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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고를 비틀다…허세를 비꼬다
구찌(GUCCI)→부찌(BUCCI)
샤넬(CHANEL)→채널(CHANNEL)
에르메스(HERMES)→호미스(HOMIES)

명품 브랜드 패러디 티셔츠 인기
재치·유머넘어 세계적 트렌드로




영화 ‘건축학개론’의 승민(이제훈 분)은 서연(배수지 분)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수입브랜드 티셔츠를 입고 나가지만, 알고 보니 ‘짝퉁’이었다. 철자 틀린 ‘게스’ 티셔츠가 창피해진 승민은 차에서 내려 쏜살같이 도망간다. 그런데 프랑스 브랜드 지방시를 연상케 하는 ‘지용시’ 모자(승민의 기준엔 이 역시 ‘짝퉁’이다)를 쓰고 다니는 지드래곤이라면? 과연 도망쳤을까.

요즘 패러디 티셔츠가 인기다. 에르메스(HERMES)는 호미스(HOMIES)로, 샤넬(CHANEL)은 채널(CHANNEL)로, 구찌(GUCCI)는 부찌(BUCCI), 지방시는 지용시로 일부러 바꿔 제작한 옷이다. 누가 봐도 ‘알 만한’ 브랜드의 로고를 살짝 비튼 제품이다. 패션계에서는 이를 ‘페이크(FAKEㆍ속임수)’ 패션이라고도 부른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재미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명품’ 추종자들이나 물질 만능주의를 비꼬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고 전한다. “나는 허례허식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 “브랜드에 열광하지 않는다”는 ‘자기 표현’이란 얘기다.


패러디 패션의 인기에는 아이돌들이 한몫하고 있다. 2NE1의 산다라박과 씨엘, 배우 한채아도 최근 발망(BALMAIN)을 패러디한 발린(BALLIN) 맨투맨 티셔츠를 입어 화제가 됐다. 씨엘은 파급력이 큰 ‘공항패션’으로 이 패러디 티셔츠를 선택해 네티즌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발린’은 지드래곤의 ‘지용시’보다 한발 더 나아갔는데, 재치와 유머를 넘어 패션성까지 갖췄다.

패러디 티셔츠 열풍은 해외에서 먼저 시작됐다. 특히 음악 속에 사회 비판과 풍자를 많이 담아내는 힙합 뮤지션들의 패션코드와 잘 맞아떨어졌다. 래퍼 에이셉 라키는 하이엔드 브랜드 ‘꼼 데 가르송’을 ‘꼼 데 퍽다운’으로 바꿨고, 할리우드 스타 마일리 사이러스는 ‘에르메스’를 ‘호미스’로 변형한 티셔츠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패러디 티셔츠는 대부분 해외에서 만들어진다. 대표적인 미국의 ‘에스에스유아르(SSUR)’는 국내에도 주요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해 있다. 2004년 뉴욕에서 탄생한 ‘리즌(Reason)’도 펜디(FENDI)를 흉내낸 트렌디(TRENDI)로 뉴욕타임스 등 현지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가격도 2만~3만원대로 저렴한 편이다. 씨엘의 ‘발린’티셔츠를 만든 브라이언 리히텐버그의 옷은 약간 프리미엄이 있다. 5만~10만원 선. 국내 최초로 패러디 티셔츠를 브랜드화해 일본ㆍ홍콩으로 수출하는 ‘모낫(MONO’T)’의 옷은 2만원이 채 안 된다.

국내 패션시장에서도 패러디 티셔츠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젊은층의 패션 트렌드를 리드하는 아이돌 스타들이 자주 입고 등장하며 유행을 만들고 있다. 이주희 ‘모낫’ 대표는 “처음에는 일본 등 해외 쪽 수요 때문에 티셔츠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최근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 문의가 많아서 본격적으로 온라인몰을 통해 판매를 시작했다”고 전한다.

11번가에 따르면 패러디 티셔츠 대표 브랜드 SSUR와 DOPE의 상품 매출이 지난 6~7월 동안 전년 같은 기간 대비 각각 30%, 40% 상승했다. ‘패러디 티셔츠’란 쇼핑검색어는 2012년 1000위 밖에 있었지만, 2013년 7월에는 600위권으로 껑충 뛰었다. 남은희 11번가 패션문화연구소 소장은 “눈속임을 넘어 즐거움이 더욱 강화된 ‘페이크 패션’이 진화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명품을 적극 소비할 만큼 충분한 경제력이 있는 ‘패션 고관여자’ 중심으로 이러한 경향이 번지는 게 눈에 띈다”고 설명했다.

박동미 기자/pd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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