 글쓰기뿐만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데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방송 에피소드와 함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은 ‘재미, 다큐, 감동, 리얼, 위로’라는 다섯 개의 장으로 이뤄졌다.
현재 경력 15년 차인 저자는 ‘섭신(섭외의 신)’이라고 불릴 만큼 베테랑이다. 하지만 그녀 또한 여느 작가들처럼 많은 실수가 있었고, 실패로 많은 눈물도 흘렸다. 그 과정에서 터득한 것이 있다.
“인간관계의 시행착오는 ‘날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가식으로 포장되고, 허위로 덮인 가짜들을 걷어내고 내면의 진정성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 곧 사람을 깊이 사귀어가는 단계이다.” (p.7)
일을 할 때 그녀에게 기피대상 1호는 ‘완벽주의자’들이다. 그들 앞에선 ‘잔머리란 있을 수 없고 일에 대한 융통성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출연자로서 매력이 있다면 언제까지 피하며 살 수는 없는 일. 그녀에 따르면 가수 김장훈도 완벽주의자들 중 하나다.
“그는 게스트 중에서도 소위, 출연료가 아깝지 않을 사람이었다. 50을 기대하면, 80 이상을 해준다. 그러니 어찌 호감이 아닐 수 있겠는가? (중략) 솔로에, 기부 천사에, 김현식 사촌설까지. 그의 이야기가 얼마나 무궁무진할까? (중략) 그는 내가 생각한 것만큼 녹록한 사람이 아니었다. (중략) 워낙 밤새워 일하는 게 몸에 배인데다, 연출력까지 갖췄으니 토크쇼의 주제 선정에서부터 완벽주의 성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본을 쓰기 전, 컨셉 회의, 아이템 회의, 구성 회의도 충분히 머리가 터질 판인데 거기에 선배와의 회의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국장님보다 더 예리하게, 본 녹화의 방향성을 묻고 또 물었다.” (p.111~p.112)
완벽주의자들 옆에 있는 사람들은 고달프게 마련이다. 체크하고 체크하고, 점검하고 확인하고, 가끔은 자신을 안 믿는 것 같아 서운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한결같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우리는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배려하며 산다. 바로 이것이 완벽주의자들과 다른 점이다. 결국 완벽주의자들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때문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믿음은 상처를 동반한다, 기대를 버려라’편에서 하는 얘기도 공감이 간다. 그녀가 출연자들을 섭외하면서 얻은 지혜다. 내가 하나를 줬으니, 상대도 하나는 줄 거라는 기대는 무덤 파는 짓이라는 것.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타인에게 편안한 존재가 되고 싶다면 제일 먼저 버려야 하는 것이 ‘기대‘임을, 그녀는 많은 좌절 끝에 깨달았다. 하여 그녀는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는 말을 인간관계 진리의 1장에 두고 싶을 만큼 명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은 한 편의 예능 프로그램처럼 강력한 재미가 있다”, “사람 관계는 생겨먹은 그대로의 리얼이며, 그에 따른 시행착오는 ‘날것(진정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저자.
“‘날것’은, 곧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리된 예능보다 살아 있는 예능이 더 재밌고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건 어쩜 당연한 이치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왜 우린 몰랐던 것일까? 살아 있는 ‘날것’이 더 신선하고 생동감 있단 사실을. 우리는 타인을 만나기 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을 설정한다. (중략) 어떤 나를 보여줄까에 대해서. (중략) 이 시대는 내숭이 통하지 않는다. (중략) 우리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았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건 그가 가장 그다울 때다.” (p.250~p.253)
살벌한 방송계에서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면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녀. 상처받고 치유되고 잊혀지고 또 만나고. “사람에게 가장 좋은 치유법 역시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다. 저자가 책에서 소개한 이야기들은 굳이 방송계뿐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사람 사이에서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들이어서 쉽게 공감이 간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치고 상처받았다면 이 책을 통해 다소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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