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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간항공의 어머니’ 김경오
대한민국 최초 여성 파일럿…여성 차별·한계 극복 공로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

곡예비행만큼 아슬아슬 흥미진진한 인생 역정…다이내믹한 그녀의 삶 속으로


소녀는 하늘을 날고 싶었다. ‘공군 입대’라는 운명이 이끈 길목에 섰지만 도저히 깨뜨릴 수 없을 것 같은 ‘금녀의 벽’이 두텁게 버티고 있었다. 파일럿이 되겠다는 목표는 “여성이라서 안 된다”, “여성이라서 못한다”, “할 만큼 했으니 이쯤에서 그만둬라” 등의 수없는 말 앞에서 흔들릴 법도 했지만 소녀는 포기할 줄 몰랐다. 1934년생. 올해 팔순을 맞은 김경오(79ㆍ여) 대한민국항공회 명예총재의 10대는 이렇게 당돌했고 도전적이었다. 김 총재는 건국 이후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한계를 극복한 인물로 평가받아 최근 제18회 여성주간 기념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빛나는 훈장 뒤에는 공군에 입대해 대한민국 첫 여성 조종사가 되기까지의 비행곡예만큼이나 아슬아슬하고 흥미진진했던 인생역정이 숨어 있다. 김 총재가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던 지난 2일, 그를 만나 다이내믹한 인생스토리를 들어봤다. 그는 팔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지난날을 생생하게 회상했다.

▶“창문을 뛰어넘어서라도… 공군이 되고 말 거야”=낮에도 호랑이가 나올 법한 험한 산골. 김 총재는 평안북도 강계에서 1934년 5월 28일 태어났다. 이웃집까지 모두 합쳐도 기껏해야 10~11채뿐이었던 두메산골에서 그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교육에 열의가 높은 부모님 덕분에 김 총재는 어려서부터 압록강 건너에 있던 국제학교에 다녔다. 부모님은 ‘여자아이’라 해서 교육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그가 열두 살 되던 무렵 우리나라가 8ㆍ15 해방을 맞았다. 1945년 그 해 10월 12일, 온 가족은 삼팔선을 넘어 남한으로 내려왔다. 혼란통에 피난민 신분이었지만 부모님은 김치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며 자식 교육을 뒷바라지했다. 김 총재의 오빠들은 연세대에 다니며 기숙사에서 지냈고 김 총재는 언니들과 함께 당시 한성여자중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갔다.

인생의 전환점은 그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동덕여자고등학교에 다닐 때 찾아왔다. 열일곱 살이 되던 해 교장 선생님의 제안으로 공군 입대 시험을 치르게 된 것. 김 총재에 따르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독립한 사실을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해 남자 공군사관생도와 함께 여생도도 함께 모집하도록 했다. 전국에서 여고생 250명이 시험에 응시했고, 최종 15명이 남았다. 김 총재도 그중 한 명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어느 날 저를 부르시더니 시험을 치러 가라기에 뭔지도 모르고 시험을 봤죠. 얼떨결에 합격했고 알고 보니 공군 입대 시험이었어요. 막상 합격을 하고 보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살아남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 운명이 저를 비행조종사의 길로 이끈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김 총재의 부모님은 “군인이 되겠다”는 딸의 선언 앞에 ‘집안 망신’이라며 결사반대했다. 방문을 걸어잠그고 김 총재를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극구 말렸다. 당시 시대상으로 비춰 충분히 예상 가능한 반응이었다. 결국 도장을 받지도 못한 서류를 들고 창문을 넘어 집을 나왔다. 그때 넘은 창문이 하늘길로 연결될지 당시 그는 알지 못했다.


 
김경오 총재는 팔순의 나이에도 소녀 같은 외모와 미소를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는 “내 마음은 아직도 하늘을 날던 청춘의 한때나 마찬가지다. 나이를 잊고 사는 게 젊게 사는 비결”이라고 고백했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17세에 교장선생님 제안으로 공군 입대 시험 응시…집안 반대 심해 합격자 소집일에 창문 넘어 집 나왔지…부모님 대신 신익희 국회의장 도장 받아갔어

입대 2년만에 여생도 15명 중 남은 사람은 나 혼자…“조종대 잡고야 말겠다” 버티고 또 버티던 끝에 1952년 단독비행 성공 그 감격이란…

1957년 민간항공 공부하고 오라는 특명 받고 미국행…‘대한민국 공군 유일한 여자 조종사’로 유명해지면서 석달만에 비행기 기증 받아

팔십 나이에도 대한민국항공회 명예총재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내 마음은 아직도 하늘을 날던 청춘의 한때나 마찬가지

▶당돌한 소녀, 신익희 국회의장을 찾아가다=“부모님을 대신해 누구 도장을 찍어오면 될까요?”

