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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아내 구타 사건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살인을 한다//그러나 우산대로/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우리들의 옆에서는/어린 놈이 울었고/비오는 거리에는/40명의 취객들이/모여들었고/집에 돌아와서/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아는 사람이/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죄와 벌’ 중)

‘자유의 시인’으로 불리는 김수영의 시라고 믿기지 않는다. 김수영은 1963년 비 오는 백주 대로에서 아내 김현경을 때려눕힌다. 그것도 우산대로 마구 팬 것이다. 아이가 무서워 울고 있고,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3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처참한 상황을 담아낸 이 시를 이해하는 건 당혹스럽다. 혹자는 이 난감한 시를 이해하기 위해 은유적으로 읽어내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시는 곧이곧대로다. 아내 김현경은 김수영이 거제포로수용소에 갇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자 시인의 친구와 동거하게 된다. 시인이 돌아와 ‘부실한’ 아내를 받아들이지만 그의 마음속은 종종 부글댔을 것이다. 그는 폭발했고, 시인은 스스로 머리와 가슴의 먼 거리를 뼈저리게 확인해야만 했다.

조선 성종 1494년 7월 5일 아내 폭행 치사사건으로 처벌받는 이승손의 얘기가 실록에 나온다. 시아버지가 도둑질을 해 감옥에 갇히자 이승손이 아내더러 아침식사를 갖다 드리라고 하자 아내가 왜 내가 하냐며 대들다가 주먹으로 얼굴을 맞는다. 문을 박차고 나간 아내를 쫓아온 이승손이 아내의 머리채를 잡고 휘두르며 끌고 가다 굴러 떨어져 죽는 일이 벌어진다.

방송인 마르코의 골퍼 아내 안시현 폭행 혐의 사건이 종일 미디어를 덮었다. 아는 사람이 보지 않았을까 걱정하던 김수영 시대와는 딴판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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