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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 - 김학수> 독일축구와 한국축구
‘우물 안 개구리’ 한국 축구의 눈을 뜨게 한 것은 독일 축구였다. 1960~1970년대 동남아 수준에 머물렀던 한국 축구에 독일 축구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가난한 나라’ 한국에서 외화벌이를 위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의 많은 눈물 어린 사연들이 배어 있는 독일은 당시 경제뿐 아니라 스포츠에서도 세계적인 강국이었다. 1972년 하계올림픽을 개최한 데 이어 홈그라운드에서 열린 1974년 월드컵에서 우승까지 차지했을 정도다. 특히 한국 축구팬들을 사로잡은 것은 독일 분데스리가였다. 이때 분데스리가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MBC TV가 매주 분데스리가 특집을 방영했던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신식의 경기장, 관중의 열광적인 응원, 프로선수들의 다이내믹한 슈팅 등은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런 세계 최고 수준의 분데스리가를 접하니 한국 축구가 얼마나 시시해 보였겠는가 말이다.

이런 가운데 차범근의 분데리스가 진출은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세워준 일대 사건이었다. 차범근은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서독으로 날아가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분데스리가 진출에 성공해 팬들을 한껏 들뜨게 했다. 10년간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 활동하며 98골을 터뜨리고 308경기에 출전하며 붐을 일으켜 ‘차붐’이라는 애칭을 듣기도 한 차범근은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한국 축구의 존재감을 널리 알리는 데에 기여했다.

분데스리가와의 인연으로 세계 선진 축구에 밝은 한국 축구는 아시아 지역에서 강호로 군림했다. 1986년 월드컵부터 아시아 대표로 본선에 연속 출전한 한국 축구는 1994년 미국 월드컵과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독일과 두 차례 맞대결을 펼쳤다. 첫 번째 대결에선 3-2로 패하고, 두 번째 대결에선 1-0으로 졌지만, 독일과의 실력 차는 많이 좁혀졌다.

지난주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두 독일팀이 맞붙은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40여년 전 독일 축구의 전성기를 다시 재현하는 듯 보였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유, 스페인리그 레알마드리드 등에만 익숙해 있던 한국 축구팬들에게 오래전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렸던 독일 분데스리가 팀들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도르트문트를 2-1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바이에른 뮌헨은 세계 최강 클럽 바르셀로나를 두 차례 경기에서 합계 7-0으로 완파하는 무서운 저력을 과시해 세계 프로축구의 판도 변화를 예고케 했다.

때마침 ‘축구황제’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이 3일 1박2일의 일정으로 독일 정부가 한국과 독일 간의 경제 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에게 ‘대십자 공로훈장’을 수여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방한했다. 지난 2005년 독일 월드컵 유치위원장으로 한국을 찾은 이후 8년 만에 한국을 찾은 베켄바워는 “한국 축구는 외부의 조언을 받을 필요가 없을 만큼 크게 성장했다”고 밝혔다.

한국 축구의 세계화에 불을 밝혀준 독일 분데스리가에는 손흥민(함부르크), 구자철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 등 20대의 유망주들이 ‘제2, 3의 차붐’을 꿈꾸며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세계 최고의 리그 중심으로 자리 잡은 분데스리가와의 오랜 인연을 한국 축구가 발전적으로 이어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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