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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리뷰>마리 크뢰이어…‘뮤즈’라는 감옥, ‘천재예술가’라는 마초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와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홉 여신. 시와 음악, 이야기등의 영감을 주는 존재. 그래서 지금은 한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 ‘뮤즈’다. 이 때 예술가는 보통 ‘남성’이며 뮤즈는 ‘여성’이다. 예술가는 뮤즈를 통해 절대 자유와 예술의 이상에 도달하지만, 한 여성과 인간으로서의 ‘뮤즈’의 삶은 어떨까? 그것은 ‘뮤즈’라는 이름으로 속박된 마음의 감옥이 아닐까. 그 때의 ‘천재예술가’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남성의 폭력이 아닐까?

물론 존 레논과 오노 요코처럼 행복한 예술가들의 결합도 있었지만, 예술사에는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처럼 불행과 상처로 이지러진 관계도 적지 않았다. ‘코끼리’처럼 거대한 몸집에 맞먹는 예술적인 천재성, 그리고 그에 버금가는 마초적인 욕망으로 가득찼던 디에고 리베라는 생전 화가로서의 부와 명예, 자유, 그리고 포식자같은 남성적 욕망을 마음껏 누렸지만, 그의 운명의 여인이자 또 한명의 천재 예술가였던 프리다 칼로는 정신적ㆍ육체적 고통 속에 평생을 보내야 했다.

영화 ‘마리 크뢰이어’(감독 빌 어거스트)는 마치 프리다 칼로를 연상케 하는 한 여성의 ‘잔혹사’를 그린 영화다. ‘아름다운 뮤즈’일 수는 있었지만 ‘행복한 여성’은 될 수 없었던 주인공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일반 관객들에겐 다소 낯선 화가 P.S 크뢰이어의 부인이자 ‘뮤즈’였던 마리 크뢰이어의 삶을 전기에 바탕해 스크린에 담았다. 페데르 세베린 크뢰이어(1851~1909)는 노르웨이 출신 덴마크 화가로 19세기말 덴마크의 스카겐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북유럽 화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드가, 모네, 마네 등의 인상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아 빛과 색의 표현에 탁월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특히 자신의 부인이었던 마리 크뢰이어와 동료 예술가가 바닷가를 거니는 풍경을 그린 ‘안나 앤커와 마리 크뢰이거가 함께한 스카겐 서부 해변의 여름 저녁’으로 잘 알려졌다. 


‘마리 크뢰이어’는 마치 데칼 코마니처럼 화실의 양 옆에 캔버스를 펼쳐놓고 나란히 그림을 그리는 남편 세베린과 아내 마리아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한다. 아름다운 마리 역시 유망한 화가였으나 기꺼이 남편을 위한 뮤즈가 됐고, 남편의 작품에 많은 것을 양보했다. 남편 세베린은 당대 최고의 명성을 얻지만, 사생활에서 점점 심해지는 것은 망상과 난폭한 행동이었다. 세베린은 여러가지 질병에 시달렸고, 특히 예술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정신병적 증세가 심했다. 누구보다 세베린을 사랑하지만 곁에서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마리는 여행 중 만난 스웨덴 출신의 음악가 휴고와 사랑에 빠진다. 결국 갈등과 번민 끝에 마리는 더욱 기괴한 행동을 일삼는 남편을 떠나 휴고를 선택한다. 하지만, 달콤한 밀어를 속삭이며 마리를 ‘뮤즈’로 찬미하던 휴고 역시 ‘예술가로서의 자유’와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의 책무’를 저울에 단다.

빌 어거스트 감독은 ‘정복자 펠레’와 ‘최선의 의도’로 두번이나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2번씩이나 받은 거장이다. 무엇보다 인상주의 회화를 화폭 대신 스크린에 옮겨놓은 듯한 빛과 색채의 영상이 아름답다. 그에 비하면 한 여성의 삶에 대한 탐구가 불러 일으키는 인상은 기대보다 강렬하진 않다. 13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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