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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재곤의 스포츠 오딧세이> 서른 일곱 임창용의 후회없는 도전
프로야구선수 ‘임창용’하면 2009년 WBC대회의 일본과의 결승전 장면이 먼저 연상된다. 연장전에 돌입한 10회 초 투아웃 주자 2, 3루 상황에서 스즈키 이치로가 타석에 들어섰다. 8구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으나 순간 가운데 몰리는 밋밋한 포크볼이 통한의 결승타로 이어지면서 한국은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그 이후 그는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1루 베이스가 비어 있었다는 사실에 따른 상황 검증이 결과론으로 이어졌다. 실투였는지 고의였는지 작전미스였는지 그 후에도 다양하게 코치진과 선수에 의해 후일담이 이어졌다. 심지어 일본 TV도 가세해 심층보도를 내놨었다.

하지만 당시 국민들은 그의 고집(?)에 대해 적잖이 분개했으며 그 후 일본에서의 활약상마저도 일정수준 거리를 뒀었다. 이유가 어찌됐건, 절체절명의 순간에 실투라는 사실에만 집중했다. 업보라면 업보였다. 순탄치 못한 가정사는 세간의 주목으로 이어졌고, 자기애가 강한 주장은 주변과의 오해의 소지를 다분히 불러 일으켰다. 여과지에 남은 불순물을 희석시키려는 자신의 노력마저도 미흡했다.

2007년 삼성 구단에서 임의탈퇴 후 일본의 야쿠르트 스왈로스로 이적할 때도 타인을 설득하려는 지난한 작업과 성실한 자세가 불충분했었다. 일종의 피해의식에 따른 자기방어 기능이 강했던 측면이 있었다.

마음에 난 상처의 봉합은 뜻하지 않게 후일 소속팀에서 이루어졌다. 2년 연속 30세이브를 달성하면서 ‘야쿠르트의 수호신’이라는 애칭과 함께 팬들의 더없는 사랑을 받게 되었다. 더군다나 연장계약 시점에 의리를 앞세운 팀 잔류 결정은 팀과 팬들을 사로잡는 이유가 됐다. 실리도 챙겼다. 3년 계약에 15억 엔을 받는 조건이었으며 연봉은 4억 엔(약 46억 원)이었다. 양대 리그 전체 6위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그렇게 야구인생의 유종지미를 일본에서 이루나 싶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발꿈치 부상이 악화돼 또 다시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이미 신임감독과도 알게 모르게 틈이 벌어진 상태였다.

팀을 떠나기로 결심이 선 그는 180도 방향을 선회해 급기야 지난해 12월 미국 메이저리그의 시카고 컵스에 입단을 발표했다. 계약금 10만 달러의 마이너리거 신분으로 재활을 병행하며 신인들이 뛰는 루키리그를 거쳐 지금은 메이저리그 전 단계인 트리플A에 올라와 있다.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그를 곧 확인할 수 있을 듯싶다.

그의 행적에서 일관된 프레임을 발견하게 된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의식수준과 정해진 꿈을 향한 끊임없는 질주본능을 목격하게 된다. 그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면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 말이다. 서른일곱 살의 적잖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온전히 제어 관리하고 있다. “최소한 후회하지 않으려고 도전한다”는 말이 그래서 더 무게감이 실린다. 실패를 연상하며 두려워 첫발을 내딛지 못하는 이들이 눈여겨봐야겠다. 나를 포함해서.

칼럼니스트/aricom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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