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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과 함께할 수 있는 제조회사로 발돋움, ‘제2의 꿈’을 이루다
[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1995년, 장애인이 됐다. 꿈을 잃었다.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됐다. 원래는 IT 전문가가 되려 했다. 대학에서도 컴퓨터를 전공했다. 걷지 못하는 것이 컴퓨터를 하는 데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장애인’이 됐다는 좌절감이 꿈을 마비시켰다.

2011년, 다시 꿈이 생겼다. 장애인으로 살아본 세상은 비정했다. 세상은 장애인들에게 당연한 듯 차별을 강요했다. 똑같이 일해도 일반인들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야 했다. ‘장애인과 함께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월매출 6000만원을 올리는 복사용지 제조업체 맑은기업(대표 황희)은 그렇게 시작됐다.

황 대표가 처음 법인을 설립한 것은 2011년 9월. ‘장애인 고용창출을 위한 예비 사회적 기업’ 으로 맑은기업을 세웠다. 사무용품유통(MRO)과 휴지제조 사업을 하려 했지만 만만찮았다. MRO 사업은 덩치가 큰 몇몇 업체가 판로를 장악하고 있었다. 휴지제조에는 어마어마한 설비투자가 필요했다.


구원의 손길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2012년 어느 날 황 대표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울산지역본부 소속 김영주 전문위원의 전화였다. “가능성이 있는 청년창업 기업에 자금과 컨설팅을 지원해 주려 한다”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의 지도에 따라 청년창업자금을 신청했다.

이후 치열한 경쟁 끝에 창업자금 1억원을 지원받게 된 황 대표를 김 전문위원이 ‘밀착 마크’했다. 김 전문위원은 우선 황 대표에게 ‘복사용지 제조’로 사업분야를 변경할 것을 제시했다. 회사가 자리한 울산에 비슷한 업체가 없다는 시장조사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공장부지와 복사용지제조설비를 매입하는 데에도 김 전문위원의 ‘잔소리’는 이어졌다. 황 대표가 고른 200여 평의 공장부지 대신 김 전문위원은 시내에 위치한 작은 조립식 공장을 추천했다. 장애인 직원들의 출퇴근 거리와 주변 식당이용료까지 고려한 맞춤형 멘토링 이었다.


황 대표는 “처음에는 김 전문위원님의 핀잔 때문에 서류를 들고 상담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서웠는데 이제는 꼭 아버지 같다”며 웃었다.

그토록 세밀하게 준비를 했지만, 사업을 시작한 처음 몇 달간은 수익이 전혀 나지 않았다.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 동안 맑은기업이 낸 매출은 고작 1000만원 정도. 한 달에 채 300만원어치의 제품도 팔지 못했다. ‘만들기만 하면 알아서 팔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마케팅이 필요했다. 김 전문위원은 황 대표의 손을 잡고 울산항만공사 등 공공기관을 찾아 제품을 홍보했다. ‘제품의 질은 일반회사와 같거나 높게, 가격은 낮게’, ‘장애인 기업임을 어필하지 말라, 서비스와 질로 승부하라’는 원칙도 세웠다. 그 원칙은 ‘장애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황 대표의 주관과도 맞아떨어졌다.


김 전문위원의 도움으로 몇 군데의 거래처가 생기자 판로가 훨씬 수월하게 개척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6월, 맑은기업은 이제 누적 매출 2억 5900만원에 직원 19명(장애인 포함)을 거느린 어엿한 중소기업이 됐다. 맑은기업은 장애인 고용 및 복지에 있어서는 지역 최고를 달린다.

이제 맑은 기업은 복사기 토너 및 가위, 펜 등 각종 사무용품을 생산, 유통하는 종합사무용품기업을 꿈꾼다. 황 대표는 “전국에 지점을 하나씩 내 좋은 장애인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의무 컨설팅 기간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맑은기업을 컨설팅하고 있는 김 전문위원은 “하반기에는 매출을 연 9억원대로 성장시키고 더욱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어 황 대표를 도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yesyep@heraldcorp.com



<사진설명1> 맑은기업 황희 대표가 장애인 직원들과 함께 작업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설명2, 3> 맑은기업 황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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