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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한 '완득이' 를 위하여> “한국문화만 강요…시집이 아니라 감옥”
결혼 이주여성의 편치않은 정착
고향음식 하면 쓰레기통에 버려
“몸에서 더러운 냄새난다” 학대도
상당수가 비인간적 대접에 상처
부부갈등 상담 1년새 17%나 늘어


“결혼이주여성이 늘고 있지만 1500만원, 2000만원에 여성을 사왔다고 생각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되죠. 인식이 우선 바뀌어야 행복한 다문화가정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8년째 결혼이주여성 쉼터를 맡고 있는 A 원장은 결혼이주여성의 상당수가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 채 폭력과 학대에 노출돼 있다며 ‘다문화가정’의 인식문제를 거론했다.

중국 출신의 결혼이주여성인 B(30) 씨는 8년 전 한국인 남편을 만났다. 현재 7세 딸과 5세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지만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남편과 시댁식구에 맞춰 살려고 노력했지만 결혼 초반에는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이 많았다.

B 씨는 “중국에선 토마토를 계란과 섞어 볶아 먹는데 남편은 그런 음식을 느끼하다고 싫어했다”면서 “임신했을 때 고향음식이 먹고 싶었는데 전혀 먹지 못해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시댁식구가 “한국식 문화를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도 B 씨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는 “보통 조선족은 제사를 처음 몇 년만 지내는데, 한국에서는 매년 기일마다 제사를 지내야 했다”며 “많은 제사를 혼자 준비하고 감당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견디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식, 한국문화’를 강요함에 따라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상상 이상이다.

A 원장은 “결혼이주여성들의 배경 문화를 낮게 보고 무시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결혼 상대가 나고 자란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다문화가정에선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에서 결혼이민자와 그 가족을 상대로 제공하는 문화 이해 프로그램은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국에서 외국인이 90일 이상 한국에 거주하려면 외국인등록증을 받아야 한다. 결혼이민자의 경우 외국인등록증을 받기 전 결혼상대자 및 그 가족과 함께 ‘해피스타트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체류기간이 최초 1년에서 2년으로 연장된다. 하지만 이 조차도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다. 특히 프로그램의 내용이 ‘한국생활 길잡이 동영상’ ‘외국인 등록 절차 동영상’ 등의 간단한 안내에 그치고 있어 결혼 상대국의 문화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정병호 한양대 글로벌다문화연구원장은 “다문화란 다언어ㆍ다민족을 전제로 한다. ‘다름’이 조화를 이루어 공존하는 것이 결국 다문화 사회의 지향점”이라면서 “결혼 상대국의 문화와 관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가 다문화가정에선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문화가정이 겪는 문화적 차이는 결혼이주여성들이 경험하는 갈등 중 빙산의 일각이다. 폭력과 학대에 노출돼 있는 결혼이주여성도 상당수다.

베트남 출신의 C(25) 씨는 ‘머리를 감지 않아 냄새가 난다’는 식의 언어적 학대는 물론 “성관계에 응해주지 않는다”며 수시로 폭행을 당하다가 결국 집을 나왔다. C 씨는 결혼이주여성 쉼터로 거처를 옮겼지만 남편에게 여권을 빼앗겨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했다.

C 씨는 “시어머니는 내가 베트남 음식을 만들어 먹기라도 하면 냄새가 난다며 쓰레기통에 버렸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편은 수시로 때리고 괴롭혔다. 씻었는데도 더럽다는 말을 자주 들어야 했다”며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부부 갈등을 겪는 결혼이주여성의 상담은 총 8만849건(중복 상담 포함)으로 전년보다 17.5% 늘었다. 상담 이유별로 보면 부부 갈등이 1만3044건으로 39.5% 늘었고, 가정폭력도 8417건으로 46.5%나 급증했다. 심한 갈등 끝에 부부 중 한 명이 이혼을 원하면서 제기한 이혼 법률 상담도 1만539건으로 16.2% 증가했다.

쉼터 관계자는 “폭력과 학대를 이기지 못하고 이혼한 결혼이주여성은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한국에 계속 살고 싶어한다”며 “‘디딤터’ 같은 이들을 위한 지원 시스템 마련되고 있지만 대부분 대도시에 집중된 경향이 있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결혼이주여성이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황유진 기자/hyjgo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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