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김경주 작ㆍ김혜련 연출 시극 ‘나비잠’…불면의 서울을 달랜다
시(詩)가 다시 인기라고 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하기 짝이 없는 현대 도시인에게 시 한 줄은 백마디 위로의 말보다 더 강한 치유 작용을 한다. 서울시극단이 이 달 ‘서울의 혼 시리즈’를 시극(詩劇) ‘나비잠’으로 연다.

서울시극단 첫 여성 극단장 김혜련(64) 단장이 지난 2월 부임 이후 첫 연출을, 대학로에서 시극운동을 꿋꿋이 펼쳐 온 시인 김경주(37)가 극작을 맡았다.

3일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두 사람은 모자(母子) 처럼 혹은 동지(同志)처럼 서로 깊은 신뢰가 쌓여있었다. 순도 100%의 예술을 고집하는 김 시인을 서울시극단에 불러들인 게 김 단장이다. 김경주 시인은 “이민을 계획한 적도 있고, 무력해지는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선생님 곁에 남고 싶다는 생각이다. 내가 외롭지 않을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며 “김 단장님이 있기 때문에 이런 장르와 작품을 세종문화회관에서 올릴 수 있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대학로에선 환영받지 못한 김경주(왼쪽) 희곡 ‘블랙박스’가 5~6년전 당시 뉴욕에 있던 김혜련 단장 가슴에는 콕 박혀 있었다. “대사의 엇박자를 질서 있게 쓸 줄 아는 최고의 작가”라고 생각한 김 단장은 서울시극단장에 부임하자마자 김경주 시인을 찾았다. 시인의 서재에 갇힐 뻔한 시극 희곡이 비로소 무대에서 살아날 수 있게 됐다.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시를 무대로 확장하고 싶었던 시인과 우리 언어를 복원해 관객에게 돌려주고 싶었던 연출은 ‘시극’이란 접점을 찾아냈다.

“우리가 문화를 받아들이는 태도고 그렇고, 전반적으로 스토리텔링 위주로 가고 있잖아요. 메시지가 뭔지, 목적까지 찍어주죠. 하지만 연극은 극적인 것을 보여줘야하고, 우리 언어의 속살이 살아있는 극도 있어야한다는 갈증이 있었어요. 시가 무대에 올라가는 것에 대한 짝사랑이었죠.”(김경주)

‘나비잠’은 갓난아이가 두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을 이른다. 서울 축성을 배경으로 민중의 상처를 자장가로 환치된 모성(母性)으로 얼르는 내용이다. 등장인물은 모두 불면자다. 김 시인은 “잠들지 못한 자들이 가진 내면의 불안함, 상실, 상처를 달래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장가를 들려주고 싶었다. 자장가를 부르던 어머니도 잠이 들고 고단함을 푼다. 전세계 자장가에는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 굉장히 근원적이고 모성과 닿아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작(詩作)에서도 모성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왔다. 그는 “지금은 권위와 질서를 상징하는 부성(父性)의 시대다. 말(言)을 다루면서 모성에 관심을 두게 됐다. 국어와 모국어는 다른데, 국어가 말을 구획화한 것이라면 모국어는 내가 부정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자장가, 태담 등이다”고 말했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된 개인적인 경험도 작용했다. 10개월간 아내 뱃속에 있는 아이의 변화를 초음파로 보면서 태아에게 백통의 편지를 쓰면서(책 ‘자고 있어 곁이니까’로 엮음) 자장가를 더 깊이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공연은 의미를 찾으려는 강박을 내려 놓고, 편안하게 자신을 달래가는 느낌으로 봐야한다. 이 극은 ‘달랜다’는 말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자장가의 속성이기도 하다”고 했다.

대사에 상징, 비약, 은유가 많아 난해할 수 있다. ‘흙이 울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나는 한번도 본 적 없는 눈동자로 깨어나고 있어’ 등의 대사다. 젖동냥 등 요즘엔 사라진 말들과 문화가 나온다.

김 연출은 “배우들이 처음엔 대본을 보고 어려워했는데, 이제 날이 갈수록 대사에 매료돼 있다. 이번에 단원들의 능력에 감동받아 어마어마한 자신감을 얻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배우는 춤과 노래, 독특한 인내 정신을 갖고 있는 거 같다. 우리 민족의 어마어마한 힘이다”고 단원들을 칭찬했다.

극에는 신나라 작곡가의 노래를 포함해 자장가 7개가 나온다. 오브제(소품) 연출에 강한 미국 연출가 겸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테오도라 스키피타레스가 무대 연출로 참여해, 꿈과 현실을 오가며 신화적이기도 한 시적 언어를 무대에서 소품 등을 활용해 직관적으로 풀어낸다.

80년대부터 20년간 뉴욕에서 지낸 김 단장은 “테오도라는 내가 뉴욕 라마마극단에 있을 때 만났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당시 극단을 이끌던 엘렌 스튜어트가 ‘너희 둘은 같이 작품하면 좋을 것이다’고 했었다. 처음으로 이번에 밤낮이 없이 함께 작업을 했다”고 인연을 소개했다.

김 연출은 “이 공연은 상상력을 오브제로 표현한 게 매력이고, 7개 자장가만 듣고 나가도 수확이다”고 했다. 19일부터 29일까지 열흘동안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02)399-1114~6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