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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덕준의 메이저리그 관람석> 추신수 과소평가하는 한국언론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한국인 타자가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던 1980년대 후반이었을 겁니다. 야구인끼리 술자리에 모이면 그런 말들을 자주 했지요.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을 저울질하다 보면 우리 선수 중 누가 메이저리그에서 통할까 같은 방담이 잦았지요. 그때마다 “선동열 최동원같은 투수는 몰라도 장효조나 이만수같은 타자는 언감생심”이라는 쪽이 다수였습니다.

1994년 박찬호가 LA다저스와 계약,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거로 야구사에 한 획을 그었지요. 그로부터 1년이 채 안돼 성남고-경희대 출신 외야수 최경환이 애너하임 에인절스(현 LA에인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고 미국에 진출했습니다. 최경환은 싱글 A단계를 넘지 못하고 멕시칸리그로 밀렸다가 1999년 LG트윈스를 통해 한국으로 복귀했지요. 최경환의 메이저리그 진출 실패를 보면서 아무래도 한국인의 체력과 체격으로는 타자가 빅리그를 넘보기가 무리라는 야구인들의 자조적인 결론이 맞는가 싶었습니다. 어떤 야구인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지요.

“선발투수는 최소 4일은 휴식이 보장되지만 날마다 게임에 나가야 하는 타자는 시차가 두세시간씩 있는 미국 각 지역을 옮겨다니면서 버텨내려면 매끼 두꺼운 스테이크 서너조각씩 먹어도 될까 말까야”

기량이 뛰어나더라도 1년에 162게임을 치르는 데 필요한 체력이 ‘선천적으로’ 열세라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2002년 9월 3일 최희섭이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고 한국인 타자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경기에 나섰습니다. 2005시즌에는 LA다저스에서 133경기에 출전, 홈런 15개, 타율 0.253을 기록하며 기대를 모았지요.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타자는 안된다’는 인식을 깨뜨리는 주인공이 되는가 싶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최희섭이 그나마 빅리그에서 선발과 후보를 들락거리며 한 시즌에 100경기 이상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199cm, 100 kg의 서양선수 능가하는 체구가 받쳐준 때문이었는 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꽃을 피우지 못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특히 타자로서 그 기량을 이어갈만한 근본적인 체력이 모자란 탓은 아니었을까요.

얼마전 한국프로 최다홈런 기록을 세운 이승엽이 제1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MVP에 버금가는 대활약을 펼치자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관심을 보였던 일 기억하지요? 그 한편에선 한시즌을 기복없이 소화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여지없이 쏟아졌던 상황도 생각나실 겁니다.

미국여행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알 것입니다. 뉴욕과 LA의 3시간 시차, 그거 서울과 LA의 16시간 시차보다 더 견디기 힘들거든요. 생각해보세요. 뉴욕에서 아침 7시에 밥을 먹으면 LA 시각 새벽 4시에 꾸역꾸역 뱃속을 채우고 있는 셈이잖아요. 잦은 시차 속에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는 아마 박찬호가 가장 실감나게 얘기해 줄 겁니다.

24일(한국시간) 신시내티 레즈의 추신수〈사진〉가 시즌 11호 홈런을 때렸군요. 추신수는 바로 시차를 이기는 체력을 보여준, 한국인 타자 빅리그 무용론(無用論)의 놀라운 ‘예외’입니다. 추신수는 162게임 평균으로 따져서 홈런 20개, 타율 0.288, 타점 83개를 올리는 기복없는 성적으로 ‘한국인 타자는 빅리그에서 안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기량을 유지하게 해주는 건 철저한 집중력이겠지요. 체력 배양과 쉼 없는 훈련을 통해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게 꾸준한 성적을 낼 수 있는 바탕이라고 봅니다. 단순히 강철 체력만 있다고 되는 일이었겠습니까. 인내와 절제라는 피눈물 나는 자기관리의 노력을 짐작해보면 그의 존재가치는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추신수가 최근 류현진에 집중되는 한국 미디어의 쏠림현상에 무척 서운해한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박찬호가 떠난 이후 추신수만이 홀로 빅리거로 남았을 때만해도 한국인 기자들이 게임마다 10여명에 이르렀다지만 요즘은 거의 없답니다. 신시내티 레즈 구단의 미디어 담당자는 자기네팀의 어엿한 한국인 스타플레이어를 한국 미디어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에 당혹스러워 한다고도 합니다.

TV중계상의 집중 효과만 빼면 날마다 출전하는 추신수가 4~5일씩 쉬었다가 등판하는 류현진보다 덜 주목받아야할 이유는 없지요. 물론 야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면에서 투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동안 추신수에 대한 국내 스포츠 미디어의 주목도는 가히 ‘홀대’ 수준이지 않았나 싶네요. 굳이 수식을 붙이자면 추신수는 ‘한국인 최초의 에브리데이 플레이어(Everyday Player)’ 아닌가요? 

미주헤럴드경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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