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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세종댁 안상미 기자의 생활일기-세종시 첫마을에 살아보니
[헤럴드경제(세종)=안상미 기자]장장 15년간 처박아둔 장롱면허가 빛을 본 건 세종시에 온 지 딱 일주일만이다. 출퇴근을 하든, 저녁에 장을 보든 차로 데려다 줄 남편을 기다려야 했고, 그나마도 남편이 집을 비운 주말 하루를 꼼짝없이 갇혀있다가 이럴바엔 차라리 운전대를 잡아보자 싶었다.

▶초보운전자를 도로로 내몬 사연= 새벽 6시 반까지 출근. 6시에는 나서야 하는데 청사로 가는 버스노선은 단 하나고, 그나마도 첫차는 7시 넘어서 있다. 배차간격도 무려 50분이다. 운전을 하거나 택시를 부르거나 해야 한다.

편의시설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첫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마트는 대전 유성구로 딱 13.39km다. 사실 거리만 놓고 보면 감이 잘 안온다. 강남의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강북의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까지 와도 자동차 거리 7.7km 밖에 안되니 이 거리를 왕복해야 첫마을에서는 대형마트에 도착할 수 있다. 운전시간 25분도 짧은 시간이 아니지만 버스를 타면 이마을 저마을 돌고 돌아 한시간이 걸린다.

이곳에선 운전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래서 그런가 아파트 주차장엔 경차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공무원들 역시 중고차를 하나둘씩 구입중이다. 주민 커뮤니티엔 하루에도 몇번씩 “○○까지 태워다 주실분~” 등 카풀 요청이 올라온다.

영화를 보려면 조치원 쪽으로는 18km, 아니면 대전 방향으로 22km를 가야 한다. 마트처럼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다 보니 세종시 와서는 아직 영화는 한편도 보지 못했다. 백화점도 22km. 대형서점을 가려면 30km나 떨어져 있다.

하루에도 공주, 대전, 세종 등 몇개 시도를 넘나드는게 일상이다. 그냥 생활하면서도 여독이 쌓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별천지’ 첫마을= 처음 세종시 첫마을에 들어오던 날이 기억난다. 저녁에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본 야경은 지금까지 지나온 허허들판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지금도 다른 지역에서 택시를 타고 들어오면 처음 와보는 운전기사들은 한 마디씩 꼭 한다. “아이구. 완전 별천지구먼, 별천지.”

첫마을 1, 2단계 일곱개 단지를 합치면 정확히 6520세대다. 1만8000명이 조금 넘게 살고 있다. 금강 위의 한누리대교부터 최고 28층까지 솟은 아파트 숲으로 이어지는 야경은 별천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서울에선 좀처럼 못 듣던 소리도 듣고 산다. 금강변 녹지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우는 소리. 그리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다. 학원이 없어서 세종시로 못오겠다는 집도 있지만 반대로 그래서 왔다는 집들도 있다. 자전거도 타고, 뛰어놀기엔 좋은 환경이다.

기존 마을과의 위화감이 조성될 법도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없다. 도시에서 이전한 사람들은 보기엔 번듯한 새 아파트에서 살지만 사실 속사정은 원주민이 훨씬 넉넉하다. 보상금 대박 스토리가 흔한 이 동네에선 도시민들이 섣불리 명함을 내밀었다간 본전도 못찾는다.

정보의 최종 집결지 미용실에 앉아있다 보면 이런 대화는 흔하다. “본가가 여기 논 좀 있었다고 안했나?” “아유. 말도 마유. 증여세만 7000만원 냈구만. 남는 것도 없슈.”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세종시가 최고의 출발지가 될 수 있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세종시는 국토의 중간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부산이나 여수 등 남쪽으로 간다면 서울 출발 대비 거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지난달에는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전주 막걸리 골목에서 보냈다. 퇴근하고 출발해도 한시간 정도밖에 안걸리니 서울에서 강남 어디로 술먹으러 가는거나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

▶커피, 패스트푸드점보다 더 시급한 것은?= 아직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커피 체인점이 한 곳도 없다. 맥도날드나 버거킹 등 패스트푸드점도 없다. 이건 그래도 참을만하다. 멀긴 하지만 대전이나 아님, 조치원 대학가에 가면 해결할 순 있다.

술집이 없네, 당구장이 없네 하지만 그건 남자들의 철없는 투정일 뿐이다.

세종댁 혹은 세종맘 입장에서 세종시가 가장 살기 힘든 이유는 ‘이모님’을 찾기 힘들다는 거다. 이모님은 집안 일을 도와주거나 아이를 돌봐주는 분들을 칭하는 용어다. 결혼한 여성들 사이엔 이모님 복이 오복(五福) 중 하나라는 데 이런 관점에서 세종맘들은 아직 복을 받지 못한 셈이다.

지방이라 비용이 훨씬 싸지지 않을까 은근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이모님 품귀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자격을 갖춘 베이비시터가 많지 않을 뿐더러 여성기관에 요청하려고 해도 조치원 등에 위치하다 보니 첫마을까지 들어오려는 이모님들이 많지 않다. 한참을 대기해 이모님을 ‘모시게’ 되더라도 교통비 등 추가비용을 더 내고 보면 서울보다도 비싸진다.

직장맘이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일이 있을때마만 몇시간씩 맡기던 돌보미서비스도 세종시에선 돌보미 선생님부족으로 이용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hu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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