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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서 본 MLB]류, 잘던지면 뭐 하나?
류현진, 참 잘 던졌지요? 한국에 계신 여러분께서는 일요일의 브런치 타임에 야구 보는 맛이 쏠쏠했으리라 믿습니다. 물론 승리투수가 됐으면 더 할 나위 없었겠지요.

선발 등판해서 최소 6이닝을 3실점 이하로 막아내는 이른바 ‘퀄리티 스타트’를 식은 죽 먹듯 하고 있어서 그런지 어느 때부턴가 승수 챙기기 여부 보다 그의 투구 내용에 집중하게 되더군요.

필라델피아의 강타자 체이스 어틀리에게 1회초 선제 홈런을 맞았지만 ‘아이쿠, 큰 일 났네’ 싶을 만큼 심장이 덜컥 거리던가요? 그렇지 않지요? 빅리그 무대에서도 전혀 기 죽지 않고 마운드를 밟기만 하면 십중팔구 퀄리티스타트라는 안정된 경기 운영을 펼쳐보여줬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류현진에게 믿음이 생긴 거지요, 우리 모두가.

어틀리와 두번째 대결할 때 또 홈런을 얻어 맞았지만 수싸움에서 앞선 타자에게 박수부터 보내고 싶어지더군요. 어틀리는 1회에 어정쩡한 76마일짜리 커브를 가차없이 후려쳤지요. 그로부터 류현진이 패스트볼 배합비중을 높이는 걸 파악하고 노리고 있었다는 듯 빨랫줄같은 우월 솔로포를 또 한번 터뜨렸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어땠습니까.

팀 승부는 차치하고 류현진과 어틀리의 이어지는 맞대결, 그 불꽃튀는 수읽기 실랑이에 온 신경이 곤두서지 않던가요. 불과 공 5개만 던지고 홈런 2개를 헌납했다가 5,7회에는 각각 6개,4개를 던져 포수플라이와 1루 땅볼로 처리했지요? 그 한개 한개의 공이 어떤 구질이고, 코스는 어땠고, 스피드는 얼마나 찍었는 지 일일이 들여다보는 재미가 곧 야구, 아니 류현진의 피칭을 즐기는 맛이 아닐까 싶습니다.

3-2로 7승째를 거둘 뻔한 경기가 외야수들의 허술한 ‘닭짓’ 탓에 평균자책 2.70인데도 승수 없이 달랑 1패만 남은 6월 개인성적표를 들고 있지만 한달전 완봉승을 거둘 때 못지 않게 빼어난 피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뭣보다 하루 전 다저스는 16-1로 참패하면서 내외야를 오가는 유틸리티맨 스킵 슈마커까지 등판할 정도로 불펜투수진이 바닥 났지요. 그런 상황에서 선발등판하는 투수에게 감독이 기대하는 건 ‘제발 길게, 오래 던져라’라는 간절함이겠지요. LA한인타운의 단골 술집 주인 아저씨가 류현진이 사인한 공을 가져다주길 바라듯 말입니다. 7회까지 끌어간데다 리드까지 지켜줬으니 돈 매팅리 감독으로서는 류현진이 쉰 줄에 얻은 늦둥이 아들처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거예요.

다저스 마운드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17게임 중 15게임에서 6이닝 이상을 던졌고, 류현진은 16게임에서 15게임을 그렇게 했습니다. 퀄리티 스타트는 똑같이 13게임씩이고요.

커쇼와 류현진의 개인성적은 각각 6승5패, 6승 3패로 모두 2점대의 훌륭한 평균자책에 비하면 서운함을 떨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1점차로 앞선 채 불펜에 마운드를 넘겼다가 승패결정을 받지 못한 최근의 몇경기를 감안하면 8~9승은 됐어야 하지요.

그래도 “시즌을 치르다보면 또 승수를 챙길 때가 많이 생길 것”이라는 류현진의 의연함을 우리 또한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류현진이 하루 빨리 10승, 15승을 거둬 ‘자랑스러운 대한건아’로서 우리 모두를 뿌듯하게 해주기 바라는 마음이야 너무나 자연스러워 추호도 탓할 일이 아닙니다. 단지 승수로 나타나지 않을 뿐 그는 이미 에이스 못지 않은 능력과 역할을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할 따름입니다.

류현진이 던진 경기에서 다저스가 이긴 확률은 62.5%(10승 6패)입니다. 에이스 커쇼는 53%(9승8패)이고요. 선발투수의 팀 승률이 그 정도라면 현재 메이저리그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승률과 같네요. 아쉬움 좀 달랠 만한가요?

미주헤럴드경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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