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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덕준의 메이저리그 관람석]밥심이 체력이다
십수년전 딸아이가 다니던 LA인근 초등학교의 한국인 학부모 모임에서 김밥 떡볶이 등속을 차려놓고 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한 미국인 노부부가 대여섯살쯤 돼보이는 한국인 여자아이를 데리고 나타났지요. 그 여자애가 갓난 아기일 때 입양했다고 소개한 노부부는 “딸 아이가 김치랑 김밥을 너무 좋아하는데 여기오면 마음껏 먹일 수 있을 것같아서 데려왔다”고 하더군요. 태어나자마자 입양된 아이가 도대체 어떻게 한식에 맛 들였을까 싶어 신기하면서도 그 ‘모태 한식체질’을 지닌 소녀를 보며 코끝이 찡했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굳이 그런 사례를 들추지 않더라도 우리 한국인의 입맛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 토종적인 듯합니다. 아무리 맛 있어도 하루 세끼를 꼬박 파스타나 햄버거,스테이크로 채운 날이면 잠들기 전에 컵라면이라도 끓여 먹어야 느글거리는 속을 달랠 수 있다는 사람이 허다하잖습니까.

메이저리그 한시즌을 소화하려면 살인적인 시차를 이겨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지만 음식이야 말로 그 선결적인 바탕이 아닐까 싶습니다. 잘 먹는 게 체력관리의 한 축이 될 수 밖에 없지요. 우리네 어르신들은 자식이 먼 길 떠날 때면 “객지에선 밥심이니 잘 먹어야 한다”고 걱정하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미국 땅에서 입맛과 체질에 맞는 한식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불문가지이거든요.

박찬호의 일거수 일투족이 국민적인 관심사가 됐던 시절 그와 거의 모든 일정을 함께 하며 동고동락하던 3명의 한국 특파원이 있었지요. 그들은 원정경기가 있는 도시에 도착, 숙소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호텔방에 놓여 있는 전화번호부부터 뒤졌습니다. 알파벳 인덱스에서 우선 K자가 있는 페이지를 펼치지요. 코리아(Korea)가 들어간 식당이름을 찾는 겁니다. 미국내 한식당이면 대체로 ‘코리아’가 들어가겠거니 여긴 것인데, 만일 발견하지 못하면 S자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서울(Seoul)이나 서라벌(Seorabul), 신라(Shilla)같은 상호를 찾아내려는 것이지요. 그도 저도 없으면 다시 K자 페이지로 가서 개인의 성명자에서 김(Kim)씨를 찾습니다.

‘우리의 박찬호 선수’가 육개장을 먹으면 힘이 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기 때문에 미리 수소문해서 한식 공급처를 확보해둬야 했던 것이지요. 기자들이 일개 선수의 매니저 노릇을 했다고 핀잔하겠지만 당시엔 ‘국위선양’이라는 명분을 위해 ‘국가대표’ 박찬호를 살뜰하게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감같은 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박찬호는 실제로 그렇게 찾아낸 한식당에 가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했고, 또 점심으로 육개장을 맛나게 먹은 날 저녁경기에 선발등판하면 유난히 호투하곤 했지요. 그런 날이면 우리 국민들, 얼마나 좋아했습니까.하하.

대체로 거의 모든 선수가 홈경기 성적이 원정에 비해 낫게 마련이지만 빅리그의 한국인 선수들은 그 정도가 유별한 것도 음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지난 25일 경기에서 비록 승수를 챙기지 못했지만 여러차례 위기를 잘 넘기고 12게임째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실점 이하)를 기록한 류현진도 데뷔 첫해부터 두드러지게 홈경기 성적이 월등하게 나타나네요. 원정에선 2승2패에 평균자책점 4.15이지만 LA 홈구장에선 4승1패 평균자책 1.81이군요.

홈이 편안한 이유 중 하나는 LA 코리아타운에 원없이 골라 먹을 수 있는 즐비한 한식당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류현진은 어제 뭘 먹고 등판했냐고요? 갈비탕 ‘특’ 한그릇을 싹 비웠다더군요. 박찬호의 사진이 여러 장 걸려 있는 그 한식당에서요.

황덕준/미주헤럴드경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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