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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朴대통령, 당선초엔 서슬퍼런 레토릭…최근엔 유화적 제스처 병행
새로운 관계 앞에 선 박근혜 정부와 재계
당선 이후 중기중앙회 가장 먼저 방문
전경련 회장단엔 단호한 체질개선 주문
“자꾸 누르는 것만 정부가 할 일 아니다”
때론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 강조도…

창조경제 앞장서고 협동·번영땐 도움손길
자기이익만 추구땐 가차없이 법·원칙 적용



“재벌 2, 3세들이 뛰어들거나…” “소상공인 삶의 터전을 침범하는…” “대기업들이 상권을 뺏는…”

지난해 12월 26일 대통령 당선 이후 처음으로 찾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말은 서슬이 퍼렇게 번득였다.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당선된, 재벌 사면을 절대 반대한 대통령답게 노구의 전경련 회장단을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당선 직후 전경련보다 먼저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 다양한 지원을 약속한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박 대통령은 행사 말미에 “새 정부는 기업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할 것이고,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하니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달라”고도 했지만, 웃음기 없던 서늘한 분위기를 뒤바꾸지는 못했다.

경제민주화의 기치를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직후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 다양한 지원을 약속했다. 반면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는 단호하게 체질개선을 주문했다. 박 대통령이‘ 채찍’만을 든 것은 아니었다. 지난 4월 1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자꾸 누르는 것이 경제민주화나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며 법과 원칙을 지키면‘ 당근’을 주겠다는 의미의 발언도 했다. 사진은 대선 이전인 지난해 11월8일, 경제단체장들을 만난 박 대통령.                                    [헤럴드경제 DB]

당시 참석했던 익명의 전경련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대기업이든 경제단체든 어디에도 빚진 것이 없다고 해도 처음부터 그렇게 단호하게 말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면서 “전경련이 살기 위해선 이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기억했다.

이보다 5년 전인 2007년 12월 28일.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9일 만에 전경련을 찾았다. 전임자인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 단 한 차례도 전경련을 찾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이때 전경련 회장단에 개인 휴대폰 번호도 공개했고, 재계의 건의사항을 실천할 국가경쟁력위원회란 기구 설치도 선물했다. 이명박정부 내내 이어졌던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곧 ‘재벌 프렌들리’였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을 맞이한 전경련으로서는 5년 만에 다시 냉탕(冷湯)에 몸을 담그게 됐다고 느끼기에 충분했다.

검찰과 국세청 등은 올 들어 효성그룹을 시작으로 CJ그룹, 롯데그룹 등 전경련 주요 회원사에 ‘메스(mes)’를 대고 있다. 국회에서도 여당이 앞장서 재계를 압박하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을 처리했다. 헌정 사상 최초로 과반 득표로 당선된 대통령의 서슬은 ‘대물림 권력’을 자랑했던 전경련 회장단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현존하는 단 한 사람의 ‘정치 9단’답게, 박 대통령의 전경련 다루기가 ‘채찍’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15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성실한 투자자에 대해서는 적극 밀어주고 뒷받침하고 격려하는 것이지, 자꾸 누르는 것이 경제민주화나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고 말한다.

‘법과 원칙’이란 울타리를 벗어나지만 않으면 채찍이 아닌 당근을 주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실제 이후 청와대를 중심으로 여권에서는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이 등장했고,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는 박 대통령의 미국과 중국 방문에 사상 최대 규모의 사절단을 꾸려 화답했다.

야권은 청와대가 경제민주화에서 후퇴했다며 박 대통령의 변심(變心)을 공격했지만, 여권과 청와대 주변에서는 ‘바뀐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원칙이 바로 서고 공정한 사회’, 그리고 ‘비정상이 정상으로 되돌려진 사회’라는 박 대통령의 소신은 흔들림이 없다는 설명이다.

즉, 박 대통령은 전경련에 대해 그 역할을 인정하고 경제발전을 위해 지원하겠지만, 원칙을 벗어난 비정상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는 해석이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경련 건물 앞 머릿돌에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적은 휘호가 지금 시대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전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0·26 사태가 터지기 며칠 전 ‘創造(창조), 協同(협동), 繁榮(번영) 1979年 11月 16日 大統領 朴正熙’라는 휘호를 전경련에 전달했다.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얼마 전 영훈국제중학교와 관련해, 국제중학교에 대해 설립목적에 맞아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이는 경제단체는 물론 모든 단체에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결국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에 앞장서고 각 경제주체와 협동해 국가와 경제 번영에 기여하는 경제단체에는 당근을, 구경제에 안주해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고 국가와 경제를 좀먹는 경제단체에는 가차없는 법과 원칙의 채찍을 휘두르겠다는 철학을 가진 셈이다.

한석희 기자/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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