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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어만 봐도 ‘김선욱의 베토벤이다’ 하겠죠”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 연주 8부 능선 넘긴 김선욱
전체 32개 악장 2회 연주만 남아
국내 연주자로선 최연소 기록

막연했던 음악 이젠 감이 잡혀
온전히 나만의 색깔을 찾은듯



“처음엔 제가 원하는 게 뭔지 잘 몰랐어요. 지금은 관객이 연주자를 모르고 들어도 ‘김선욱인가?’라고 조금은 생각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피아니스트 김선욱(25)이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을 연주하는 대장정의 8부 능선을 넘었다. 전체 32개의 악장을 장장 2년에 걸쳐 반기에 2회씩 총 8회 연주하는 프로젝트는 지난달 말 6회까지 진행됐다. 국내서 쉽게 들을 수 없는 초기 소나타들부터 ‘비창’ ‘월광’ ‘발트슈타인’ ‘열정’ 등 대중적으로 친근한 곡들까지 순서대로 연주한 김선욱은 이제 후기 소나타가 펼쳐지는 9월(27~29번)과 11월(30~32번) 등 단 2회만 남겨뒀다.

“작년만 해도 이게 언제 끝날까 싶었는데, 좋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죠.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 연주는) 누구나 다 해보고 싶어 하는 건데. 32악장 악보도 되게 굵어요.”

 
“제가 올드 스타일이라고요?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마지막 장을 들으면 올드 스타일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거예요. 아직도 고전소설이 읽히듯, 베토벤도 그런 맥락이에요.” 아직 ‘애늙은이’란 별명이 잘 어울리는 만 25세의 김선욱은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는 영리한 연주자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한 손으로 두툼한 백과사전 두께를 그려 보인 그는 “처음엔 막연한 어떤 상상만 있었어요. 예전에도 베토벤을 많이 쳤지만, 내가 해석하는 베토벤이 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정말 누구의 것도 아닌, ‘이게 내 해석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연주한 거예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죠. 아직 갈 길이 멀고 더 세팅이 되어야겠지만, (연주에) 일관성이 많이 생긴 거 같아요. 이건 이렇게 쳐야 한다는 생각이 100% 잡힌 거 같아요. 옛날엔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구체화한 거죠”라고 했다.

청년 김선욱은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 연주를 계기로 음악적으로 한층 성숙해진 듯했다. 온전한 자기만의 색깔을 찾은 듯했다. 그는 “1회부터 온 분들은 점점 더 연주자가 뭘 얘기하고 싶은지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2006년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이후 세계 클래식계에 두각을 드러낸 김선욱은 국내서 몇 안 되는 티켓 파워를 지닌 아티스트다. 이 시리즈 연주만 해도 지난해 3월 1회부터 최근 6회까지 거의 매진에 가깝게 표가 팔렸고, 1회부터 매회 꾸준히 객석을 찾는 마니아도 있다.

김선욱은 “관객도 와주시면 좋지만, 저한테는 무대에서 이걸 연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거죠”라고 겸손해했다.


김선욱은 이 시리즈 연주를 위해 2010년 11월 이후 다른 리사이틀 연주를 잠시 접어뒀었다. 1년간 영국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하면서 베토벤 연마에 집중했다.

그는 왜 그토록 2세기 전 음악가에 푹 빠져 있을까. “베토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요. 18세기 초반 소나타들은 일정한 형식이 있었죠. 1, 2, 3악장에 1, 2주제 등 명확한 규칙이 있었죠. 베토벤을 통해 그 룰이 파괴가 된 거예요. 4, 5악장이 생기고, 1악장은 빨라야 한다는 선입관이 깨졌죠. 그로 인해 연주자가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음악사적 업적 외에도 베토벤의 드라마틱한 삶, 특히 청각을 잃은 뒤에도 작곡 활동에 매진한 그 열정은 수세기를 뚫고 현대인을 자극한다. 김선욱은 “돌아가시기 전에는 작곡이든 뭐든 상상 속에서 이뤄졌을 거예요. 음악을 들어보면 귀머거리가 쓴 곡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떤 곡은 크고, 말도 안 되게 화려하죠. 29번이 그래요. 32번 마지막 장은 이 땅에서의 음악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천국에서 만들어진 음악이 이런 걸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뭔가 현실적이지 않죠.”

김선욱은 오는 11일부터 19일까지 일본 투어, 다음달 영국 BBC프롬스서 빈머스심포니와의 협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리사이틀, 9~11월에 스위스 브베와 영국 셰필드ㆍ런던, 스웨덴 스톡홀름 등에서 숨가쁜 공연 일정을 소화한다.

이어 국내서 11월 21일 시리즈의 마침표를 찍으면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 연주자로는 국내 최연소 기록을 남긴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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