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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록페스티벌의 미래에 드리워진 어둠을 상기시키다
지난 주말 지산월드락페스티벌ㆍ 펜타포트락페스티벌ㆍ부산국제록페스티벌 등 대형 록페스티벌 3개가 전국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열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오는 14ㆍ15일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슈퍼소닉2013, 17ㆍ18일엔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시티브레이크19도 예정돼 있다. 올 여름에 개최되는 대형 록페스티벌의 수는 다섯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록페스티벌 시장이 대형 자본의 개입에 따른 상업성 논란 속에서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다른 행보를 보여주며 록페스티벌의 근본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지난 2일부터 4일 부산 사상구 삼락생태공원에서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이 열렸다.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지난 2000년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시작해 올해로 14회째를 맞은 국내 최장수 록페스티벌이다. 부산은 전통적으로 록음악과 친숙한 지역이다. 디오니소스ㆍ프라즈마ㆍ스트레인저 등 80~90년대 전국적인 명성을 떨친 밴드들 다수가 부산에서 첫 발을 내디뎠다. 최근 사회풍자적인 포크 음악과 이효리의 정규 5집 작곡 참여로 화제를 모은 싱어송라이터 김태춘도 부산 출신이다. 부산은 록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사실이 조금도 이상할 것 없는 도시다. 

지난 3일 가수 한영애가 부산 사상구 삼락생태공원에서 열린 부산국제록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공연을 벌이고 있다.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의 가장 큰 매력은 무료입장이다. 고가의 티켓이 예매를 망설이게 만드는 다른 록페스티벌과 가장 구별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인업은 조금도 초라하지 않았다. 첫 날(2일)엔 노브레인ㆍ딕펑스ㆍ해리빅버튼ㆍ톡식 등이, 둘째 날(3일)엔 한영애ㆍ크라잉넛ㆍ로맨틱펀치ㆍ김바다ㆍ피아 등이, 셋째 날(4일)엔 YBㆍ데이브레이크ㆍ디어클라우드 등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 3일 서울에서 내한공연을 가진 핀란드 출신 파워메탈의 거장 스트라토바리우스(Stratovarius)도 4일 부산을 찾았다. 이번 행사를 찾은 관객은 3만 명(경찰 추산)에 달한다. 무료입장인데다 적지 않은 역사를 가진 행사인 만큼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이미 지역 행사로 자리 잡은 모양새였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연령층 또한 매우 다양했다. 무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음악에 맞춰 막걸리에 취해 춤을 추는 노인들의 모습은 다른 록페스티벌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동시에 여러 무대를 운영하는 다른 록페스티벌과는 달리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하나의 무대를 중심으로 충실하게 진행됐다. 이는 관객들의 무대를 향한 집중도를 높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한 기획사 관계자는 “여러 무대를 운영하면 라인업이 다양해 보이지만 착시효과일 뿐, 오히려 공연 시간이 겹쳐 보고 싶은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며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의 무대는 하나뿐이어서 부족해 보일지 모르지만 공연을 즐기기엔 오히려 더 낫다”고 평가했다. 이날 무대에 오른 한 아티스트 역시 “다른 록페스티벌처럼 한 무대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관객들을 양몰이 하듯이 다른 무대로 끌고 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좋았다”며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록페스티벌의 기본 정신인 자유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라 즐거운 무대”라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여름 록페스티벌 시장의 과열은 록페스티벌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특히 해외 아티스트 섭외를 고액의 출연료를 제시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반면, 국내 아티스트 섭외엔 출연료를 낮추기 위해 간을 보는 태도를 보였던 몇몇 록페스티벌의 태도는 관계자들 사이에 많은 구설수를 불러일으켰다. 김기웅 부산문화관광축제조직위원회 홍보팀장은 “수익을 남기기 위한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부산시로부터 나오는 5억 원의 예산과 여러 곳에서 지원 받은 1억 원의 협찬금을 모두 공연을 위해 사용했다”며 “무료입장을 고수하는 데다 워낙 록페스티벌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아티스트 섭외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한 공연기획자는 “올해 대부분의 록페스티벌이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당장 사라지는 록페스티벌은 없겠지만, 4~5년 사이에 상당수의 록페스티벌이 2000년대 중반에 난립했던 영화제처럼 행사를 접게 될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대형 록페스티벌들이 상혼에 휩쓸려 자유와 열정 등 기본정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 속에서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의미심장한 자리였다.

부산=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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