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윤희 기자] 지난 해 대선과정에서 쇄신 대상으로 지목됐던 ‘강제당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회담 관련 기록물 공개요구안 표결에서 되살아났다. 아이러니하게 같은 날 본회의에서는 정치쇄신법도 통과됐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양당 지도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각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다. 정치전문가들은 이론적으로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없어서는 안될 ‘필요악’이라는 의견이 많다.
2일 오후 3시35분 국회 본회의장. 새누리당이 본회의를 멈추고 이례적으로 비공개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록의 열람 및 공개를 요구하는 ‘자료제출요구안’ 처리를 앞두고 ‘표’ 단속을 위해서다. 이 자리에서 본회의 전 의원총회에서 세운 ‘권고적 당론’ 방침에서 한단계 수위를 높여 ‘구속적 당론’을 정했다. 민현주 대변인은 “강제적 당론은 보통 패널티가 부여된다는 점에서 권고적 당론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민주당도 본회의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구속적 당론(강제당론)’으로 방침을 정했다. 이날 의총에서 김영환, 심재권, 김동철 의원이 대화록 열람 및 공개에 반대 입장을 밝혔으나, 김한길 대표가 “지금은 반보 양보해 총의를 모아 질서있는 모습을 보일 때”라며 사실상 당론으로 찬성표를 요구했다.
거대양당이 ‘강제당론’ 방침은 재석의원 276명 가운데 찬성 257명, 반대 17명, 기권 2명이라는 압도적인 표결로 나타났다.
문제는 ‘강제당론’이 지난 해 대선 과정에서 정치쇄신 과제의 하나로 꼽힌 데 있다. 안철수 당시 무소속 후보는 강제당론 포기를 문재인 후보에게 요구해 두 후보간 ‘새정치공동선언문’에도 포함시켰다. 민주당 내 일부 반대로 문구는 ‘강제적 당론 지양’으로 낮춰졌을 뿐이다.
새누리당에서도 강제당론 폐지 요구는 끊이지 않는다.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박재창 위원장은 “양대정당이 그동안 사실상의 강제당론으로 진영대결을 펼쳐왔는데, 당이 주도권을 갖는 경성정당에서 벗어나 개별 의원이 자율성을 갖는 연성정당으로 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회 정치쇄신특위의 새누리당 간사인 박민식 의원도 “입법권을 강제당론으로 정하면 국회의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과 남경필, 홍일표, 김용태 등 쇄신파 의원들은 지난해 당 쇄신책의 일환으로 “국회의원을 거수기로 전락시키는 강제적 당론을 폐지하라”고 내놓고 요구했다.
안철수 의원의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정연정 배재대 교수는 “이번에 강제당론이 아니었더라면 이탈표가 상당했을 것”이라며 “중앙당의 비대한 권한을 최소화하고, 정당의 주요기능을 정책 생산으로 재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일각에서는 강제당론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당론 없이는 거대여당에 대응하기 어렵다. 양당 구조에서 강제당론은 정당의 정체성을 확고히하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도 “당내 이념적 성향이 좁혀져있는 미국 정당은 개별 의원이 당론 규제를 거의 받지 않지만, 이념적 성향이 뚜렷한 유럽 정당에서는 당론이 상당히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우리는 유럽 정당처럼 당이 강력한 공천권을 갖고 있어 강제당론이 활용될 수 있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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