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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생토크> 포스트 허재…“난, 최고가 되고싶다”
16년만에 농구월드컵 출전권 획득 수훈갑…신인 드래프트 최대어 김민구
1년전 대표팀 탈락은 큰 보약
亞선수권서 해결사 본색 발휘

프로선수들 자기관리에 놀라
‘등번호 23’ 프로서도 욕심


‘지옥’을 경험했다. 사방이 꽉 막힌 실내체육관에서 2만여 필리핀 홈 관중이 내지르는 함성은 한국 선수들을 그대로 집어삼킬 듯 했다. 난다 긴다 하는 프로 선수들도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농구하긴 태어나 처음”이라며 얼이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큰 경기에만 서면 알 수 없는 괴력이 나오는 그는, 밀집수비를 뚫고 코트를 종횡무진 휘저었고 수비수를 달고 쏘는 3점슛은 신들린 듯 했다. 56-65, 9점차로 시작한 4쿼터 초반엔 3점슛 3개를 잇따라 꽂아 추격 시동을 걸었고 무시무시한 야유 속에도 침착하게 추가 자유투까지 성공, 1점 차까지 만들었다. 지난 10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4강전에서였다. 비록 홈팀 필리핀에 패해 결승엔 오르지 못했지만 남자 농구는 대만과 3-4위전서 16년 만에 월드컵대회 출전권을 따냈다. 히어로는 아직 여드름 자국이 남아 있는 경희대 4학년생 김민구(22)였다.

26일 경기도 용인 경희대 체육관에서 만난 김민구는 “요즘엔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고 사인해 달라고도 해 인기를 실감한다”고 쑥스러운 듯 웃으며 “하지만 농구대잔치 시절 인기를 되찾으려면 아직 멀었다. 10월에 프로농구가 개막하는데, 이제 프로 형들에게 달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당돌함도 숨기지 않았다.

▶1년 전 아픔, 제겐 보약 됐죠=경기를 할 때마다 김민구의 별명이 늘어갔다. 팀이 어려울 때 결정적인 한 방을 성공시키는 해결사 모습이 미국프로농구(NBA) 코비 브라이언트를 닮았다고 해서 ‘구비브라이언트’, 큰 경기에서 주눅들지 않는 강심장과 승부근성, 슛·어시스트·리딩·수비 등 올라운드 플레이가 허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포스트 허재’ 등 셀 수도 없다. 특히 그의 슛은 정평이 나 있다. 움직임이 부드럽고 밸런스가 좋은 데다 그만의 타이밍과 센스가 있다. 어떤 농구팬은 “아름답다”고까지 표현한다. 김민구도 부인하지 않았다.

“제가 생각해도 슛에 대한 감각은 있는 것같아요. 뭐라고 딱 표현하긴 힘든데 묘한 ‘감’이 있어요. 선수 시작하고 이번에 슛 연습을 가장 많이 했는데, 특히 움직이다가 타이밍을 잡고 쏘는 무빙슛을 많이 했어요. 하나를 쏘더라도 얼마나 집중력있게 해야 하는지 많이 배웠어요.” 

“부모님께 의미있는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요.” 김민구(경희대)는 16년 만에 남자농구 월드컵 진출로 받게 될 생애 첫 포상금으로 어떤 선물을 살지 즐거운 고민 중이다. 농구팬들은 그런 김민구에게 이미 ‘남자농구 부활’이라는 값진 선물을 받았다. 곧 프로 무대에 몰고 올 ‘김민구 효과’도 벌써부터 기대를 모은다.  
[용인=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처음 대표팀에 들어와 이렇게 잘할 줄은 솔직히 나도 몰랐다”고 했지만 1년 전 대표팀 탈락의 아픔은 아직 생생하다. 2012 런던올림픽 최종예선 예비엔트리(15명)에 뽑혀 부푼 마음으로 선배들과 경쟁했는데 결국 12명 최종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막연히 예상은 했지만 농구 시작하고 처음 맛보는 좌절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날 짐을 싸고 나오면서 정말 너무 아쉽더라고요. 이런 기회가 다시 올까 생각하니 울컥하기도 했고요. 같이 탈락한 친구랑 술도 좀 많이 마셨죠, 하하. 그리고 다짐했어요. 다음에 무조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그래서 이번 대표팀에 뽑혔을 때 죽을 만큼 훈련했어요. 1년 전 탈락의 충격이 제겐 정말 좋은 약이 됐어요.”

▶농구대잔치 인기 부활? 프로 형들이 할 차례죠=키도 작은 아이가 흙먼지 풀풀 날리는 운동장에서 공을 다루는 감각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렇게 수원 매산초 농구 코치의 눈에 들어 3학년 때 처음 농구공을 잡았다. 그는 “딱 1주일만 농구가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경희대에 들어와 김종규 등 좋은 동료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고 기량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오는 9월30일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는 그의 가슴을 더욱 뜨겁게 한다. 김민구는 절친 김종규와 전체 1순위를 다툴 전망이다. 동부, LG, KCC, KT 등 가능성 높은 네 팀 감독들이 그를 주시하고 있다. “이 중 원하는 팀이 있냐”는 질문에 알듯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운명에 맡긴다”고 했다.

“프로에 가서는 더 독하게 해야죠. 대표팀에서도 느꼈지만 여우같은 형들이 많거든요, 하하.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정말 깜짝깜짝 놀랄만큼 코트 안에서나 밖에서나 노련하고 자기관리도 철저해요. 마음 같아선 형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다 뺏어오고 싶어요. 조성민 형의 슛, 양동근 형의 수비, 김태술 형의 리딩. 그 중에서도 감히 흉내낼 수도 없는 여유와 존재감을 갖고 있는 김주성 형이 참 존경스러워요.”

처음 대표팀에 들어와 11년 만에 중국을 꺾는 기쁨도 맛봤고 16년 만에 월드컵 티켓도 손에 쥐었다.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대회 베스트5에도 뽑혔다. ‘깜짝스타’를 보기 위해 지난 22일 끝난 프로-아마 최강전엔 5000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그득그득 채웠다. 하지만 그는 아직 멀었다고 한다.

“농구대잔치 시절 인기에는 아직 못미치죠. 이제부터 시작인데, 앞으론 프로 형들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프로에 가서 열심히 노력할 거에요. 아무나 제 백넘버(23번)를 달지 못하도록 누구나 최고로 인정하는 선수가 되는 게 꿈입니다.”

용인=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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