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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 기적 뒤엔 ‘즐기는 야구’ 있었다

최근 31경기서 23승 승승장구
3위 껑충…가을야구 싹 틔워

고참들 자율권…젊은 피들 신바람
김기태 감독 ‘즐거운 일터’ 결실




#장면1. 2013년 새해 벽두, 인터넷포털 검색어 1위에 오르며 대중의 큰 관심을 모은 회사가 있었다. 수조원 매출의 대기업이 아닌 직원 26명의 작은 회사였다. 한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이 회사의 40대 젊은 대표는 “회사에서 좀 놀면 안되나요?”라는 통쾌한 반문으로 뜨거운 화제가 됐다. 바로 애플리케이션 성능관리(APM) 기업 제니퍼소프트의 이원영 대표였다. 이 회사는 직원 출산 축하금으로 1000만원을 지급하고 5년 일하면 유급휴가 2주에 가족 해외여행을 보내준다. 지하 1층에는 실내 수영장이 있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 수영시간은 근무시간에 포함된다. 직원들이 늘 노는 것처럼 보이는 이 회사는 그러나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 매출은 전년 대비 20% 상승했고 올 1분기엔 전년 동기 대비 무려 42%의 매출 성장을 이뤘다. 

#장면2.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김기태 감독은 2010년 LG 퓨처스(2군) 사령탑 시절 선수들에게 난데없이 훈련장에 김밥을 싸오자고 제안했다. 이유는 이랬다.

“야구만 한다고 생각하면 힘드니까 소풍 왔다는 느낌으로 구리구장 외야 잔디밭에서 잠시 앉아 김밥도 나눠먹고 쉬면 좋지 않겠나. 야구장을 직장으로만 생각하면 너무 힘들다. 성장도 더디다. 매일 반복되는 훈련 속에서 뭔가 재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2013 시즌, 쑥스러움 많이 타던 주장 이병규(39)는 결정적인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양팔을 신나게 들썩이는 이른바 ‘으쌰으쌰 세리머니’로 덕아웃 분위기를 후끈 달구고 있다. 이병규는 “후배들에게 말로만 ‘즐기자’고 말하고 싶지 않다. 힘을 주고 싶다. 그럴 땐 적극적으로 오버를 해서 분위기를 띄운다”고 했다. LG는 현재 2위 넥센과 승차없는 3위에 랭크되어 있다.

즐기는 일터가 기적을 만든다. 요즘 LG 트윈스가 딱 그렇다. LG는 최근 10연속 위닝시리즈(3연전서 2승 이상 달성)를 이어가며 올해는 ‘정말’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5월21일부터 6월30일까지 31경기에서 23승 8패(승률 0.742)의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연패는 단 한차례도 없었다. 한때 14승20패, -6까지 내려갔던 승차는 38승28패로 +10이 됐다. 6월 팀 평균자책점은 3.10으로 9개 구단 중 1위, 팀 타율도 0.280으로 3위다. 덕아웃과 그라운드, 경기 중과 경기 전후 분위기가 따로 놀지 않는다. 이병규의 전염성 강한 ‘으쌰으쌰 세리머니’는 LG 덕아웃에 웃음과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묘한 마력이 있다. LG팬들은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의 제목을 따 ‘진격의 LG’라는 표현을 쓰며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무엇이 LG를 달라지게 만들었을까.

김기태 LG 트윈스 감독이 조성하는 ‘즐거운 일터’가 그 출발점이다. 김 감독은 지난해 1군 감독에 선임된 후 승리 직후나 경기 중 좋은 득점이 나올 때, 홈런 친 타자가 덕아웃으로 돌아올 때 선수들과 검지손가락을 맞대는 독특한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선수들도 감독과 손가락을 맞대면서 조금씩 접점을 찾기 시작했다. 작지만 재미있고 의미있는 변화였다. 지난해 싹을 틔운 ‘달라진 LG’는 올해 ‘즐거운 LG’로 한뼘 더 자랐다. ‘모래알 팀워크’라는 비아냥을 듣던 LG 선수들은 올해는 스스로 신명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감독도 선수들에게 힘을 실었다. 이병규 정성훈 이진영 박용택 봉중근 등 야수와 투수조의 고참들에게 책임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나흘 휴식기의 훈련스케줄을 직접 짜도록 했고 월요일 원정 출발 시간도 선수들이 정하도록 했다.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자율권은 고참들로 하여금 리더에게 강한 믿음을 느끼게 한다. 문선재 김용의 등 보석같은 젊은 야수들은 감독과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즐거운 일터에서 마음껏 뛰놀고 있다.  

10년 간 LG의 발목을 잡았던 ‘DTD(Down team is down·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의미의 콩글리시)’ 저주도 ‘즐기는 김기태호’ 앞에선 이제 생명을 다한 모습이다. 즐기는 분위기는 이기는 에너지를 만들고, 승리는 또다시 선수들을 춤추게 하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윤영길 한체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요즘 기업과 스포츠 등 사회 전반에서 ‘즐기는 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스포츠 구단들이 경기력을 중심으로 한 하드웨어적인 운영을 했다면 이젠 지도자-선수, 선수-선수 간의 소통을 위주로 한 소프트웨어적 운영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런 과정들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하지만 방심하다가는 몇 경기만의 일시적인 효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강팀들은 한 두 번 덜컹거려도 곧 자기 페이스를 찾지만 기본 체력이 없는 팀들은 얼마간은 지속적으로 동력을 공급해줘야 한다. 구단과 지도자, 선수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할 몫이다”고 했다.

1994년 우승 당시의 ‘신바람 야구’를 연상케 하는 LG의 ‘즐기는 야구’가 올시즌 팬들을 가을잔치에 초대할 수 있는 든든한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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