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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돈먹는 하마된 서울시의회의 ‘키오스크‘
[헤럴드경제=황혜진 기자]‘민원 1건 신고에 5000만원?’

서울시의회 본관 1층 로비 구석에 서 있는 기계 하나가 있다. 30초짜리 의회 홍보 동영상이 쉬지 않고 반복되는 걸보면 의회 홍보간판인가 싶은데 자세히 보면 ‘신문고’다. 조선시대 때 억울한 백성들의 고발기구가 됐던 신문고의 서울시의회 버전이다. 북을 울려야 하는 수고로움 대신 손 끝 터치와 음성인식이 가능하고 장애인 동선까지 고려한 최첨단 기기다. 최첨단에 걸맞게 이름도 신문고 대신 ‘키오스크’(KIOSK, 터치스크린 방식의 정보전달 시스템)라고 붙였다. ‘현장속으로! 시민곁으로!’를 슬로건으로 내건 8대 서울시의회가 시민과의 소통강화를 명목으로 지난 3월 설치했다.

총 3대가 중책을 맡았다. 기기값(대당 1200만원)과 서버 및 소프트웨어 설치비(5920만원) 등 총 1억 627만 1000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서울시의회는 전국 지방의회 최초, 국회에도 없는 전자신문고를 설치했다며 박원순 서울시장, 문용린 서울시교육감까지 불러 연출사진을 찍으며 대대적인 제막식도 열었다.

하지만 운영시작 반년, 키오스크식 소통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키오스크로 접수된 민원은 현재까지 단 2건에 불과하다. 민원 1건당 5000만원이 넘는 셈이다. 거기다 3대 중 1대는 공사중인 의원회관 세미나실에 놓여있다. 365일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던 당초 홍보와 달리 키오스크는 오후 10시가 넘으면 자동으로 전원이 꺼진다.

그래도 항의하는 시민 한명 없다. 존재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불통(不通)도 아닌 ‘무통’(無通), ‘무관심’(無關心)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민(民)의 무관심은 사약과 같다. 서울시의회 사무처도 “상당히 아픈 부분으로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과오를 인정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내년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성과 보여주기에 혈안이 됐기 때문이다. 현재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한 민원접수 및 처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굳이 키오스크를 설치한 이유가 궁금했다.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의장단으로부터 ‘의회홍보를 위한 오프라인 접점을 늘리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실제 김명수 서울시의장 등은 각종 인터뷰에서 시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했다며 키오스크 설치를 성과로 내세웠다.

서울시 살림을 감시하는 의원들의 대표격인 의장단 추진사업에 반대의사가 나오긴 쉽지 않다. 없는 세수는 또 이렇게 낭비가 됐다. 1원 하나 허투루 쓰지 말아야 할 의회는 파일저장고로 전락한 ‘의정포털’ 구축비(6억 3793만 6000원)와 호화청사논란이 됐던 의원회관 리모델링 공사비(50억원)에도 60억원 가까운 혈세를 쏟았다. 곳곳이 구멍이다.

서울시의회는 “시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시민들의 뜻을 의정에 보다 면밀히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해명했다. 의도는 좋았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지 않나. 진정 시민들을 위한 결정이라면 내년 지방선거 이후에도 키오스크는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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