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김학수의 문화스포츠칼럼 - 스포츠서도 ‘남북한은 무승부가 아니라 한국의 승리였다’
지난 27일 미국과 남북한에서 6· 25 정전 60년 행사가 열렸다. 역사적으로 ‘0’으로 끝나는 기념주기행사를 성대하게 갖고 시대적 의미와 국가적인 성과를 재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기념공원에서 열린 기념식에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참석해 “한국전쟁은 무승부가 아니라 한국의 승리였다”고 규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5000만 명의 한국인들이 누리는 자유, 활발한 민주주의,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는 한국이 전쟁에서 승리한 데 따른 결과”라며 “억압과 빈곤에 빠져 있는 북한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진정한 변화와 평화의 길로 나선다면 남북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고 남북한 공동 발전의 길을 적극 열어갈 것”이라며 DMZ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유니세프를 통한 영유아무상원조, 민간의 대북지원 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한국의 6· 25전쟁 승리선언에 북한의 김정은도 맞장구쳤다.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에서 김정은을 대신해 최룡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은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 발전에 대해 언급하고 대대적인 군사퍼레이드를 가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북한의 열병식을 ‘완벽한 고립’ 속에서 광란의 잔치를 가졌던 것으로 보도했다.

한때 미국에서도 ‘잊혀진 전쟁’으로 가려져있던 6· 25전쟁이 세계인들로부터 올바른 평가를 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입장과 관점에 따라 다르게 전쟁 결과를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남북한 스포츠도 6· 25 정전과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6· 25 전쟁이후 먼저 산업화, 공업화를 이룬 북한은 1960년대와 1970년대 동하계 올림픽과 월드컵 등에서 월등한 성적을 올리며 사회주의 스포츠 강국으로 위세를 떨쳤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물리치고 8강에 진출했을 때,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사격의 리호준이 소구경소총 복사에서 만점을 기록하고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 이 소식은 한국 국민에게 공공연한 비밀이 간주됐다. 북한이 국제 스포츠무대에서 한국보다 경쟁력을 갖췄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북한 스포츠 상황도 시대적 변화와 함께 크게 달라졌다. 1970년대 중반 한국이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스포츠 국력도 북한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가 건국 이후 첫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북한을 앞서 나갔으며 동서화합의 무대였던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종합 4위를 차지하며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한국은 2002년 한· 일 월드컵 4강, 월드컵 8회 연속 출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등으로 북한의 현재 국력으로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섰다.

6· 25 정전 60년이 주는 교훈은 스포츠에서도 똑같이 중요하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체제가 스포츠의 경쟁력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체대 스포츠언론연구소장>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