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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측불허 ‘북한 돌변’, 이번만이 아니다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북한은 중대한 대화국면에서 판을 깨고 회담장을 박차고 나간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자신들이 충분히 실리를 얻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본국 훈령을 받고는 협상의 판을 깨곤 했다.

2011년 2월 고위급 군사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처럼 북한은 고위급 군사회담을 먼저 제안하면서 예비회담을 열자고 요청했다.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첫 당국대화인 만큼 우리 측은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조치를 본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북측은 회담 첫날 우호적이었다. 예상됐던 우리 정부에 대한 비난은 없었다. 둘째 날에는 “오늘은 밤을 새더라도 반드시 결론을 내리자”고 말을 건네기까지 했다. MB정부 내내 경색됐던 남북관계가 풀리는가 했다.

태도가 돌변한 것은 둘째날 오후 들어서다. 북측은 갑자기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은 남측의 책임”이라며 비난을 퍼붓다 회담장 문을 박차고 나갔다. 본국의 훈령을 받은 직후로 김정일의 의중이 담겨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 뒤 2년 4개월 만인 지난 9일에야 양측 정부 당국자가 마주앉을수 있었다.

2002년 5월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경협추진위원회 2차 회의 역시 이번과 같이 예정일 하루 직전 북한이 갑작스레 불참을 통보하면서 무산됐다. 당시 북한은 최성홍 외교통상부 장관의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공책이 먹혀들고 있다”는 발언을 문제 삼았다.

이보다 앞서 2001년 2월 3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경우 개최를 나흘 앞둔 시점에서 취소됐다. 북한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우리 정부의 비상경계 강화 조치를 문제 삼아 일방적으로 행사 취소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3월에는 5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지만 북한이 회담 당일 이유 없이 불참을 통보했다.같은 해 4월에는 적십자회담을 열기로 했지만 북측이 회담 장소나 시간에 대해 알리지 않아 무기한 연기됐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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