합격자 소집 날, 지금의 서울 종각역에 위치했던 화신백화점 앞에서 김 총재는 한바탕 승강이를 벌였다. 공군 측이 부모님의 동의 없이는 버스에 탈 수 없다고 하자 김 총재는 부모님을 대신할 사람을 찾았다.

“누구 도장이면 되겠느냐고 되물으니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신익희 선생의 도장을 받아오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종로에서 국회의장 공관까지 단숨에 뛰어갔었죠.”

낯선 여학생이 아침부터 공관 앞에서 “도장을 찍어 달라”며 소란을 피우자 신익희 국회의장도 “당돌한 여학생”이라는 말과 함께 도장을 찍어줬다. 도장을 받은 소녀는 다시 광화문까지 한걸음에 뛰어가 김포로 막 출발하려던 버스를 겨우 붙잡아 탔다.

“그날 제가 조금만 늦었어도 오늘날의 김경오는 없었을지 몰라요. 뭐든 한 번 마음먹으면 하고야 마는 성격이 그때 빛을 발한 거죠.”

김 총재는 그 시절을 ‘도전’과 ‘끈기’로 요약했다. 입대 이후에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꿋꿋하게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자존심’ 때문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쉽게 열리지 않았던 하늘문… ‘오기’로 버틴 끝에 입대 3년 만에 비행조종대를 잡다=1949년 2월 15일, 열여덟 살이 되던 해 공군에 입대했지만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6ㆍ25라는 전시 상황임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쉽사리 조종 훈련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엄연히 시험을 치르고 선발돼 입대했지만 남성들이 조종 훈련을 받을 동안 여성들은 훈련에서 배제됐었죠. 군대 교육을 철저히 받아 애국심은 충만한데 나라가 전쟁통이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15명의 여생도가 입대를 했지만 하나 둘 “시집간다”, “대학 진학한다”며 중도 하차했다. 입대 2년 만에 여생도 중 남아 있는 사람은 김 총재가 유일했다. 이를 보다 못한 참모총장이 “그만두고 시집이나 가라”며 예편을 권할 정도였다.

“조종만 시켜주면 1등 할 자신이 있었는데 안 시켜주니까 오기가 생겼습니다. 꼭 조종대를 잡고야 말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버티고 또 버텼죠. 그랬더니 결국 두손 두발 다 들었다며 조종 교육을 받도록 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더라고요.”

하늘을 날 것만 같던 기쁨도 잠시였다. 막상 땅에서 몸이 분리된다는 공포감과 남성도 버텨내기 어려운 각종 훈련 앞에 김 총재는 또 한 번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 결과 1952년 5월 12일, 6ㆍ25 전쟁이 한창 치열했던 때 김 총재는 꿈에서만 그리던 단독 비행을 해냈다. 이후 그는 항법 등 본격적인 비행 공부를 마치고 그 해 말 후방에서 기밀서류 등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기에 이른다.

“전쟁 기간에 우리나라 하늘을 지키면서 결심했습니다. 평생 조종만 하겠고, 우리나라 공군을 위해서 살겠다고요.”

그는 그렇게 하늘에서 남은 인생길의 방향을 정하고 평생 다른 길로 곁눈질을 하지 않았다.


▶휴전… 그리고 또 하나의 임무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다=1954년, 치열했던 전쟁 열기가 한풀 꺾이고 휴전을 맞았다. 그리고 1956년 김 총재는 또 하나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 ‘미국에 가서 민간 항공을 공부하고 우리나라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라’는 특명이 떨어졌어요. 항공영어 외에는 영어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채로 미국 땅에 건너갔습니다. 이 또한 제 인생에 운명처럼 다가온 또 한 번의 큰 변화였죠.”

그렇게 김 총재는 공군 대위로 예편을 하고 이듬해인 1957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길퍼드대(Guildford College)에 입학했다.

“동양에서 온 까만 머리의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얼마나 신기했겠어요. 게다가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니까 보이지 않는 차별도 심했죠. 무엇보다 초반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고통 때문에 많이 괴로웠습니다.”

