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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 - 김학수> ‘인치의 게임’에 판독 칼 댄 MLB
최근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내년 시즌부터 감독에게 한 경기당 3번 의심이 든 심판 판정에 대해 비디오판독 요청을 허용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를 접했다. 세부 내용을 보면 1~6회 1차례, 7회 이후 2차례 비디오판독콜이 가능하다. 스트라이크, 볼 판정을 제외한 아웃-세이프, 페어-파울볼, 체크스윙-노스윙 여부에 대해 감독이 이의를 제기할 경우 MLB 사무국은 각 경기장에 설치된 영상시스템을 통해 판독 결과를 1분15초 안에 현장 심판진에게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야구의 성역을 깨는 파격적인 조치다.

비디오판독은 슬로 비디오기의 기술적 발달로 인해 가능했다. 1960년대 스포츠의 TV 중계가 본격화하면서 빠른 장면으로 이루어지는 경기 모습을 다시 보는 슬로 비디오가 시청자에게 인기를 끌었다. 슬로 비디오에 모든 장면이 그대로 찍히기 때문에 테니스ㆍ배구 등 일부 종목에서 심판 판정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 비디오판독시스템 제도를 도입했다.

좀더 실수를 줄이고 완벽한 판정을 이끌어내 억울하게 승자와 패자가 엇갈리는 불합리한 측면을 정밀한 기계장치에 의해 없애고자 하는 MLB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기계가 인간 위에서 모든 것을 판독해 결정한다는 것 자체는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과 기술이 ‘인간의 기계화ㆍ예속화’를 초래해 오히려 프로야구를 자칫 망치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야구는 ‘인치의 게임(game of inches)’이라고 한다. 근접 플레이에서 ‘세이프냐, 아웃이냐’에 따라 승리와 패배의 기로가 엇갈릴 수 있다. 감독에 의해 제기되는 비디오판독 요청을 비록 3번으로 제한하기로 했으나 근접 플레이에서 애매한 판정 상황은 결코 3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좋은 판정과 부당한 판정이 수시로 교차한다. 수십년 동안 많은 경기가 심판의 판정 하나로 인해 근소한 차로 끝난 경우가 많았지만 부당한 판정 때문에 크게 말썽을 빚은 경기는 별로 없었다.

설령 판정에 따른 논란이 빚어져도 이는 야구를 위한 방해가 아닌 재미있는 스토리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 비디오판독에 의한 기술만능, 물신주의는 심판의 중요성을 반감시키며 종국에는 심판무용론까지 낳을 우려가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기술이 모든 경기를 장악해 모든 판정이 본부석에서 기술을 이용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기계에 의존하면 할수록 팀은 더욱 기계적인 판단을 요구할 것이며, 경기는 더욱 깊은 수렁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심판의 오심도 경기의 일부이며, 심판과 감독ㆍ선수가 판정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모습은 팬들에게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해왔다. 논쟁과 협의를 통해 올바른 판정을 유도해 나가는 야구경기를 어릴 적부터 보면서 자란 팬들은 야구처럼 인생의 굴곡에서 공정한 결정을 위해 부단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다.

MLB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한국야구는 앞으로 비디오판독제 도입을 결정할 때는 기계적인 판단에 의존하기보다는 경기의 순기능적인 측면과 팬들의 즐거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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