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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백’ 좋아하는 당신… 오늘도 ‘삽질’ 하셨나요?
[헤럴드경제=박동미 기자]한 영화제 시상식장. 레드카펫 위 우아한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배우. 한 손엔 손바닥만한 가방이 들려있다. ‘클러치백’이다. 지갑보다는 크지만 지갑 이외의 것을 넣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크리스털일까 스팽글일까. 여배우의 고운 손 안에서 클러치가 반짝반짝 빛난다. 이브닝드레스와 같은 색도 있고, 때론 보색으로 매치해 전체 스타일링에 포인트가 된다. 이쯤되면 소지품의 보관이나 이동수단이 아니라, 가방은 일종의 (그것도 아주 중요한) 액세서리가 된다. 이젠 범인의 눈에도 익숙한 작은 가방, 클러치백이 레드카펫뿐만 아니라 ‘스트리트 패션’에서도 흔해졌다. 홍대 앞,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강남역 등 트렌드세터의 무대를 장악했다. 물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이브닝드레스용 클러치와는 조금 다르다. 서류봉투 크기의 납작한 사각형 백이 ‘대세’다. 더불어 직장여성의 출근길 ‘핫’ 아이템으로 떠올랐던 배낭과 큼지막한 숄더백(어깨에 메는 끈이 짧은 가방) 등 ‘빅백’의 인기가 주춤해졌다.



# 1920년 코코샤넬의 클러치…레드카펫을 지나 거리를 점령하다=사실 클러치백은 1916~1920년 사이에 탄생했다. 당시 최고의 스타일 리더였던 코코샤넬이 합성피혁으로 된 클러치백을 출시하면서 유명 디자이너들이 그 뒤를 따랐고, 이 조그마한 가방은 곧 당대 가장 ‘잘 나가는’ 패션 아이템이 됐다. 1920~30년대 유럽의 세련된 여성은 너도나도 클러치백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전시노동이나 공습대피 등으로 여성도 손이 자유로운 크로스백(한쪽 어깨에 사선으로 메는 끈이 긴 가방)이나 배낭을 선호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다시 등장한 클러치백은 다양한 변화를 거치면서 오늘날에도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2008년 루이비통ㆍ펜디ㆍ셀린느 등에서 내놓은 클러치백은 언뜻 서류가방처럼 보였는데, 최근 트렌드세터에게 가장 사랑받는 클러치백 디자인의 모태가 됐다.

스타일링은 간편하다. 클러치백은 그 디자인 자체가 단순하기 때문에 컬러와 질감, 장식 등에서 변화가 많다. 뱀피 무늬나 에나멜 소재, 혹은 통통 튀는 형광색을 들어도 부담이 없다. 과감한 문양을 넣어도 큰 가방에 비해 덜 현란해 보인다. 따라서 깔끔하고 단순한 의상에도, 캐주얼한 차림에도 잘 어울린다. ‘각’이 잡힌 검은 정장에 스팽글이 촘촘한 클러치를 매치하면 마치 여배우의 드레스에 얹혀진 화려한 목걸이처럼 빛나게 된다.

물론 어떤 여성에겐 클러치백처럼 작은 가방이 ‘비현실적’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두 돌이 채 안된 아기엄마의 경우다. 그녀는 외출을 위해 여분의 기저귀와 아이를 달래줄 인형과 과자를 넣을 공간이 필요하다. 혹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장거리 통근자는 일터에서 갈아신을 하이힐과 지하철 안에서 읽을 책도 한 권 넣어야 할지 모른다. 


이렇게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건강을 위해서라도 여성은 가방의 사이즈를 줄이는 게 좋다. 미국 카이로프라틱협회에 따르면 양쪽 어깨에 메는 배낭은 몸무게의 10%를, 한쪽 어깨에 메거나 드는 가방은 5%를 초과하지 않는 게 좋다. 가방이 무거우면 근육통이나 두통을 일으키고, 장기적으로 관절염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가방의 무게를 줄이는 일은 결국 가방의 사이즈를 줄이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특히 딱딱한 소재로 된 클러치는 더 넣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므로, 가방 무게를 줄이는 데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는 참고할 만하다.



# 페스티벌에선 ‘미니 크로스백’ㆍ명품족은 ‘미니어처백’=최근 클러치백이 레드카펫뿐만 아니라 거리마저 휩쓰는 것을 감지한 가방디자이너들은 클러치백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작은 가방’을 선보이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다. 앞서 예로 든 ‘건강’ 때문이 아니더라도 ‘작은 가방’을 들어야 할 이유가 많아 진 것. 유치원생이나 멜 법한 미니크로스백, 주말 브런치용 가방, 록페스티벌 등 야외축제용 가방 등 다양한 콘셉트의 가방이 등장했다.

패션홍보대행사 에이피알의 박가영 과장은 “야외 음악 페스티벌을 즐기는 20~30대 여성 사이에선 최근 미니 크로스백이 인기”라며 “가볍고, 두 손이 자유로워 흥겹게 몸을 흔들며 춤추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다”고 전한다.

휴대용 전자기기의 등장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여전히 ‘어쩌면’ 필요할지도 모르는 모든 것(우산, 편안한 플랫슈즈, 생수, 책, 두툼한 지갑 등)을 싸들고 다니는 여성도 있지만, 대부분은 소지품을 바꿨다. 스마트폰, 열쇠, 신분증, 신용카드, 그리고 립스틱이다. 이보다 더 완벽하고 가벼울 수는 없다. 더이상 뭐가 필요할까. 단지 ‘스마트폰 크기’만 가방 제작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할리우드 스타에게 사랑받는 가방디자이너 레베카 밍코프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최근 디자인한 가방은 기존 제품보다 작은 편이지만, 적어도 아이폰보다 약간 큰 삼성 갤럭시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 기본적으로 클러치백이지만, 때로 크로스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어깨끈을 탈부착 할 수 있는 제품도 많다. 보다 실용적인 성향의 여성에게 유용하다. 

‘작은 가방’ 트렌드는 럭셔리 브랜드가 최근 속속 출시하고 있는 ‘미니어처백’ 에서도 엿볼 수 있다. 미니어처라고는 하지만 충분히 일상에서 들 수 있는 실용제품이다. 로에베는 스테디셀러 ‘아마조나’를 기존의 3분의 2 크기로 새롭게 출시했고, 코치와 3.1 필립 림에서도 기존 히트 상품의 ‘미니미’를 선보였다. 국내 브랜드에서는 쿠론이 디자인 특허까지 낼 정도로 사랑받은 ‘스테파니백’을 최근 4분의 1 크기 토트백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곽효진 3.1 필립림 MD는 “미니 사이즈의 가방은 예전에는 10~20대 젊은 층에서 선호했지만, 최근에는 40대 고객도 많이 찾는 편”이라고 전했다.

작은 가방일수록 ‘에센셜(필수품)’만 담게 된다. 큰 가방에 대충 쑤셔넣은 핸드폰과 지갑을 찾느라 가방 속에 얼굴을 들이밀며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된다. 몇개월을 기다려 구매한 에르메스 버킨백은 옷장에 넣어둬라. 대신 통통 튀는 클러치나 미니 크로스백을 메라. 적어도 (유행이 계속되는) 당분간은 말이다. 가방이 커질수록 ‘삽질(가방 속을 뒤지는 일)’이 는다. 


[사진제공=마르니ㆍ크리스찬루부땅ㆍ바나나리퍼블릭ㆍ로에베ㆍ멀버리ㆍ쿠론]

박동미기자/pd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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