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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이유있는’ 김한길의 ‘분노’
‘아놔 이건 무슨 뜬금포?’

5일 밤 10시.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심경을 ‘시쳇말’로 요약하면 이쯤 된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 때문이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최 원내대표의 손엔 ‘장외투쟁’을 접을만한 아무런 ‘선물’도 들려있지 않았다. 여기에다 다음날(6일) 아침 신문에 걸린 대문짝만한 보도는 최 원내대표에겐 ‘찾아갔다’는 술어에 담긴 ‘몸 낮춤의 미학’을, 김 대표에겐 ‘거절’이라는 ‘속 좁은이의 태도’라는 덧씌움을 제공하게 됐다.‘아놔 뜬금포!’ 소리가 절로 나올만하다.

사건을 거슬러 보자. 최 원내대표는 5일 밤 9시 40분께 김 대표가 ‘노숙투쟁’을 하고 있는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 천막 당사를 찾았다. 최 원내대표가 천막 당사를 찾자 우선 놀란 것은 현장을 지키고 있던 민주당 당직자들이다. 한 당직자는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와 함께 갑자기 들어오셨어요. 다들 놀랐죠”라고 말했다.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없었던 것이다.

김 대표는 찾아온 손님을 웃는 얼굴로 맞았지만 20여분간 이어진 대화는 아무런 소득 없이 끝이 났다. 최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대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김 대표는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대선 전 NLL 대화록을 봤다’는 ‘자폭발언’과 박근혜 대통령 사과가 없다면 장외투쟁을 접기 어렵다는 뜻을 분명히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음날 아침보도를 보자. 6일 조간 신문에는 허름한 츄리닝 차림의 김 대표와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최 원내대표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사진 설명의 주어는 당연히 ‘최 원내대표’였고, 술어는 ‘찾았다’다. 뭔가 새누리당 측에서 김 대표측에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으로 읽힐 만한 사진이다.

그러나 둘의 대화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무례한 갑작 방문에, 선물도 없었고, 언론 보도 역시 불쾌하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 대표는 6일 오전 비공개 회의에서 최 원내대표의 전날 방문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배재정 대변인이 6일 낮 최 원내대표의 방문에 대해 “알리바이 만들기, 이제는 지겹다”고 일갈한 것은 김 대표의 ‘분노 게이지’ 상승폭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최 원내대표가 김 대표를 방문한 것이 언론에 보도된 것은 다소의 우연이 포함돼 있는데, 시청앞 인근에서 저녁을 먹던 3~4명의 기자들이 ‘김 대표 얼굴이나 한번 보러가자’며 5일 밤 9시 50분께 천막 당사를 찾았다. 마침 최 원내대표가 김 대표를 만나고 있는 것을 확인한 기자들은 그 자리에서 노트북을 꺼냈고, 한 여기자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현장 사진을 찍었다. 6일 조간 신문에 실린 바로 그 사진이다. 신문에 실리기 힘든 다소 흐릿하게 흔들린 사진이 신문에 보도에 사용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한길 대표’가 진짜로 화를 낸 이유는 뭘까. 김 대표는 왜 반갑게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최 원내대표의 방문에 대해 대변인까지 동원해 자신의 분노를 공식화 했을까. 여의도 바닥에선 이미 ‘뉴스깜’도 안되는 사실에 가까운 풍문이지만 좀 풀어서 설명 해보자.

최 원내대표는 대표적 친박 인사다.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친박 친위대’ 쯤 된다. 최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아침 회의에서 “야당의 협상 파트너는 여당이지,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아니다”고 했다. 소위 ‘박근혜 사수대’쯤 되는 발언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를 두고 “박근혜를 온몸을 던져 구하겠다는 육탄방어. 대통령을 향한 충정이 애절하다”고 비꼬았다. 최 원내대표와 김 대표 사이엔 ‘구원(舊怨)’이 있었던 셈이다.

또 최 원내대표는 김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제안한 ‘회동’에서도 ‘걸림돌’이었다. 김 대표는 ‘3자 회동’에 대해선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5자 회동’은 안된다고 펄쩍 뛰었다. 이유는 바로 최 원내대표 때문이다. ‘대통령에 대한 충정’이 강한 최 원내대표가 회동 자리에 낄 경우 별다른 소득을 기대키 어렵다고 김 대표가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대표는 왜 3자 회동에 대해선 수용할 수 있다고 했을까.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김 대표와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로 전해진다. “김 대표와 난 생각이 같아”라는 발언도 황 대표 입에서 자주 나온다는 전언도 있다. ‘적의 적은 친구’일까. 황 대표와 최 원내대표 사이는 썩 좋지 않은 것으로 여의도 바닥에선 정평이 나있다.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이라는 시점도 김 대표가 최 원내대표의 방문을 환영키 어려운 이유다. 최 원내대표가 김 대표를 찾아도 대통령에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는 시점을 콕 찍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역시 최경환’이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실제로 이날 방문은 최 원내대표 일행이 저녁을 먹고난 직후 즉흥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선물도, 시점도, 예의도 없었던 최 원내대표의 갑작스런 방문에 츄리닝 차림의 김 대표가 정색하며 분노를 공식화 한 배경엔 이같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홍석희기자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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