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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덕준의 메이저리그 관람석> LA가 ‘작은 한국’ 이 됐던 날
5회초가 끝났을 때였던가요. 갑자기 화들짝 놀랄 만큼 엄청난 데시벨의 환호성이 터져올랐습니다. 멀티비전 스크린에 등장한 인물. 싸이였지요. 곧바로 ‘강남스타일’의 선율이 퍼졌고, 이어지는 화면엔 관중석에서 인종의 유색을 가리지 않고 일어서서 말춤을 추는 관객의 모습이 줄이어 비춰졌습니다.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다저스타디움은 온통 한국과 한국인, 코리아 일색이었습니다.

추신수와 류현진이 맞대결을 펼친 지난 28일(한국시간)의 다저스타디움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줄곧 ‘작은 서울’이었고, 메이저리그의 ‘코리아타운’이었습니다. 그 가장 상징적인 순간이 바로 싸이가 포착된 때였습니다.

애당초 메이저리그의 큰 흐름 속에서 추신수와 류현진의 맞대결이 갖는 의미는 우리 한국인이 생각하는 만큼 크지 않습니다. 숱한 이야깃거리 가운데 아주 작은 한 토막의 에피소드는 될지언정 그것이 미국 대중문화의 큰 축인 메이저리그 주변에서 새삼 입에 오르내릴 만한 화제는 되지 못한다는 거지요.

미국 본토 밖에서 태어난 선수들이 메이저리거 3명 가운데 1명꼴인 현실에서 같은 국적의 외국인 선수끼리 한 경기에서 맞상대하는 일이 미국인들에게 뭐 그리 대수이겠습니까. 그런 일이 얘기가 된다면 90여명이 뛰고 있는 도미니카공화국의 신문과 방송은 거의 모든 뉴스시간을 ‘우리끼리 맞대결’로 도배하겠지요. 이웃 일본 출신조차 11명이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으니 호들갑스럽기로 유별난 그 나라 매체들은 또 오죽하겠습니까.

다만 우리로서야 현역 메이저리거가 단 두 명뿐이다 보니 그들의 존재감이 소중할 수밖에요. 그 희소가치로 인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맞대결’이라는 해프닝이 이벤트로 승격돼 국민적인 자랑스러움을 극대화한 셈이지요.

다저스타디움은 그날 거의 ‘잠실 야구장’이나 다름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비공식 집계이긴 하지만 5만4000여명이 들어찬 관중 가운데 1만명 이상이 한국인이었다더군요. 실제 체감한 한국인 관중은 그 이상이면 이상이지 결코 덜하진 않았습니다. 1만명이라고 쳤을 때 LA 인근에 거주하는 한국인(한국 태생만 계산한 숫자)이 대략 50여만명이라고 하니 2% 정도에 해당합니다. 별 거 아니라고요? 이렇게 따져보지요. 서울 시민 1000만명의 2%가 야구장에 모이면 몇 명인가요? 20만명입니다. 수용능력과 별개로 서울에 있는 한 장소에서 벌어진 특정한 이벤트에 20만명이 모였다고 생각합시다. 추신수와 류현진이 맞대결한 날 다저스타디움에 모인 한국인 관객이 얼마나 엄청난 수인지 짐작될 만하지요.

그토록 많은 한국인 관중이 한국인 메이저리거끼리의 대결에 의미를 두지 않으려던 미국인과 미국 미디어를 움직였을 거라고 봅니다. 게다가 글로벌 가수가 된 싸이의 등장으로 인해 스타디움에 폭죽처럼 터져오른 환호성이 또 한몫을 했을 겁니다. 거기에 자극받은 미디어 가운데 한 곳이 LA타임스였던 모양입니다. 류현진과 추신수를 중심으로 그날의 경기 기사를 대문짝만 하게 스포츠섹션 톱으로 실었더군요. 내용 또한 한국인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그들 두 선수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를 기조 삼고 있습니다. ‘다저스타디움이 류현진과 추신수에게 비공식적인 고향이 됐다’라는 식으로 LA 시민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표현도 살짝 끼워넣고 말입니다.

한국은 여러모로 10여년 전에 비해 글로벌 사회에서 그 존재감이 부쩍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박찬호ㆍ박세리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고, 삼성과 현대만으로도 뭔가 아쉬웠던 국위의 선양은 다른 분야의 동반 성장으로 인해 보다 분명하게 현실화되는 듯합니다. 그 증거가 류현진과 추신수, 싸이 그리고 1만여 한인동포가 공유했던 다저스타디움의 한나절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미주헤럴드경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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