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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고발합니다! 일자리창출 역행(?)하는 박용만 상의 회장을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21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14만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리라 쉽지 않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영광인 자리입니다. 가문의 영예이기도 하죠. 다 아시겠지만 아버지(고 박두병 회장)와 형(박용성 전 회장)에 이어 상의 수장을 맡게 됨으로써, 두산가(家)의 명예를 드높인 것이기도 하죠. 두산과 상의는 뗄레야 뗄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대한상의 회장 자리, 괜찮은 자리입니다.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을 두루 회원사로 두고 있어 다른 경제단체장과 달리 경제계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대한상의 회장이 되면 이에 수반되는 직함이 50여개나 따라 붙습니다. 정부의 공식 자문기구인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한중민간경제협의회 회장 등 직함이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죠. 대통령 해외 순방때 국내 경제계를 대표해 수행해 해당국과의 비즈니스 포럼 등을 주최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윤기가 반지르 흐르는 자리죠.

물론 세상 일에는 반대급부가 있기 마련이죠. 회원사의 이익과 정부의 갖은 요청, 정치권의 압박 등 골치가 아픈 일도 많이 생기죠. 어떤 때는 자리를 박차고 그만두고 싶을때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소통의 달인’이라고 평가받는 박 회장이기에 기꺼이 회원사, 정부, 국민과의 메신저역의 소임을 무난히 수행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앞으로 상의 수장으로서 어떤 후덕함을 보여줄지, 때론 정부나 정치권에 맞서 어떤 용기를 보여줄지 재계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대한상의 회장 취임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박용만 회장.

오늘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러나, 이런 것이 아닙니다. 상의 업무는 잘 진행될 것으로 압니다. 역대 회장들과 같이 능력과 인품 면에서 ‘공인’받은 박 회장이기도 하고, 또 상의가 130년 전통을 가진 곳이기에 시스템적으로도 박 회장 업무를 잘 지원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박 회장 때문에 일자리 창출에 브레이크가 걸릴 수도 있어 보인다는 점 때문입니다.

박 회장은 지난 21일 대한상의 취임사를 통해 10여분 연설했습니다. 어찌보면 상당히 긴 것이죠. 박 회장은 그런데 원고를 보지도 않고 술술 연설했습니다. 50대의 젊은 회장이라서 그런지 원고 토씨 하나 하나에 굉장히 신경을 쓰던 전임 회장들과는 달랐습니다.

비결은 뭘까요? 그 긴 원고를 박 회장이 직접 썼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썼으니 머릿속에 한결 정리가 잘 된 것이겠지요. (참고로 박용만 회장은 보통의 대기업 회장들과 달리 달변입니다. 말 잘하는 오너로 통하죠. 왜 보통의 회장님들의 언변이 어눌한지는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취임식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인사말이 꽤 길었는데, 원고없이 즉석에서 비교적 정리정돈이 잘된 멘트를 날렸습니다. 두산 관계자에 따르면, 원래 박 회장은 원고를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손수 쓰고, 그걸 외워서 술술 말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더군요. 아, 그래서 그랬던 것이군요.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회장이 원고를 직접 작성하고, 직접 연설을 다 챙기면 ‘스피치 작성자’가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통상 재계단체장의 연설은 전문 스피치 작성자가 만들고, 단체장은 그걸 손보고 재작성을 지시하는 수순을 거칩니다. 스피지 원고 하나에 최소 한 사람의 인력이 필요한 것이죠.

청와대 같은 경우는 더 많습니다. 기자는 이명박정부때 청와대를 출입했는데, 청와대에는 통상 연설기록비서관이 있어 대통령 원고를 전담합니다. 국정 연설의 중요성을 볼때 당연한 것이지요. 비서관 밑의 많은 사람들도 원고에 참여합니다. 원고 하나가 갖는 일자리 창출 효과입니다. 물론 눈물 나는 일도 많죠. 모 비서관은 원고를 작성해 (보고를)들어갔는데, 대통령께서 빨간 펜으로 쫙쫙 그어 오금이 저렸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원고는 이렇듯 초고 위에서 다듬고 또 다듬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박 회장은 그런 수순을 거치지 않습니다. 글 재주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즉흥 연설에 자신이 있다는 뜻도 내포돼 있겠지요.

기자도 생각지 못했는데, 이런 박 회장의 모습을 보며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흥미로운 말이었지요. “박 회장이 계속 원고를 직접 쓰고 챙기면 어떤 사람들 일자리가 없어지겠네요”라고 말이죠.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듭디다.

그래서 기자는 박 회장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일자리창출에 일조해야 할 막중한 임무가 있는 경제단체장이 거꾸로 일자리를 막으면 안되는 것이죠.

여태까지는 다소 우스갯 소리였습니다.

기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재능이 있고, 잘 할 자신이 있는 분야가 있습니다. 그 자신감으로 모든 것을 윗사람이 챙기는 것은 밑에 있는 사람의 능력을 희석시키고,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지요. 박 회장이 상의 수장으로서 일을 할때는 그런 점을 새삼 인식했으면 합니다.

상의의 모든 업무 스타일도 그랬으면 합니다.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박 회장은 16만 트위터 친구를 가진, 최상의 소통자이며,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경영자로서도 직원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는 등 인재를 아끼는 이라고 들었습니다. 밑의 사람의 재능을 키워주는데 누구보다도 아낌없는 노력을 하는 경영자라는 게 대부분의 평가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혹시나 해 박 회장을 고발합니다. 대한상의 수장으로서 폭넓은 운신과 큰 그림을 챙기는 행보를 하되, 전체적으로는 과감히 아랫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넓은 운영’을 해주길 기대하는 마음으로요.

박 회장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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