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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전세제도 장기적으로 사라질까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전세제도는 장기적으로 사라진다.”

지난 1일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서울 관악구 소재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서 열린 ‘부동산시장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최 대표는 “전세 제도라는 것은 집값이 오를 때 유지될 수 있는 제도”라며 “그게 전제가 안되는 상황에서 전세 제도가 장기적으로 ‘페이드아웃’(소멸) 될 것“이라고 말했죠.

최 대표의 말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여러 인터넷 부동산 관련 게시판에서는 새삼스럽게 전세제도의 미래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 부동산 토론 게시판엔 이런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제도는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 집주인 입장에서 집값은 하락하고, 전세보증금보다 월세의 과실이 큰데 누가 전세를 놓겠나? 월세로 돌리든 팔든 할 것이다.”(아이디: 시티맨)

“전세제도 사라지지 않는다. 전세 보증금 총액이 지난해 기준 300조원을 넘었다고 한다. 전세 제도가 사라지면 이 돈을 집주인이 토해내야 한다. 사실상 사금융 역할을 하는 전세제도가 어떻게 사라질 수 있겠나.”(아이디: 화이트홀스)

사실 전세제도가 사라질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꽤 오래전부터 전셋값 폭등기엔 수시로 등장하는 레퍼토리입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저금리기조가 본격화하는데 집값은 하락하고 전셋값은 상승하자 수시로 등장한 논란입니다.

전세 제도가 중장기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데는 대부분 전문가가 동의합니다. 과거 집주인이 전세를 놓는 이유는 전세 보증금의 활용도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집주인이 전세를 놓으면 기대할 수 있는 게 많았습니다. 집값 상승기엔 세입자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받아 작은 돈으로 집을 사면 나중에 집값이 올라 큰 시세차익을 누리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자기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전세보증금을 활용한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하니, 너도나도 전세를 놓으려 했죠. 당시엔 금리도 높았고 투자할 곳도 꽤 있었으니 전세보증금을 받아서 적당히 굴려도 월세 보다 높은 수익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집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저금리 기조로 목돈을 투자할 곳도 만만치 않습니다.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집을 사려는 사람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기존 집주인도 전셋값을 조금 높이느니 차라리 매달 꼬박꼬박 원세를 받는 걸 선호합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전세 비중은 계속 줄어들고 결국 월세가 임대시장의 중심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 너도나도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서 전세 물건은 부족한데 월세는 남아도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중개업소마다 전세는 모자라 시세가 폭등하는데, 월세는 싸게 구할 수 있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네요.

월세 물건이 급증하니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월세전환율’은 바닥으로 추락합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달 아파트 월세 전환율은 6.68%로, 통계를 작성한 2002년 12월 이후 가장 낮았습니다. 월세전환율은 전세를 월세로 바꿀 때 전셋값을 기준으로 적용하는 연간 수익률입니다. 전세보증금 1억원짜리를 월세로 돌린다면 2002년엔 연간 1004만원(월세 전환율 10.04%)을 받았지만 현재는 668만원(월세 전환율 6.68%)만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월간 기준으로 매월 84만원씩 받던 게 56만원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박합수 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은 “강남의 고가 전세는 월세 전환이 쉽지 않겠지만 저가 전세는 모두 월세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전세 물건은 부족하니 전셋값은 연일 폭등세입니다. 전문가들은 주택 매매시장 침체가 계속되면 임대시장은 앞으로 월세가 늘어나고 전세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임대시장이 월세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단기간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혹자는 임대시장이 월세 중심으로 재편되려면 최소 20년 이상은 걸린다고 하더군요. 무엇보다 많은 집주인이 임대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내줄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가계부채 1000조원에 육박하는 시기입니다. 하우스푸어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고요. 웬만큼 여유가 있는 집주인을 제외하고 전세보증금을 줄테니 나가라고 하긴 쉽지 않을 겁니다. 다만 전셋값을 올리면서 올라간 부분에 대해선 월세를 내라는 식의 ‘반전세’는 더 활성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전세보증금을 빼줄 여력이 없는 집주인도 수익률을 만회하기 위해 전세 인상분을 월세로 돌려 순수한 전세 매물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정부도 이런 임대시장의 변화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전세가 앞으로 점점 사라지고 월세 중심으로 재편되는데, 전세입자 중심의 임대주택정책을 게속 확대해서는 안된다는게 많은 전문가들의 제언입니다. 계속 축소될 전세입자를 위해 전세보증금 대출을 확대하는 등의 대책은 무의미하다는 전문가도 있더군요. 그보다 월세에 보다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월세입자에 대한 지원과 보호를 강화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겁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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