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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트렌드세터의 경연장 ‘한국판 소호’…여기는 런웨이다
가로수길
“맛집 · 보세잡화점 가로수길로 통한다”
패션피플 브런치로 하루 일과 시작
뷰티 · 패션 신제품 체험장도 즐비
150여 플리마켓엔 젊은이들 문전성시


불볕더위가 정점이던 지난 17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늦은 아침. 민모(28ㆍ여) 씨는 친구들과 브런치 약속을 위해 한 유명 카페를 찾았다. 만찬도 아닌 늦은 아침이지만 약속 장소에 나오기까지 그녀는 ‘어떤 옷을 입을까’ 꼬박 30여분을 옷장 앞에서 갈등했다. 약속 장소가 다른 곳도 아닌 ‘가로수길’이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가로수길에는 세련된 콘셉트의 커플룩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젊은 연인들, 비비드(vivid)한 색감이 돋보이는 원피스 차림의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약속 장소에는 한껏 멋을 부린 친구들이 먼저 나와 있었다. 멀리서 이들을 발견한 그녀는 ‘다음에는 오늘보다 좀 더 세련된 스타일로 꾸미리라’고 다짐한다.

트렌드 세터(trend setter)란 유행을 만들고 이끄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남들을 따라하는 게 아닌, 스스로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트렌드 세터는 의상뿐 아니라 영화와 음악, 음식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적용된다. ‘가로수길’은 트렌드 세터들의 경연장이다.

이제는 하나의 문화가 된 브런치(brunch), 가로수길 하루의 시작이다. 늦잠을 즐길 수 있는 주말 미국의 1세대 이민자였던 유럽인들은 영국의 차에 독일의 소시지, 벨기에의 와플, 프랑스의 프렌치토스트 등을 섞어 늦은 아침을 즐겼다. 브런치의 유래다.

하지만 가로수길에서는 잠옷차림으로 브런치를 즐기던 원조를 찾을 수 없다. 가로수길의 브런치에는 뉴욕의 소호(soho)를 연상케 할 만큼 패션이 듬뿍 녹아 있다. 느긋하게 브런치를 즐긴 민 씨는 가로수길 중심을 차지한 팝업스토어로 발길을 옮긴다. 유명 뷰티ㆍ패션 브랜드 상품에서부터 시작해 스마트폰까지 갓나온 신제품을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는 체험장이 즐비하다.

청담동 거리가 부유층을 위한 고가 해외명품과 고급 카페의 거리라면, 가로수길은 중산층을 위한 대기업 의류 브랜드, 유명 음식점, 커피전문점의 거리다. 가로수길에는 세련된 콘셉트의 커플룩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젊은 연인들, 비비드(vivid)한 색감이 돋보이는 원피스 차림의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소비성향이 강한 20ㆍ30대 젊은 여성들은, 트렌드 세터를 자처하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다. 이들의 신제품 사용기는 웬만한 광고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한다. 팝업스토어 매장을 열려는 이들이 넘치다 보니 인근 부동산에서는 간판에 ‘팝업스토어 전문상담’이라고 내걸 정도다.

청담동 거리가 부유층을 위한 고가 해외명품과 고급 카페의 거리라면, 가로수길은 중산층을 위한 대기업 의류 브랜드, 유명 음식점, 커피전문점의 거리다. 덕분(?)에 2000년대 초반부터 이 일대에 하나 둘씩 자리를 잡기 시작한 패션 로드숍들은 가로수길 양 옆으로 ‘세로수길’을 만들었다. 세로수길에도 자리가 없어 1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유명 디저트카페가 두 집 건너 하나꼴이다.

팥빙수가 유명한 어느 한 유명 카페에서 20분이나 줄을 서 있었다는 한 30대 연인은 “팥빙수 한 그릇이 1만5000원을 호가하지만, 인테리어가 아기자기한 카페에 조용히 앉아 여유롭게 주말을 보낼 만한 값”이라고 만족해했다. 이러다 보니 이젠 ‘숨겨진 맛집과 보세잡화점은 가로수길에 있다’로 통할 정도다.

늦은 오후가 되면서 가로수길 골목은 검은 고급 세단부터 화려한 색상의 스포츠카까지 다양한 차량으로 가득하다. 수입차가 흔해지면서 이제 웬만한 차는 ‘강남 쏘나타’로 통한다. 유명한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대리주차는 필수다.

그래도 차보다는 사람이 더 많다. 오후 햇볕이 한껏 아스팔트를 달궜지만 양손에 쇼핑백을 든 20ㆍ30대 젊은 여성들은 마냥 즐겁다. ‘SALE’ 문구가 내걸린 옷가게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중심거리에서는 다양한 색깔을 가진 150여개의 플리마켓(flea market)이 문전성시다. 플리마켓에 참여한 한 보세의류점 직원인 김하나(36) 씨는 “유명 연예인 소장품 자선 경매가 열리는 날은 해당 상품이 10분도 안 돼 동난다”고 전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이날 오후 7시께, 가로수길은 다시 변신한다.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클럽이 가득한 ‘홍대’도, 최신 팝과 유행하는 가요가 길거리에 쏟아지는 ‘강남역’도 아니지만, 다양한 칵테일과 요리, 최신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반짝인다. 카페, 술집, 레스토랑은 온통 젊음으로 가득하다. 고급스러우면서도 트렌디한 문화가 공존하는 ‘한국판 소호’ 가로수길은 이렇게 밤을 향해, 새벽까지 흥청거렸다.

이정아 기자ㆍ박영서 원다연 홍석호 인턴기자/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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