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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황해창> ‘금지된 性’에 대한 추억
버림받은 성, 방황하는 성, 소외당하는 성이 늘 문제였다. 여성으로서 미아리 텍사스촌과의 전쟁을 주도했던 김강자 당시 종암경찰서장도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인권유린이 문제지 공창제도는 일정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04년 12월 중순쯤이다. 본란에 ‘금지된 性, 고삐 풀린 性’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 있다. 집창촌 여성 수백명이 소복차림으로 머리를 풀어헤친 채 차가운 길바닥에 주저앉아 생존권 투쟁을 벌이는 살풍경을 본 뒤였다. 그러니까 성매매가 금지된 지 50여일이 지난 때다.

당시 앞뒤 상황을 되짚어 보자. 2002년 초 군산의 한 집창촌에 큰 불이 나 업체 여성 등 14명이 창살에 갇힌 채 불에 타 숨지는 사고가 터졌다. 사회적인 분노 속에 성매매 금지 바람이 불었고 집창촌 소탕까지 감행됐다. 1년 이상을 밀고 당기더니 때마침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부쩍 힘을 받은 진보진영은 결국 ‘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처벌법)’을 뚝딱 만들어 냈다.

저항은 예상보다 컸다. 업소 여성들뿐만이 아니다. 현실론자들은 좌파적 이상주의자들의 지나친 결백성을 탓했다. 마치 ‘한강에 정화조를 풀어 놓는 격’이라는 비판도 가했다. 노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좀 더 종합적으로 검토하지 않고…”라며 조급성을 언짢아했을 정도였다.

사실 성산업은 딱히 선 긋기 어렵지만 연관범위가 워낙 넓다. 숙박업ㆍ요식업ㆍ의류ㆍ화장품 등등 당시만 해도 줄잡아 25조원대로 추산됐다. 제주도엔 일본 관광객이 확 줄었고, 인천부두도 썰렁했다.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예측불허의 변수들도 감당키 벅찬데 ‘이상한 법’까지 나와 내수 침체를 가중시킨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즉각 ‘성매매 경제론자’라는 직격탄을 맞았지만 그로선 그럴 만했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도 “어느 사회나 찌꺼기를 버릴 하수구가 필요한데 이를 꽉 막아 버렸다”고 거들다 ‘천민자본주의자’로 몰렸고,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좌파적 정책’이라 했다가 ‘성매매 소비집단 대표자’라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게 대세였다.

결과는 어떤가. 앞이 막히면 안으로 파고드는 법. 홍등 대신 검은 가림막이 쳐졌고, 보이던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었다. 보건당국도 속수무책이었다. 간 큰 업주들은 단속의 검은손과 결탁하며 난공불락을 쌓았다. 신ㆍ변종에 오피스텔에 풀살롱에 고삐 풀린 성이다.

성범죄 척결에 정부의 의지가 추상같다. 그러나 엄한 처벌은 전과자만 양산하거나 성폭행 후 잔혹살인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정성현 조두순 김길태 김수철 김점덕 고종석 서진환 등등. 2000년대 중반 이후 최근까지 잔혹성범죄자가 날뛴 이유를 어떻게 봐야 할까. 결국 버림받은 성, 방황하는 성, 소외당하는 성이 늘 문제였다. 여성으로서 미아리 텍사스촌과의 전쟁을 주도했던 김강자 당시 종암경찰서장도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여성들의 인권유린이 문제지 공창제도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말, 성매매로 적발된 집창촌 출신 한 여성이 기본권(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고,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성매매처벌법의 위헌제청을 했다. 법대로 180일 안에 결론을 내야 한다면 지금이다. 민감 사안의 경우 2년도 끈다지만 여태껏 묵묵부답인 걸 보면 헌재도 고민이 크긴 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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