김 총재는 유학 기간의 어려움도 특유의 자신감으로 헤쳐나갔다. 군데군데 기워진 낡은 옷을 입고 있던 김 총재에게 한 백인 소녀가 “너 옷이 참 예쁘다”며 비아냥거릴 때면 그는 “내 옷이 그렇게 예쁘면 바꿔 입을래?”라며 당당하게 응수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접시를 닦는 등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힘이 들 땐 학교 뒤편 호숫가를 서성거리기도 했지만, 호수 옆 팻말에 적힌 자살자들의 이름을 보고 마음을 바꿔먹은 적도 여러 번이다.

“특명을 받고 미국 땅에 왔는데 쉽게 무너질 수 없었어요. 더군다나 타지에서 자살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깡으로 버텨냈지요.”

그 시절, 김 총재는 ‘훈련용 경비행기 한 대를 구입해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큰 꿈이 있었다. 학비도 빠듯한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목표였지만 그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는 경험을 한다.

▶동양 여성이 마이크를 잡으니… 3개월 만에 비행기 갖는 기적 이뤄=기숙사 룸메이트에게 과외 레슨을 받으면서까지 영어 공부에 몰두한 끝에 미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김 총재는 당시 교내지 인터뷰를 시작으로 강연에 나설 기회를 여러 차례 갖게 된다. 이후 ‘대한민국 공군의 유일한 여자 조종사가 유학 중’이라는 타이틀로 매스컴을 타게 되면서 김 총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방송사 퀴즈 프로그램에 초청을 받고 타임, 뉴스위크, 라이프매거진, 리더스다이제스트 등에 그의 인터뷰가 실리면서 이름과 얼굴을 알려지기 시작한 것.

“눈 뜨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뀐 기분이었어요. 각종 언론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제 사연이 알려지자 자동차ㆍ오토바이ㆍ냉장고 등 수만달러의 기부금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6ㆍ25 전쟁에 대해 강연을 하러 다녔고, 심지어 한 경비행기회사로부터 훈련용 경비행기 ‘파이퍼 콜드’를 무상으로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기적같이 비행기를 갖게 된 김 총재는 1963년 10월 3일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서 귀국 비행을 하면서 금의환향을 알렸다.

▶하늘 날 때마다 유서를 썼던 이유는…=“어린 두 딸을 떼놓고 비행 훈련을 하러 갈 때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죠. 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떠나니까요. 그래서 엄마가 없을 때 어떻게 생활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적어 장롱 벽에 붙여놓곤 했습니다.”

김 총재는 1965년 3월, 남편 이병모(81ㆍ경찰항공대 창설자) 씨를 만나 결혼하고 두 딸을 낳았다. 비행조종사에게는 늘 예상치 못한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그는 가족이 생기면서부터 비행을 하기에 앞서 늘 유서를 써놓고 집을 나서는 버릇이 생겼다.

“당시에는 민간 비행사의 경우 1년에 몇 시간씩 비행을 하라는 규정이 있었어요. 국내에서는 훈련할 만한 곳이 마땅히 없으니, 해외에 나갈 때마다 시간을 따로 내서 비행시간을 채워야 했거든요. 유서를 써놓는 것은 비행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거죠.”

두 딸을 낳아 기르면서도 김 총재는 대외 활동을 등한시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 민간 항공 대표로서 한ㆍ일 여성 항공인 정기 교류, 국제여류비행사협회ㆍ국제항공연맹을 통한 민간 외교에 힘을 쏟았다.

1983년 소련에 의한 KAL기 피격 사건 때는 국제항공연맹 부총재로서 상임이사회에서 외국 대표들을 설득해 만장일치로 규탄 성명 채택을 이끌어내 주목을 받았다. 팔순이 넘은 지금도 극동 지역 여성항공연맹 총재, 대한민국항공회 명예총재, 한국여성항공협회 명예회장 등을 역임하며 ‘민간 항공의 어머니’로서의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황유진 기자/hyjgogo@heraldcorp.com


김경오 총재 주요 이력 및 경력

▷사단법인 대한민국항공회 명예총재
▷제10, 11대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 역임
▷1934년 평북 강계 출생
▷1949년 공군 입대
▷1950년 동덕여고 졸업
▷1956년 공군 대위로 예편
▷1957~63년 미국 유학
▷1959년 국제여류비행사협회에 한국 대표로 가입
▷1959년 세계 현역 여류 비행사 연차대회 참가
▷1963년 한국여류항공클럽 대표 및 대한항공협회 이사
▷1967년 한ㆍ일 여류 비행사 친선 교환 방문 비행 참가
▷1987년 10월 동탑산업훈장(항공의 날)
▷1992년 10월 에어골드메달(국제항공연맹)
▷2000년 10월 석탑산업훈장(항공의 날)
▷2013년 7월 제18회 여성주간 기념 국민훈장 동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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