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원호연기자]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소원해지자, 그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북한의 도발에 모호한 태도를 취했던 아세안(ASEAN)국가들도 한 목소리로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2일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 참여했던 아세안 회원국 외교장관들은 의장 성명에서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과 9ㆍ19 공동성명 상의 공약을 완전히 준수하라”고 명백하게 입장을 밝혔다. 한반도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지지하며 회원국 역시 안보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한국을 포함한 6자회담 당사국들의 요구사항을 그대로 담은 것.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26대 1의 구도로 보일 정도로 모든 회원국들이 비핵화, 중요성. 국제의무 준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성명서 초안에 담겼던 “핵 개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온데간데 없었다. 이 문구를 지키기 위해 아세안 주요국가와 연쇄적으로 접촉한 북한은 고개를 떨궜다.
정부 관계자는 “관련국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했던 작년의 의장성명과 달리 북한이 9ㆍ19공동성명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은 북한이 보는 앞에서 국제사회의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며 “이번 의장성명은 상당히 진전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아세안 국가들은 그동안 의장성명에서 “북한과 국제사회 모두 노력하라”는 투의 양비론으로 일관해 우리 정부의 속을 태웠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남북한 모두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데다 동북아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아세안 국가들이 이번처럼 단합된 목소리로 북한을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의장성명의 의미를 설명했다.
아세안 국가들이 북한에 유례없이 단호한 입장을 표명하게 된 것은 북한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입장이 통일됐기 때문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최근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고 북한에 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 그동안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눈치를 봐온 아세안 국가들이 명확한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됐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싸고 친중파와 친미파로 분열됐던 아세안 국가들이 중국과 ‘남중국해 행동강령‘을 마련키로 한 점도 단합의 촉매제가 됐다.
여러차례 협상에도 불구하고 도발을 반복해 온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내심이 한계에 봉착했고 아세안 국가들 역시 이에 동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대북 전문가는 “2ㆍ29 합의 직후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연달아 강행한 점이 북한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이 문제라는 북한의 주장에 귀기울일 국가는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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