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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법개정안, 악법으로 가면 안된다/김영상 산업부 재계팀장
김영상 산업부 재계팀장
“경제민주화법?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상법개정안이 남아 있잖아요.”(10대그룹 임원)

현오석 경제부총리 등 정부 측 인사가 최근 경제민주화보다는 경기활성화에 방점을 두겠다고 하자, 재계인사가 한 말이다. 무소불위 국회가 아직 버티고 있어 정부 측 의지와 무관하게 9월 국회에서 경제민주화법은 다시 쏟아질 것이고, 앞서 상법개정안 화두가 워낙 메가톤급 사안이어서 재계의 긴장감은 여전하다는 뜻이다.

실제 당장 재계의 위기감은 상법개정안에 꽂혀 있다. 9월 국회의 경제민주화 공세도 두렵지만, 상법개정안의 위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지난달 16일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감사위원을 뽑을 때 지배주주의 영향력을 줄이고, 소액주주를 보호하자는 게 기본 취지다. 언뜻보면 그럴 듯 하다.

재계는 강력 반발 중이다. 이유는 정부 취지는 왜곡될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이 상법 개정안은 500주, 1000주를 갖고 있는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뒀지만, 시행되면 소액주주보다는 이른바 펀드 등 ‘큰 손’의 이익이나 이해를 보장하는 흐름으로 변질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일수록 경영권을 방어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상법개정안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라며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지분을 90% 갖고 있고, 헤지펀드가 5%씩 갖고 있다고 치자. 만약에 헤지펀드가 합세한다면 알토란 같은 기업이 헤지펀드의 놀잇감이 되고 그 기업은 경영권 방어에 치중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어폐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다보니 건실한 기업도 경영방어를 위해 ‘이브의 유혹’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지분율을 친인척이나 우호세력에 계속 나눠줘 경영권에 이상이 없도록 하는 데 몰입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라는 것이 선(善)으로 유도해야 하는데, 이번 상법개정안은 악(惡)으로 들어갈 틈을 넓혀주는 개악일 수 있다고 경고하는 기업인도 많다.

투자와 고용에 걸림돌이 돼 경제활성화에 역행할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기업 경영 자금이 투자와 고용에 투입돼야 하는데, 지분율 높이는데만 쓰이면 투자와 고용은 찬물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집중투표제의 사실상 의무화 추진 역시 재계로선 경계 대상이다. 소액주주 보호는 커녕 경영 활동에 사사건건 개입하려는 비우호세력들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라는 것이다.

전경련과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가 이번 상법개정안에 대해 공동 대응키로 한 것은 이같이 경영권에 심각한 훼손을 끼칠 뿐 아니라 경제활성화에 역행할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재계단체의 반발에 당정은 완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재계의 기대치만큼 특단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소액주주 보호는 당연하다. ‘공정’은 경제민주화 대의 중 하나다. 그렇다고 해도 경영 매진과 일자리창출, 투자로 경제선순환에 올인해야 할 기업이 해외투기 세력이나 적대적 인수합병 세력 방어에만 치중, 기업 본연의 일을 하지 못하는 구조는 안된다. 현명한 조율이 필요하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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